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과학에서의 패러다임 전환의 역사
현미경과 책 2003/09/21 15: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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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 과학의 여러 분야 중에서 가장 눈부신 발전을 하고 있는 분야는 아마도 분자생물학을 필두로 하는 생명과학일 것이다. 하지만, 분자생물학의 역사는 매우 일천하여, 실제적으로 그 시작은 불과 50년 전인 1953년의 왓슨(Watson)과 크릭(Crick)에 의한 DNA 구조의 발견이라고 보아야 할 것이다. 이 책에서는 분자생물학 태동의 초석이 된 20세기 초반의 생화학, 유전학의 발전부터 시작하여 DNA 구조의 발견, 그리고 이후의 분자생물학의 발전 및 유전공학의 탄생까지의 방대한 역사를 다루고 있다.
과학발전 방식의 모델로서 너무나 유명한 쿤(Kuhn)의 표현을 빌리자면 이 책에서 다루고 있는 역사는 생명과학 분야에서의 패러다임(사유방식) 전환의 역사라고 할 수 있다. 쿤의 유명한 저서 “과학혁명의 구조”에서는 패러다임 전환의 역사의 예로 주로 20세기 초반 물리학 분야에서의 양자역학의 태동이 언급되고 있지만, 이 책에서 다루어지는 역사는 생명과학에서의 유사한 예가 될 것이다.
그런 이유로, 자연적으로 이 책을 읽는 과정은 여러 영웅들의 이야기를 읽는 듯한 흥미진진함을 주고 있다. 하지만, 이 책은 단순하게 주요 발견과 사건의 기술에만 그치지 않는다. 이에 덧붙여 이러한 발전의 주요 단계들이 가지는 의미와 영향을 저자의 시각으로 해석하려는 노력을 빼놓지 않았다. 이러한 결과로 이 책은 분자생물학이라는 한 세부학문의 역사를 다룬 학술적인 성과물로 평가 받기에 충분하다.
일반적으로 과학발전의 방향은 가치 중립적이고 객관적인 요인들에 의해서만 결정된다고 생각되기 쉽다. 하지만 이 책을 통하여, 최소한 분자생물학의 역사에서는 과학자의 주위 환경-예를 들자면 소속된 연구소나 소속 학계의 사유방식 및 고정관념, 연구결과에 대한 사회의 반응-같은 비객관적인 요소들이 영향을 미칠 수 있었던 것을 알 수 있다. 아마도 이러한 점은 분자생물학의 역사뿐만 아니라 모든 과학 분야에 적용될 수 있을 것이다.
다만, 저자는 서문에서 일반 독자들도 대상으로 하여 이 책을 썼다고 말하였으나, 너무 전문적인 내용으로 인해 일반 독자들이 이해하고 흥미 있게 읽기에는 무리가 따른다. 하지만, 어떤 책도 전문가 독자와 일반 독자 양 측을 다 만족시킬 수는 없는 점을 고려한다면, 한 쪽 독자층이라도 완벽하게 만족시켜준 이 책을 높이 평가할 수 밖에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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