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폐, 그 세계의 언어
균형 2006/06/23 16: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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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폐증(autism)은 원인이 완전히 규명되지 않은 질병 중 하나다. 자기공명영상(MRI)를 사용한 최근의 연구는 자폐아의 뇌발달 초기단계에서 이상증세를 찾아냈다. 그러나 그것으로 원인이 다 밝혀졌다고는 할 수 없다. 여전히 자폐증 치료는 실험단계에 있는 것이다.
자폐증 환자들은 간혹 아주 특별한 재능을 가지고 있는 것 같다. <레인 맨>이라는 영화의 레이몬드(더스틴 호프만)를 떠올려보라. 비행기도 타지 못하고, 낯선 환경에 편집증적 반응을 보이는 '덜 떨어진' 레이몬드는 암기력이 비상하며, 숫자계산은 전자계산기 수준으로 정확하고 신속하게 해낸다.
레이몬드와 마찬가지로 자폐증을 가진 또 다른 사람, 도나 윌리엄스가 책을 한 권 펴냈다. 책제목은 그녀 자신의 세계를 묘사하는 듯 'Nobody Nowhere'이라고 지었다. 우리나라 책제목은 <도나, 세상을 향해 뛰어>이다.
과연 자폐증 환자가 세상을 향해 뛸 수 있을까? '자폐(自閉)'라는 한자의 말 뜻 또한 자기 안으로 오므라들어 스스로 갇힘, 바깥환경과의 단절됨을 의미하지 않는가?
그런데 도나는 자신의 자폐성향을 이렇게 설명한다. 자기가 다른 사람들의 언어를 이해하지 못하는 게 아니라, 자기의 언어가 다른 사람들과 달랐던 것이라고…. 즉, 그녀는 아주 희귀한 외국어를 구사하고 있었던 것이다.
나는 가끔씩 사람들과는 아주 다른 방식으로 말을 했고 또 가끔씩은 내게 하는 말들을 전혀 이해하지 못했다. 말이 기호 같은 것이긴 하지만 내가 이해하지 못하는 게 기호라고 생각하는 것은 오해다. 나는 말하기에 필요한 모든 체계를 정리해, 가지고 있었다. 나는 그것을 '나의 언어'라고 여겼다. 내가 사용한 기호체계를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바로 다른 사람들이었다. 나는 그들에게 내가 뜻하는 바를 전달할 방법이 없었던 것이다. (58~59쪽)
'이른바 보통사람'과 '자폐아'의 차이란 과연 무엇인지 의문이 생긴다. '이른바 보통사람'들도 자폐증을 지닌 사람들과 의사소통을 잘하지 못한다('이른바 보통사람'들끼리도 매순간 의사소통을 잘하고 있다고 자신할 수는 없을 것 같다). 물론 다수의 의사소통방식을 사용하지 못하는 자폐아 쪽에 더 문제가 있다고 말할 수는 있겠다. 하지만, 자폐아들을 '이른바 보통사람'의 세계로 들어오도록 교육하는 일이 혹, 보통사람의 방식을 자폐아에게 강요하는 모양새는 아닌지 되돌아볼 필요가 있다.
나는 '그들의 세계'를 요구한 적이 없었다. 나는 거기에 참여하고 싶지도 않았다. 그래도 참여해야만 한다면, 그것은 내 방식대로여야 할 것이었다. (100쪽)
자폐아에게는 자폐아의 방식이 있다. '이른바 보통사람'들에게 그들만의 방식이 있듯이…. 진정한 의사소통, 진정한 상호작용에서는 한 쪽의 방식만이 통용되거나 하나의 방식만이 유효해서는 안 될 것이다. 물론 자폐아에게, 보다 일반적이고 효과적인 상호작용 방식을 익히도록 가르치는 일 자체가 잘못된 건 아닐 것이다. 그러나 한 번쯤 보통사람들이 자폐아의 방식대로 상호작용을 해보는 건 어떨까? 도나가 한 것처럼.
도나는 지금 오스트레일리아에 살면서 자폐아들을 위한 교육에 종사하고 있다. 사람들 사이의 상호작용이 얼마나 자폐아들에게 아픈 일인지 알기에, 상호작용의 수위와 밀도를 조절할 줄 안다. 자해하기, 물건 부수기, 같은 동작 반복하기, 발작하기…. 도나는 그것을 다 경험해보았기에 자폐아가 어떤 때, 왜 그런 행동들을 하는지 잘 안다. 그녀가 한 자폐아와 세심하게 상호작용 하는 장면을 본 그 자폐아의 어머니가 눈물을 흘리며 이렇게 말한다.
"자폐증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을 가르쳐야만 한다고 생각했었죠. 이젠, 그들로부터 많은 걸 배워야 할 사람들은 우리라는 걸 알았어요."
그렇다. 나도 도나로부터 많은 걸 배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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