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알마를 꽤 좋아한다. 내 책장에는 알마 코너가 따로 있을 정도로, 굳이 고민하지 않고 믿고 보는 출판사 중 하나로 알마를 택한다. 다른 출판사들도 몇 개 있긴 한데 책의 크기나 표지, 편집, 내용의 축약이라던가 번역등등을 따졌을 때 가장 선호하는 출판사는 알마다. 심지어 알마의 소식을 접하기 위해 페이스북에 가입했다. 아이디와 비밀번호를 잊어서 들어가지 못한지 꽤 됐지만, 만약 평생동안 딱 한 출판사의 책만 봐야한다고 하면 역시 알마를 고를 것이다. 그만큼 내가 이 출판사를 좋아하기 때문에 이 책에 대해 약간의 불만이 있다. (그러나 구입은 했다. 믿고 보니까.)
나는 왜 이 책을 마음에 들어하지 않을까 여러 차례 생각해봤다. 사실 내용에는 불만이 없다. 내가 불만이 있는 것은 단지 제목 뿐이다. 마르틴 부르크하르트의 지적 생활인을 위한 일상 인문가이드, 원제는 Eine kleine Geschichte der großen Gedanken. 슬프게도 독일어를 못하기 때문에 영어로 돌려봤더니 위대한 아이디어에 대한 짧은 역사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었다. 저 제목으로 책을 냈을 경우를 생각해보니, 확실히 매출이 팍 줄어들 것이라는 생각도 든다. 사실 출판사의 매출을 위해서 제목을 변경하는 것은 어쩔 수 없다. 그런데, 왜 하필이면 지적 생활인을 위한 일상 인문가이드인가.
그건 지금 ‘지적’열풍이기 때문일 것이라 추측한다. 정말 몹시 싫다.
지적 대화를 위한 넓고 얇은 지식이라는 책이 아마 선구였을까. 사실 저 책에는 별 불만이 없다. 하지만 읽지 않았다. 지적 대화를 하기 위해 어째서 얇은 지식이 있어야 하는지 내 기준으로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에 사지도, 빌리지도, 읽지도 않았다. 이건 내 편협함 때문이지만 소비자로서 그 정도의 권리는 있고, 때문에 나는 저 책을 논하지 않을 것이다. 단지 제목을 언급한 것은 이것이 ‘지적’이라는 단어가 들어가는 가장 유명한 책이기 때문이다. 이후 ‘지적’이라는 단어가 들어가는 책을 찾아봤다. 지적 자본론, 지적 대화를 위한 무언가, 지적 여행자를 위한 무언가, 지적 생활의, 지적으로 나이드는, 지적 생각, 지적 유산, 지적 작업자를 위한 기타등등 무수한 지적에 대한 책들이 있는데, 대체로는 지적이라는 단어가 들어가지 않아도 무방하다.
마치 과거가 떠오른다. 2005년도에는 웰빙이 유행이었다. 잘 먹고 잘 살자는 내용이 대부분이듯 그때는 나름, 지금에 비해 특히 풍요로운 분위기가 느껴진다. 이 웰빙 유행 다음은 기이하게도 힐링이었다. 그에 대해서는 할 말이 많지만 하지 않을 것이다. 힐링 다음에는 더 기이하게도 아픔이었다. 아프니까 괜찮다는 식의 (아픈건 괜찮지 않다.) 내용이 쏟아져 나왔다. 이 다음이 인문의 유행이다. 인문학적인, 인문학의, 인문적인. 그놈의 인문타령에 머리가 아파왔다. 심지어는 인문이라고 할만한 내용도 아닌, 자개개발과 별반 다를게 없는, 철학자들의 이름을 주욱 나열해놓고 인생에 크게 도움이 된다는 식의 책이 나왔다. 책장수가 아니라 약장수 같다는 생각이 든다. 인문이 유행의 흐름에 올라와 각광받는 것은 인문책을 사랑하는 사람으로서 매우 감사한 일이지만 내가 원했던 것은 멘토들이나 대중매체에서 다루는 것과 같이 알맹이 없이 자신의 지적 암기력을 자랑하며 명언제조를 나열하는 책들이 아니다. 지적 과시를 원하는게 아니란 말이다.
