인간은 다양한 지식을 통해 새 것을 창조해내고 배우는 월등한 존재다. 특히나 자신들의 오랜 흔적을 남기고 싶어하고 그 흔적을 또 후손들이 찾아 헤매는 거의 유일한 역사 DNA를 갖춘 동물이 아닌가. 하지만 사실 '역사'가 생존 필수의 지식이냐고 묻는다면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고민이 되곤 한다. 생존 필수는 아니지만 배워야할 마땅한 이유를 설파하려는 게 아니다. 나는 역사가 생존 필수의 지식이라고 믿지만 그것을 타인에게 이해하기 쉽게 설명하는 방법이 마땅치 않는 까닭이다. 어쩌면 내가 한 사람을 앉혀 놓고 거대한 인류의 역사를 읊는 건 미약한 영향일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드니까. 다행히도 나와 같은 생각을 가진 작가가 보다 많은 사람들에게 같은 생각을 전파하려고 책을 내었다. 이것이 바로 「30개 도시로 읽는 세계사」이다.
"궁금한 걸 일일이 물어보지 말고 잘 봐라. 잘 보면 깨우치는 게 있다. 그래도 모르겠으면 외워라.
보고 계속 따라해라. 따라하면 똑같이 할 수 있다."
70~80년대에는 기술이나 지식을 습득하는 데 있어 이유를 따지지 않고 가르치는 대로 배우기를 강요했던 시기가 있다. 어디 그 시기만 그러겠나. 90년대도 그러했고, 컴퓨터가 대신 생각도 해주는 이 최첨단 시대까지 와서도 여전히 우리는 가르치는 대로 배우는 교육을 받고 있다. 나도 그런 교육을 받아왔고 내 후배들도 그런 교육을 아직도 받고 있지만 우리는 여전히 모른다. 그것을 왜 배워야 하고, 왜 가르쳐주는지. 그럴 듯한 이유를 선생님이 오리엔테이션 때 백날 설명해준다. 그 이유조차도 고리짝 시절 이유라서 가슴에 안 와닿을 뿐이다. 심지어 그 교육의 질조차 매우 편중적이다. 625때 함께 피를 흘려주어서 형제의 나라란 터키의 왕이나 역사를 아는 사람이 대한민국에 몇이나 되겠는가. 당장 지금 터키의 대통령 이름을 아냐고 물어도 대답할 사람이 거의 없을 것이다. 이웃에서 같이 머리채 잡고 싸우는 중국 시진핑 주석이나 아베 총리를 알면 몰라도.
이제는 이유가 타당해야 그것을 제대로 배울 수 있는 시대가 왔다. 이해하지 못하는 걸 백날 외운다는 거야 말로 언제가는 반드시 까먹겠다는 말로가 기다리고 있다. 그렇다면 궁금하다. 한국에 사는 내가, 이 책을 읽는 다른 독자가 왜 굳이 세계사를 배우고 알아야 한단 말인가?
개인의견으로 간단하게 답해본다. '인간은 같은 실수를 반복하고 또 되풀이 하기' 때문이라고.
지식이란 건 알면 알수록 더 인간을 나아지게 하는 데에만 쓰이지 않는다. 부조리한 논리를 우기는 데 사용되기도 하고 억지 우김을 포장하기 좋은 용도로 쓰이는 일도 빈번하다. 배울수록 더 어리석어지는 인간들의 사회와 그 실태를 더 잘 알기 위해서 우리는 우리의 흔적을 다시금 되새길 필요가 있는 거다.
「30개 도시로 읽는 세계사」는 현재 남아 있는 도시 뿐만 아니라 이미 사라져서 기록 혹은 전설로만 전해져 오는 도시의 발자취도 쫓는다. 이 책이 소개하는 도시들은 평화롭고 아름다운 추억만 있지도 않다. 이권 전쟁, 영토 분쟁, 종교 박해, 이민족과의 충돌 등 알고 싶지 않은 그들의 얼룩진 뒷면도 함께 드러낸다. 도시의 흥망성쇠로 따라 온 역사가 오늘 날 여전히 우리 사회가 다투는 문제와 여전히 맞닿아 있는 걸 보면 인생은 수레바퀴 같다는 말이 실감난다. 독도 분쟁, 각종 종교의 세수 문제, 난민 문제, 페미니즘과 혐오 사회로 얼룩진 우리나라는 같은 생활와 문화권을 공유한 적 조차 없는 하늘 저 편의 나라와 비슷한 일들을 경험 중이다. 본 적도 없을지 모르는 사람들과 닮았다는 것. 인간의 DNA는 인종과 땅으로도 구분할 수 없는 아주 강력한 관계가 있는 게 분명하다.
기본 지식에 정통하고 싶어서만 이 책을 읽는다면, 어느 정도 목적을 달성할 수도 있을 것이다. 책이 주는 목적에 100프로 부합하지 않는다고 얻는 게 없지는 않으니까. 하지만 우리 사회를 설명하는 목적으로 읽어보면 분명 이 책이 주는 다른 일면에 도달하게 될 것이다. 흥미와 재미를 넘어서 내가 정말 '생각'하며 살아가고 있는가라는 지속가능한 철학적인 메시지에 가슴이 울리는 때가 있기를 바래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