곁에 두고 싶은 책 중의 하나. 로드무비 형식을 취한 <리스본행 야간열차>는 소설이되 소설이 아니다. 소설을 가장한 언어 사유법인 동시에 인간에 대한 질문으로 가득 찬 철학서이다. 정체성을 찾아 끝 간 데 없이 사색하는 파스칼 메르시어의 내면 일기라고 보아도 좋겠다.
인간은 완벽하지도 않고 알 수 없는 존재이다. 의문과 복잡함으로 가득 찬 인간을 탐색하려는 작가의 자의식이 파도처럼 일렁인다. 우리는 타자를 또는 스스로를 얼마나 알고 있는가. 주인공 프라두는 곧 내레이터 그레고리우스이고, 이는 곧 작가로서의 메르시어이자 자연인 비에리이기도 하다.
소설 형식으로는 어울리지 않는 우연의 연속을 아무렇지 않게 연결시키는 방식을 취함으로써 이 소설이 소설로만 기능하는 게 아니라 철학적 사유를 중시하는 것임을 부인하지 않는다. 남발된 우연이 연결한 유기적 관계망 속에 등장인물들은 프라두의 행적에 대해 술술 풀어놓는다. 소설적 긴장감이 없는데도 메르시어의 구라에 쏙쏙 빨려 들어간다. 언어를 다루는 방식에 진정성이 있고, 말들을 부리는 가슴이 시적이다.
언어의 문제 나아가 결국은 인간의 문제를 다뤘다. 기억과 현실의 교집합을 통해 어떻게 살아가야 하나에 대한 질문을 던지는 소설이다. 여러 매개물들이 적재적소에 쓰여진 것도 주목할 만하다. 체스는 주앙 에사와 그레고리우스를 과거로 안내하는 주요 매개물이다. 그 외 붉은 삼나무, 이스파한, 피니스테레, 리스트론, 타라파우 등의 이미지를 따라가며 작가의 의중을 읽어내는 것도 의미 있는 일이다.
계급의식도 투영되었다. 각각 귀족과 농민(실우베리아, 프라두 / 그레고리우스, 조르지)으로서의 삶에 대한 진솔한 성찰이 이 소설의 무게감에 보탬을 준다.
다만 액자 기법으로 차용된 프라두의 글들이 <언어의 연금술>이란 제목에 걸맞은 것인가에 대해서는 부분적으로 의문이 남았다. 옆에서 증언해주는 등장인물들의 프라두에 대한 아우라를 프라두의 글이 받침해주지 못하는 안타까움이랄까. 대체적으로 고뇌와 성찰의 고백이지만 가끔은 신변잡기 식에다 뜬구름 잡는 것 같은 문장이 이어질 때는 책장을 넘기기 힘들기도 했다. 프라두의 언어의 연금술은 내면을 토로하는 일기장 역할을 하는데, 탐색 과정의 느닷없음과 상황 이해 부족 등으로 완전하게 탐독하기는 힘들었다. 번역의 문제일 수도 있고, 작가의 사유와 독자의 해석이 합일점을 보지 못해서 그럴 수도 있을 것이다. 변죽을 울리는 듯한 부분이 느껴지는 건, 서로 다른 문화에서 오는 기질적 차이 때문이 아닐는지.
확실한 것은 철학적 사유 깃든 장면보다 에피소드가 가미된 이야기를 풀어낼 때 메르시어의 문체가 더욱 빛난다는 점. 애매모호한 장면이 아니라 선명한 실체가 있는 부분에서는 버릴 게 없는 문장들의 연속이었다.
그레고리우스의 흔적을 따라 훌쩍 리스본으로 떠나고 싶게 만든 책. 내가 밟은 가장 먼저의 유럽 땅. 그래서 더욱 강렬한 인상으로 남아 있는 도시. 온통 노란 빛깔의 벽, 구시가지 바이후 알투 언덕의 골목들, 타호(테주) 강의 다리, 벨렘 거리의 빵집, 대성당과 제로니모스 수도원 등등. 그레고리우스가 쫓아다니던, 낯설지 않은 지명들을 만날 때, 흐릿해진 기억을 더듬어 맘 속의 스냅사진을 꺼내어보곤 했다.
