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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리버드의 서재
  • 랑과 나의 사막
  • 천선란
  • 13,500원 (10%750)
  • 2022-10-25
  • : 7,422
받자마자 그자리에서 읽기 시작해 지금 막 마지막 책장을 덮었다. 오늘이 휴일이라는 게 어찌나 감사하던지! 읽으면서 생텍쥐페리의 <어린왕자>를 떠올렸다. 사막이 아름다운 건 오아시스를 감추고 있기 때문일까. 천선란의 소설 속에 등장하는 사막은 황량하고 적막하지만, 그곳에서 이루어지는 만남들 덕에 경이롭고 애틋하게 느껴진다. 만남들 속에 사랑과, 그리움과, 희생과, 자기로의 여행이 모두 녹아 있다.

전쟁시대에 만들어진 로봇 ‘고고’. 그는 죽은 인간소년 ‘랑’과의 추억을 오류처럼 재생하며 그 감정이 ‘그리움’이라는 것도 모른 채 사막 횡단을 계속한다. 어린 왕자가 지구, 그것도 사막에 오기까지 여러 행성을 거치면서 많은 이들을 만나 여러 감정을 느꼈듯 고고도 여러 존재를 만나면서 로봇이라면 응당 느끼지 못할 감정들을 오롯이 느낀다. 아니, 애초부터 외부로부터가 아닌 내면에 담겨 있었을 것들… 전쟁시대에 살상무기로 만들어졌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은 고고를 두렵게 만들고 자신의 존재를 의심하게 만들지만 사막에서 마주치게 된 이들을 통해 고고는 자신의 정체성을 알게 된다.

담담한 문체 속에 녹아있는 인간적인 아름다움이 슬플 정도로 빛나고, 그 무엇도 설득하려 들지 않으면서 공감하게 만드는 힘이 매력적인 소설이었다. 천선란의 소설에 등장하는 모든 로봇들이 로봇의 겉껍데기를 입고 가장 인간적인 면모를 나타내듯, 그저 sf라는 장르를 빌려 인간의 내밀한 본성과 슬프고 아름다운 진실을 말하는 작가를 어떻게 사랑하지 않을 수 있을까? 또 삶의 목적을 상실했을지라도 남아 있는 여정을 묵묵히 걸어갈 수 있게 하는 인간의 성실함과 위대함을 아는 작가를 어떻게 안 사랑해?

끝까지 다 읽으신 분들은 아시겠지만 이 작품은 사진이 아닌 그림에 관한, 슬픔이 아닌 그리움에 관한 이야기다. <랑과 나의 사막>은 어린왕자 마지막 부분에 있는 별과 사막의 그림처럼… 내게 영원히 잊히지 않는 ‘그림’이자 ‘그리움’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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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도 이미 알고 있잖아. 그게 그리움이라는 걸.”_13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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