큐피드(에로스)는 사랑의 신이다. 프쉬케는 아름다운 사람(여성)이다. 프쉬케의 미모는 미의 여신 아프로디테(비너스)에 필적할 만하였고, 사람인 프쉬케의 아름다움을 칭송하느라 사람들은 여신에게 소홀해졌다. 아프로디테가 발끈했다. 그녀는 아들 큐피드에게, 프쉬케가 흉측한 괴물과 사랑에 빠지도록 하라고 지시한다. 그러나 큐피드는 어머니의 명령을 수행하던 중 프쉬케를 사랑하게 된다. 그는 그녀와 큰 성에서 밤마다 만나 사랑을 키워가지만, 프쉬케에게는 자신의 얼굴을 보지 못하도록 금한다. 그러나 연인의 얼굴에 호기심이 생긴 프쉬케는 금기를 어기고 큐피드의 얼굴 가까이로 등불을 갖다댄다.
그 즉시 큐피드는 프쉬케를 떠나는데 프쉬케는 큐피드의 다리에 매달린다. 매달린 프쉬케를 떨쳐버리고 도망가는 큐피드, 그러나 프쉬케는 큐피드와의 사랑을 포기하지 않는다. 마침내 그녀는 아프로디테가 명령하는 어려운 시험까지 모두 겪어낸다(주위의 도움도 적절히 받아가면서). 마침내 프쉬케는 프쉬케는 큐피드와의 사랑을 이루어내고 만다. 그 사랑의 결실로 태어난 딸의 이름이 ‘기쁨’이다. 자기 마음이 이끄는 대로 정직하게 사랑을 따라 움직였던 프쉬케의 사랑이 기쁨을 낳은 것이다.
보통은, 떠나는 남자의 바짓가랭이에 매달리는 여자를 못났다고 여기거나 구질구질하다고 느끼기 쉽다. 그러나 시선을 달리 해보자. 프쉬케는 자신의 사랑에 끝까지 책임지고 자신의 사랑에 솔직한 사람으로 보인다. 반면 큐피드는 금기를 어기면 헤어져야 한다고 했던 자신의 말에 일관성을 갖추기 위해 사랑하는 그녀를 버린 남자다. 그는 사랑을 따르지 않았다.
길리간은 이 신화와 연관하여 우리 현실의 남성과 여성을 분석한다. 유치원에 다니는 남자아이들과 그 아이의 아버지들, 그리고 사춘기에 다다른 여자아이들을 심층면담하고 부부상담을 하면서 일련의 결론들을 얻어낸다.
길리간은, 남자아이들이 네다섯 살 때 부모로부터 분리독립하면서 사랑을 따르지 않게 되는 ‘남성다움’을 학습하게 된다고 본다. 감성도 풍부하고 눈물도 많고, 무엇보다도 엄마 아빠와 감정교류를 자유롭고 풍부하게 했던 남자아이들이 점차 이른바 ‘남자다움’을 익히면서 감정교류를 차단하고 장난감총을 잡는다. 어느덧 남자는 자기자신의 독립성과 일관성의 훼손을 염려하며 사랑에서 도망치려고 하는 경향을 갖게 된다(큐피드처럼).
반면 여자아이들은 사춘기에 이르러 사랑하는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 자기의 목소리를 숨기다가, 결국은 잃어버린다. 그런데 역설적으로, 그녀들이 자기의 목소리를 내지 않으면 사랑하는 사람과의 관계가 보다 더 어려워지는 양상을 보인다.
정신분석학자 프로이트는 <히스테리 연구(1895년)>에서, 사랑하는 이를 보거나 그에 대해 말하는 것을 금지당한 수많은 ‘프쉬케’들에 대해 이야기하였다. 그는 여성들의 편에 서서 그녀들의 목소리에 대해 이야기하면서, 마치 여자들처럼, 외롭고 힘들게 자기주장을 펴나갔다. 그러나 <꿈의 해석(1900)>에 이르렀을 때 그는 더 이상 푸쉬케에 대해 이야기하지 않았다. 그때부터 그는 오이디푸스를 이야기하기 시작한다.
길리간의 해석에 의하면 오이디푸스 신화는 가부장제(권력, 통제, 위계질서 등)로 향하는 길을 보여준다. 이오카스테(오이디푸스의 어머니이자 아내)는 자신의 비극적 상황을 깨달았을 때 자살한다. 오이디푸스 신화에서 이오카스테와 오이디푸스의 사랑은 금기시되어있으며 명확하게 표현될 수 없다.
프쉬케와 큐피드의 사랑 이야기는 보다 혁신적이다. 프쉬케와 큐피드의 이야기에 나타난 남녀 간의 공정하고 합법적이며 평등한 관계는 가부장제의 종말을 선언하고 기쁨(프쉬케와 큐피드 사이에 태어난 딸의 이름)의 탄생은 새로운 사회질서가 시작됨을 암시하고 있기 때문이다.(33쪽)
일상생활의 질서를 위협할 때 기쁨은 위험한 것으로 간주된다. 그 위험성은 부풀려져 혼돈과 소요의 가능성을 내포하고 있다고 여겨진다. …(중략)…. 가부장제를 버리고 사랑과 민주주의를 받아들이는 것은 쉬운 일처럼 여겨지며 환영할 만한 일로 생각되지만 실은 정치뿐만 아니라 심리면에 있어서도 모험적인 일이다. 최소한 처음에는 권력과 통제의 포기를 의미하는 것으로 비칠 것이기 때문이다.(300쪽)
길리간의 결론은 이러하다. 사랑과 민주주의가, 권력과 통제로 유지되는 견고한 가부장제를 뒤흔들 것이라고…. 그게 불가능할 것 같더라도 바로 그 길이 생명과 기쁨으로 가는 길이니 그 길을 택하라고…. 그 길을 가는 데에는 지도(map)가 필요한데, 우리한테는 그 지도가 있다고…. 그 지도란 다름 아닌 ‘사랑’이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