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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돌이의 굴
  • 수이사이드 클럽
  • 레이철 헹
  • 13,320원 (10%740)
  • 2020-05-27
  • : 112

 

 

우아한 작약처럼 아름다운 미래로 가득찬 미래의 미국, 그 곳에는 보다 오래 살고 보다 건강한 육체로 삶을 지속하는 인류가 살고 있다. 지나온 역사 속에서 무수한 사람이 꿈꿔왔던 건강하고 아름다운 육체로 오래 살기. 그것을 이룬 사람들이 살고 있지만 여전히 그들은 더 많은 시간을 꿈꾸며 살고 있다. 150년, 200년, 300년을 지나 영생에 닿을 수 있도록.



"너도 나이 들면 알게 돼."

몸 이곳저곳이 '말썽'이라며 한약, 양약 가릴 것 없이 달고 살던 친척 이모의 말이 떠오른다. 젊음은 한 순간이고, 그것을 유지하고자 하는 노력은 오래 간다고. 조금이라도 젊게 살고 싶어하는 이모에게 철없이 내가 말했다. 우아하게 늙고 싶지 않아? 라고. 나는 그런 어른이 되고 싶다고. 나이 들면 생기는 각종 질병에 좀 더 겸허해진다면 공연히 젊음에 대한 스트레스에 시달리지도 않아도 되니 훨씬 더 편한 생활이 될 지도 모른다고. 뭘 모르는 어린애를 향한 이모의 뼈 아픈 말은 결국 내가 나이가 들고 나서야 깨닫게 되었다. 아. 정말 뭘 모르긴 했군.

딱히 스트레스에 시달리지 않아도 얼마든지 세월이 주기적으로 병을 줄 거란 사실을 모르는 어린애가 어른이 되고 나서야 젊음을 운운하는 어른들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그 어른이 레이첼 헹의 <수이사이드 클럽>을 읽게 되었다. 레이첼 헹이 그리는 미래의 미국은 지금의 미국보다 더 찬란했다. 정말 그 인류가 부러워 미칠 지경이더라.


<수이사이드 클럽>은 평균 수명 300세에 이르는 근미래의 미국 뉴욕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그 꿈의 도시에 사는 레아는 100살이다. 육체도 나이도 아직 젊은 축에 속하는 레아는 뛰어난 능력으로 고속 승진을 해대며 주변의 질시와 부러움을 사고 있는 라이퍼다. 미국에서 태어난 모든 아이들은 태어나면서부터 수명을 측정할 수 있으며, 수명 연장자로 된 유전자들을 '라이퍼'로 명명했다. 라이퍼가 되지 못한 '비'라이퍼들은 짧은 수명과 노화와 질병에 시달리며 죽어가게 되었다. 레아는 뛰어난 라이퍼이고 앞날도 제법 창창하다. 길거리에서 88년 전에 사라졌던 아버지와 마주치기 전까지는 모든 게 순조로웠다.


라이퍼인 레아와 달리 비라이퍼로 40세의 나이에 생을 마감한 오빠 새뮤얼의 죽음을 통해 레아의 가족은 흩어진다. 정부의 지침을 철썩같이 지키며 수명 연장의 새로운 시대를 기대하는 어머니와 새뮤얼의 죽음을 받아들이고 자연스럽게 살길 바라는 아버지는 결국 사소한 계기로 충돌하였고 그 이후 아버지는 사라진다. 사라진 아버지가 88년만에 나타났다. 그때보다 더 늙고 초라한 모습으로. 거리에서 점으로 사라지는 아버지를 홀린 듯 무리하게 쫓던 레아는 결국 가벼운 교통사고를 당한다.


레아는 사고를 당한 이후 '자살'을 하려 한다는 오해 속에서 정부의 감시를 받게 된다. 누구보다도 뛰어난 내가 감시라니. 레아는 기가 찰 뿐이다. 그런 와중에 늙고 병든 아버지를 만났다. 아버지는 죽음을 감내하기 위해 떠났건만, 여전히 살아 있다. 아주 고통스럽게. 지난 88년 간 그의 삶이 궁금하면서도 레아는 쉽게 물어볼 수가 없다. 또한 왜 돌아왔는지. 그것조차 물을 수 없었다.

 <수이사이드 클럽>은 선택된 라이퍼로 사는 레아가 죽고 싶어하는 아버지를 만나 죽음을 이해하는 방식을 그리고 있다. 더 젊고 더 오래사는 일에 강구해왔던 레아가 사실 죽음과 관련된 과거가 많았다는 이면을 폭로하며 누구보다 완벽했다고 생각한 그녀가 얼마나 위태로운 영혼의 소유자였는가를 조명한다.


현재의 인류가 갈망하나 넘지 못한 수명 연장의 희망을 가진 근미래의 미국은 아이러니하게도 특출난 라이퍼들의 숫자와 별개로 전체 인구 수는 점점 감소하는 문제에 직면해 있었다. 완벽한 인간들이 영생을 쟁취한다는 것은 미래의 현실이 아니라 허황된 꿈이라는 걸, 인간에게 탄생이 아름다운 이유는 경이로운 죽음을 맞이하기 때문이란 걸, <수이사이드 클럽>이 증명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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