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베레모가 아닌 책을 든 체 게바라
우리가 기억하는 체 게바라는 별이 박힌 베레모를 쓰고 시가를 문 강렬한 이미지의 혁명가다. 하지만 그의 삶을 조금만 더 깊이 들여다보면, 그 이미지 뒤에 가려진 지독한 독서가의 면모를 발견하게 된다. 그는 게릴라전을 수행하며 밀림 속을 누빌 때조차 배낭 속에 늘 무거운 책을 넣고 다녔다. 전투가 멈춘 밤이면 모닥불 옆에서 맑스와 엥겔스를 읽고, 세계의 모순을 고민했다.
이 책은 그가 남긴 독서 노트 중에서도, 특히 마르크스와 엥겔스의 저작을 읽고 쓴 연구들을 모은 것이다. 나에게 체 게바라는 총을 든 전사이기에 앞서, 끊임없이 공부하고 사유하며 자신을 다듬어 나갔던 '공부하는 혁명가'다.
2. 산업부 장관, 책상 위에서 펼쳐진 치열한 고민
쿠바 혁명 성공 후, 그는 편안한 권력자의 자리에 앉을 수도 있었지만 가장 골치 아픈 '산업부 장관'직을 맡았다. 의사 출신 게릴라가 한 국가의 경제를 책임진다는 것은 무모해 보일 수 있다. 실제로 그의 급진적인 정책은 현실의 벽에 부딪혀 실패했다는 평가를 받기도 한다. 하지만 여기서 중요한 것은 결과의 성패보다 그가 보여준 태도다.
이 책을 보면 그가 단순히 감이나 열정만으로 정책을 펼친 것이 아님을 알 수 있다. 그는 맑스의 《자본론》과 엥겔스의 저작들을 꼼꼼히 분석하며, 당시 소련의 경제 모델을 무비판적으로 따르는 것을 경계했다. 인간을 배제한 채 물질적 성과만을 강조하는 사회주의는 또 다른 자본주의일 뿐이라고 비판했던 것이다. 비록 현실 정치에서는 서툴렀을지 몰라도, 그는 '인간의 의식 변화'를 통한 경제 발전이라는 확고한 철학을 가지고 있었다. 그가 장관직을 미련 없이 내려놓고 다시 볼리비아의 정글로 떠날 수 있었던 힘 또한 이러한 치열한 학습과 자기 확신에서 나왔을 것이다.
3. 정무 감각은 없었지만, 순수한 이상을 가진 사람
현대의 많은 정치인은 '정무 감각'이라는 이름으로 끊임없이 계산하고 타협한다. 그들에게 이상은 선거 때나 필요한 구호일 뿐이다. 그러나 체 게바라는 달랐다. 그는 정치적인 계산보다는 자신이 옳다고 믿는 가치를 향해 나아갔다. 책에 담긴 그의 글들은 치열하다. 그는 책상 위에서 이론을 다루는 것에 그치지 않고, 현실의 문제에 그 이론을 어떻게 적용할지 끊임없이 고민했다. 현실 정치인의 눈으로 보면 그는 미숙하고 순진한 몽상가였을지 모른다. 하지만 바로 그 순수함, 자신의 신념을 위해 주저 없이 행동하는 그 모습이 시대를 넘어 우리에게 울림을 준다. 그는 뒤에서 지시하는 지도자가 아니라, 가장 먼저 배우고 실천하는 모습을 몸소 보여주었다.
4. 불가능한 꿈을 꾸는 리얼리스트
나의 다이어리 한구석에는, 그리고 내 마음속에는 언제나 체 게바라의 문장이 새겨져 있다.
"우리 모두 리얼리스트가 되자. 그러나 가슴 속에는 불가능한 꿈을 가지자."
이 말은 모순처럼 들릴 수 있다. 현실을 직시하는 리얼리스트가 어떻게 불가능을 꿈꾼단 말인가? 그러나 체 게바라가 남긴 이 치열한 기록들이 그 해답을 보여준다. 그는 냉철한 이성으로 현실을 분석했고, 뜨거운 가슴으로 그 너머의 이상을 꿈꾸었다. 현실에 발을 디디지 않는 꿈은 망상이고, 꿈이 없는 현실은 굴종이다.나는 오늘도 아이들을 가르치며 이 문장을 되뇐다. 입시와 경쟁이라는 차가운 현실을 부정할 수는 없다. 하지만 그 현실에 매몰되지 않고, 아이들이 서로 연대하며 진실을 말할 수 있는 세상을 꿈꾸는 것. 그것이 내가 공부하는 혁명가 체 게바라에게 배운 삶의 태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