그렇다. 묘령의 여자가 내던진 한 마디에 홀려 떠나보는 도시 이미지로리스본보다 나은 데가 있을까. 이런 괜한 생각까지 덤으로 얻게 하는 책.
포르투게네스! 리스트론!
<등장인물>
*라이문트 그레고리우스 (문두스) -고전문헌학자, 언어 교사, 고도 근시, 이혼 후 19년 째 혼자 산다. 박물관 경비원과 청소부 부모를 둔(166쪽) 가난한 집 출신
*플로렌스 - 제자 출신 그레고리우스 아내. 5년 결혼 생활 후 이혼함.
*아마데우 이나시오 드 알메이다 프라두 (1920~1973) -의사 출신 시인이자 언어 신비주의자, <<언어의 연금술사>> 쓴 귀족 포르투갈 작가. 에사의 삼촌 주앙보다 5살 많음. 1975년에 출간된 작품. 30대 초반 작가. 그레고리우스가 번역해 나감, 활화산 같은 열정과 오만하리만큼 냉철한 지성의 소유자. 집안 경제력 외모까지 다 갖춘 남성의 화신, 주앙 에사를 만나 저항운동에 관여함. 동맥류 앓음,
**부인 - 파치마, 35살 심장마비로 죽음,
*콘스탄틴 독시아데스 - 그리스 출신 안과 의사, 20년 지기
*캐기 - 동료 선생, 아내는 정신병원에 입원
*주제 안토니우다 실우베이라 -기차에서 만난 도자기업자, 이혼 후 큰집에서 혼자 산다. 나중에 그레고리우스에게 그 집을 제공한다.
*마리아나 (콩세이사옹) 에사 - 리스본 안과 의사
*줄리우 시몽이스 - 리스본 헌 책방 주인, 프라두 관련 길잡이를 해줌.
*후이 루이스 멩지스 – 리스본의 인간백정, 프라두가 목숨을 구해줌. 이 일로 프라두는 사람들로부터 상처.
*올리베이라 살라자르 - 포르투갈 정치인. 1932년부터 1968년까지 36년간 총리로 독재. 나치 원조, 유대인 수용소 짓기 등 나치 방식 모방. 전후에는 서방측에 가담하여 북대서양 조약기구 참여로 국제적 지위 보장 받음. 1960년대에는 아프리카 식민지 정책을 계속 유지하여 국제적 비난을 받음. 1968년 낙마 사고로 1970년 세상을 떠남.
*비토르 코우팅뉴 – 프라두 소식 알고 있을 이전 책방 노인, 줄리우 시몽이스가 소개해 줌.
*아드리아나 – 프라두의 여동생, <<언어의 연금술>> 책을 출간. 낙태의 충격을 겪었고, 자신의 현재 삶 대신 오빠의 과거 인생을 살고 있다. 오빠의 파란 집을 지키며 현재와 과거의 시계를 오간다.
*멜로디(리타) – 프라두의 막내 동생, 바이올린 연주자, 들끓는 화산 같은 오빠와는 성격이 맞지 않았지만 프라두는 멜로디를 부러워함. 자유로운 영혼
*주앙 에사 – 마리아나 에사의 삼촌, 회계사 출신 저항 운동가, 농부 자제, 프라두보다 5살 어림, 영국 여행에서 우연히 프라두 만나 교류하면서 저항운동 같이함,
*조르지 오켈리 – 프라두와 주앙의 학창 친구, 약사가 됨, 저항운동가, 프라두와 정반대의 성격, 그래서 프라두가 친구로 삼았다고 베르톨~신부가 전해줌.
*아고스칭냐 – 신문 (여자)실습생,
*마리아 주앙 아빌라 플로레스– 젊은 시절부터 프라두가 좋아했던 여자, 농부 딸, 간호사
*알렉산드리 오라시우 드 알메이다 프라두 – 프라두의 아버지, 유전적 척주경직증 앓는 판사, 독재에 부역하고 저항하지 않은 자책으로 자살.
