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생명과학 사유방식으로의 전환
현미경과 책 2003/09/22 06: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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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에서는 “유전자(gene)”라는 단어로 대표되는 극단적 환원론적인 현대 생명과학의 한계가 도래했음을 주장하고, 앞으로의 생명과학은 통합적인 기능 규명과 인식에 초점을 맞추어야 한다고 이야기한다. 다른 말로 하면, 유전자라는 단어가 만들어지고 이 단어가 주도한 현대 생명과학으로부터 다음 시대 생명과학으로의 패러다임의 전환을 요구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시각에서 보면, 한계를 보이는 현대 생명과학의 최고 정점은 인간유전체 계획(human genome project)의 완성과 발표였을 것이다. 이 때 많은 언론들이 이제 생물학적으로 인간을 모두 이해할 수 있다느니, 많은 난치병들을 곧 정복할 수 있을거니 하며 호들갑스러운 보도를 했었다. 그리고 이러한 언론보도의 근저에는 이런 분야의 연구를 주도한 생명과학자들의 자신감과 기대가 존재했다. 하지만 과연 그들의 기대가 맞을까? 나는 그렇지 않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이 책에서도 그들의 기대가 틀렸음을 주장하면서 그 이유를 논리적으로 잘 설명해주고 있다.
나의 전공 분야에서 한 예를 들어 보자. 결핵균의 유전체 서열이 규명되었을 때 많은 과학자와 언론은 이제 결핵 완치의 길이 열렸다며 보도를 하였다. 그러나 만성 감염병의 다른 예인 많은 바이러스성 질환의 경우(B형 및 C형 간염 바이러스, AIDS를 일으키는 HIV), 우리는 이미 그 바이러스의 유전체 서열을 잘 알고 있었으나 아직까지 완치라고 할만한 치료법은 없는 형편이다.
나는 이렇게 생각한다. 이미 다른 생명과학자들도 조금만 생각을 해보면, 이러한 과장된 논리의 맹점을 알 수 있었으나 그 동안 애써 외면해왔다고. 그리고 이제는 20세기 생명과학의 패러다임으로 이룰 수 있는 발전에는 한계가 왔으므로, 이제 새로운 사유방식의 정립이 필요하다고. 이 책의 주장도 바로 이 점에 있다. 그래서인지 이 책을 읽는 내내 평소의 나의 생각과 비슷한 저자의 논리와 주장에 의해 흥분을 억누를 수 없었다.
최근 들어 인간유전체 계획 이후에 생명과학자들 사이에서도 이것이 종료가 아니라 이제 시작점이고, 기능 유전체학이 필요하다는 등의 주장이 나오고 있다. 조금 때늦은 깨달음이라는 생각도 들지만, 이 책은 이러한 새로운 생명과학 사유방식으로의 전환에 좋은 자극제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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