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가 다르게 햇살이 조금 더 많은 봄을 날라오던 계절, 나는 가을에 사랑을 시작한 연인의 이야기를 읽으며 가을을 몹시 그리워하게 되었다.
꿈 많고 착실한 젊은 남자의 발병으로 연인의 이야기는 시작되고 투병 과정이 이야기를 관통하는 주된 소재지만, 책 제목이 단호하게 요약하고 있듯이, 이야기는 불우한 청춘들이 지독하리만치 끈질기게 사유하며 전개해 나가는 사랑의 자취를 쫓는다.
연주하기 전 피아노 음을 기준으로 관현악기를 조율하듯, 두 사람은 삶의 변곡점마다 멈춰 서서 지나온 과정을 곱씹으며 흐트러진 자세를 고쳐잡고 사랑이 부여하는 의미의 징검다리를 탄탄하게 놓아간다.
문화신학을 공부하고, 비교문학과 라깡주의 정신분석학을 공부하고 있는 두 저자의 철학적 이해가 바탕이 되고 근거가 되기 때문일 것이다. 일방적인 주장의 나열이라면 그들의 철학은 무미건조하겠지만, 그들은 신학과 철학을 삶으로 해석하며 철학을 살아낸다. 직접 경험한 철학은 우리에게도 친숙하게 투영된다.
그래서 하루키의 경우처럼 그들의 책 속에 풀어져 있는 다른 책과 영화를 발견하는 것도 또 다른 반가움이고 혜택이다.
이따금 사랑을 고민하고 사랑을 물어오는 이들을 만날 때마다 만남과 사랑에도 치열한 사유와 철학이 필요하다고 다독여 주고 싶은데, 이제 좋은 사례를 알게 되었으니 다행이다.
사랑을 아프게 간직하고 있는 사람들, 그 사랑을 지금 아프게 겪어가고 있는 세상의 연인들에게 이 사랑스러운 두 주인공을 소개하고 싶어 안달이 난다. 그리고 이렇게 쓰담쓰담 격려해 주고 싶다. '사랑은 패배하지 않는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