**아내 마리아 프라두
*바르톨로메우 로우렝수 드 구스마옹 –프라두의 학창 시절 선생(신부), 거짓말 하지 말라는 아우구스티누스의 절대 명령에 대해 논쟁 벌임, 요양원 생활
*에스테파니아 에스피노자 – 저항 운동 동지, 우체국 근무, 기억력 좋아 저항운동의 비밀을 다 외움, 조르지의 애인, 아마데우와 서로 첫눈에 반한 사이. 조르지를 위해 아마데우는 신의를 지킴. 그녀를 죽여야 한다고 판단한 조르지, 주앙과 그레고리우스는 그녀를 국경지역으로 도망치게 함. 그레고리우스 무덤 앞에서 조르지와 서로 눈길 주지 않은 채 조우함. 한참 뒤 스페인 살라망카에서 역사 강사로 일한다는 소식, 파치마 죽은 뒤 프라두가 사랑에 빠진 여자. 아버지는 비밀경찰에 잡혀 타라파우로 끌려 감.
*나탈리 루빈 – 그레고리우스 제자
*에바 폰 무랄트 - 세상에나, 라는 별명으로 불린 학생
**에바 아버지는 판사
*부리 / 비에르지니 르도엔 - 동료 교사
*한네스 슈나이더 -그레고리우스가 이스파한에서 가정교사를 할 뻔했던 사람
*샤 - 페르시아 통치자 총칭, 왕, 지배자
*루슬리 부인 - 그레고리우스 옆집 사람
*클로틸드328 - 아드리아나네 도우미
*바다호스 -멩지스 부하, 저항운동 감시
*아드리앙 교수 – 에스테파니아 피아노 선생님, 바다호스에게 끌려가서 행방불명
*디아만티나 에스메랄다 에르멜린다 – 도벽으로 아버지에게 판결 받은 여자, 프라두는 아버지의 위선에 복수하기 위해 백화점에서 물건을 훔친다.
*엔리크 - 프라두 아버지의 운전수이자 비서
*세실리아(336, 345, 514) -포르투갈어 잘하는, 초록색 옷을 즐겨 입는 리스본 어학원 선생?
*줄리에타 –실우베리아 집 도우미
*필리피 – 실우베리아 운전사
*아나 – 프라두의 가정부?
*오로라 – 파티에서 본 실우베이라 조카
<참조>
*부벤베르크 – 베른에 있는 도시, 광장
*에스타두 노부 시대(Estado novo1933~1974)-포르투갈의 비민주적 정치경제체제
*타라파우 - 정치범 수용하던 끔찍한 감옥(산티아고 하프베르뎅 섬)
*시도니우 파이스 – 포르투갈 군인, 호색적인 사기꾼으로 묘사, 포르투갈 대통령
*테오필루 브라가 – 포르투갈 초대대통령
*모시다드 포르투게자 - 이탈리아, 독일을 본뜬 파시스트적 제도, 학생 강제 조직.
*이스파한 -페르시아 도시, 그레고리우스가 가고 싶어 한 도시
*아니타 에크베르크375 – 배우(1931~2015스웨덴)
*카보 피니스테레 – 갈리시아 땅, 에스파냐의 가장 서쪽
**까보 다 로까 – 포르투갈의 대서양 서쪽 땅끝마을
*리스트론561 – 오디세이에 나오는 넓은 홀 바닥을 청소할 때 쓰는 쇠꼬챙이, 그레고리우스가 자주 되뇌는 단어.
*리스본 지역 - 벨렘(리스본 외곽), 바이후 알투, 알파마 구역, 아우구스타 거리, 카실랴스(주앙이 있는 요양원), 타호(테주)강
*아빌라(스페인, 마리아 주앙과 떠나려고 했던 곳)
*코임브라(아마데우가 의학 공부한 곳)
*살라망카(스페인, 에스테파니아가 역사 강사로 일하는 곳)