그런데 알마에서 그런 제목의 책이 나왔다. 나는 웬만하면 구입을 하는 편이지만 약 세달간 고민을 했다. 그래도 세달 고민은 나은 편이다. 까치 출판사에서 나온 포크를 생각하다는 굉장히 재미있는 책이지만, 그 극악한 표지 때문에 2년을 고민했다. (물론 역시 구입했다.) 그러니까 두달 정도야 뭐. 그리고 내용 역시 내가 기대했던 만큼의 가치는 있었다. 책은 재밌었다. 제목은 마음에 안들지만.
나는 사실 궁금하다. 왜 각종 출판사들은 지적에 목매는 것일까. 요근래 서점을 가지 않아 지금 어떤 것이 유행하는지는 모르겠지만(지금은 간결이 유행인 것 같기도 하다. 너나 나나 버리기 열풍이다. 심플하게 사는 법, 버리는 법, 심지어 신문에서도 저장강박을 논하는거 보니 아무래도 사람들이 꾸준히 찾는다면 저런 형식이 유행이 될 것 같다. 몹시 싫다.), 아직 지적 유행에서 벗어나지 않았다고 가정해보았을 때 나는 여전히 이 지적인 유행에 대해 이해하지 못하겠다. 사람들이 힘드니까, 힘들지 않다고 아파도 괜찮다고 힐링하자고 출판계를 휘몰았던 것처럼 사람들이 지적이지 않기 때문에 지적인 사람이 되자고 이렇게 하는건지, 아니면 정말 아무런 생각이 없는 채로 그냥 유행하니까, 사람들이 잘 사니까, 파리니까 저런 제목을 지은건지 말이다. 사실 지적인 대화나 지적인 무언가를 위해 만들어진 책이라면 정말 지적인걸 원하는 사람들은 그걸 안 보지 않을까? 그리고, 우리나라 독자들이 꽤 ‘지적’인 위치에 있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된다. 상대적으로 과거와 지금의 정보량이 다른 것도 있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잘 된 교육을 받고 자랐다. 고등학교는 고등교육이고, 대학은 사실 특수계층의 교육이다. 우리나라는 취업학교로 변절했지만 그렇다고 교육 수준이 떨어지는 건 아니다. (다만 교육의 수준이 높다고 교육받은 사람들의 수준이 높다는 말은 차마 하지 못하겠다.)
어쨌든 나는 이런 형식의 제목의 책을 볼때마다 기분이 매우 이상하다. 내 억측인건지, 아니면 내가 예민폐인건지 모르겠다. 슬프게도 이런 제목을 가진 책은 잘 팔린다. 이게 소비자가 사서 출판사에서 더욱 그런 책을 내는건지, 아니면 출판사에서 그런 식으로 유도를 하는건지도 모르겠다. 이 생각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전혀 상관없는 생각까지 야기시키는데, 출판사들은 책을 사주는, 책을 꾸준히 읽는 사람들을 대상으로 책을 내는건지, 아니면 책을 읽지 않는 사람들도 책을 읽게 만들기 위해 책을 내는 건지 모르겠다. 만약 후자를 위한 거라면 사실 이 ‘지적’이라는 제목은 마케팅에 꽤 알맞다. 나는 달라 병에 아주 적합하기 때문이다. 전혀 다르지 않지만 난 다르다고 생각하는 힙스터 무리들을 대상으로 책을 내놓는다면 꽤 많이 팔릴 것이다. 하지만 저런 책은 책을 꾸준히 읽어온 사람들은 선호하지 않을지도 모른다.
이야기가 길었습니다만, 이건 알마에서 나온 책에 대해 논하는 게 아닙니다. 출판사에서 기획한 의도대로, 보통 사람들도 쉽게 읽을 수 있는 일상의 인문학과 이야기에 대한 내용이라고 생각합니다. 다만 지적이지 않아도 지적이라는 단어를 남발하는 시기에, 이 책은 누군가에는 조금 어려운 내용일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그리고 사실 전 별 3점이었습니다만 평점이 낮은 것 같아 하나 올립니다. 북플이 별 반개 단위로 평가를 해 줄 수 있게 업데이트 해주길 몹시 바라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