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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생명,질병 이야기들이 있는 서재
결론부터 말하자. 이 책은 재미있다. 하지만 저자의 편견 섞인 해석이 많아 객관적이거나 과학적이지 않다. 이러한 편견이 가능한 이유는, 이 책에서 소개하는 “유전학적인 접근을 통한 인류학 탐구”라는 학문분야의 특성 자체에서 기인한다고도 볼 수 있다. 왜냐하면 이 분야에서는 우리가 타임머신을 타고 과거로 돌아가서 직접 관찰하지 않는 한, 연구를 통하여 100%의 진실을 알 수는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연구결과를 해석할 때, 그 연구결과를 낳을 수 있는 가능성이 가장 높은 가설을 채택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저자는 책 곳곳에서 자신의 편견의 프리즘을 통하여 연구결과를 해석한다. 세부적으로 그의 편견과 오류를 살펴보자.

첫째로, 그는 미국에서 흑인개체군에 백인유전자가 혼합된 비율이 16%이고 반대의 경우는 1%이어서 “미국에서 문화접촉의 역사는 아프리카 출신 미국인(흑인)에 대한 유럽 출신 미국인(백인)의 혼합의 역사라고” 해석하였다(p357). 하지만 백인과 흑인 사이의 혼혈 2세는 백인 보다는 흑인 취급을 받아온 미국의 현실에서 이러한 연구와 해석은 무의미하다. 만약 역사적으로 혼혈이 백인 취급을 받아왔다면 결과는 반대였을 것이다. 즉, 과학적이기보다는 사회,문화적인 용어(여기서는 흑인)를 과학에 무비판적으로 그대로 적용하는 오류를 저자는 범하고 있다. 따라서 이 연구결과의 올바른 해석은 단지 “미국에서는 흑인과 백인이 (더 엄밀하게는 그 유전자가) 어느정도 섞여왔다”는 것이 될 것이다.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둘째로, 네안데르탈인의 유전자가 현대인류에 남아있는지 이야기 하면서 페인트 혼합의 비유를 하였다. 즉 흰색 페인트 한 방울을 빨간색 페인트가 가득 있는 통에 섞으면 결과는 분홍색이 아니라 거의 빨간색인 것처럼, 네안데르탈인의 유전자가 현대인류에 혼합되었다 하더라도 그 정도가 작았다면 여전히 그 유전자가 우리 몸에 있어도 거의 검출할 수 없다고 하였다(p169). 하지만 유전자를 페인트로 비유하는 것은 어떤 경우에는 합당하지만(p342), 유전자 혼합은 페인트라기보다는 구슬을 섞는 것이다(이것이 그 유명한 멘델 유전법칙의 핵심이다). 즉 흰색 구슬 한 개를 빨간색 구슬 만 개에 섞으면, 우리가 충분히 자세히 조사한다면 결국 그 흰색 구슬을 검출할 수 있는 것이다. 이 말은 우리가 충분히 많은 수의 현대인류 개체를 조사해도 네안데르탈인의 미토콘드리아 유전자를 찾아낼 수 없다면, 결론은 네안데르탈인의 유전자는 현대인류의 유전자 풀에 기여하지 않았다는 것이 된다는 것이다. 하지만 저자는 자꾸 억지스러운 비유와 해석을 하고 있다.

이외에도 많은 편견과 오류를 찾아볼 수 있다. 만약 이 책이 SF 소설이라면 이런 점은 문제가 되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이 책은 어디까지나 유전학적인 접근을 통한 인류학 탐구라는 학문분야를 일반 독자에게 소개하는 목적으로 씌여졌으므로 이런 편견과 오류는 이 책의 큰 단점이 된다. 반면, 이러한 저자의 편견은 우리에게 색다른 재미를 주고 있다. 바로 책을 읽으면서 저자의 편견과 오류를 찾는 재미이다. 비록 이것이 저자의 애초 의도는 아니었겠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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