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주는 본명이 아니다.
2022년 6월, 사건이 발행하고 몇 주 뒤 마비되었던 다리에 감각이 돌아온 순간 그녀는 '진주'라는 이름을 지었다.
진주는 6월의 탄생석이었다. 그때 그녀는 '다시 태어났다'라고 생각했다.
부산 돌려차기 사건,이라고 검색창에 적으면 수없이 많은 기사가 쏟아져 나온다.
무엇이 진실을 가장 잘 담고 있는지, 무엇이 피해자의 입장을 가장 잘 전달했는지 헷갈릴 정도로 많은 기사가.
고백하자면,
당시 나는 이 사건에 관심을 많이 기울이지 못했다. 대체로 많은 문제들 앞에 그랬다.
관심을 가질수록 답답해지고, 무서워지고, 힘들어져서.
화를 내다가 아무것도 할 수 없어서 묻어두는 식이었다.
프리랜서 디자이너, 버스킹을 좋아하는 낙천적인 이십 대 여성.
그렇게 평범하게 나이 들어갈 수 있었다. 그날 그 사건이 아니었다면.
이 책에서 뉴스에선 다 담을 수 없었던 피해자로서의 이야기를 낱낱이 적었다. 어느 불행한 사람의 이야기가 아닌 여러분의 이야기가 될 수도 있다. 아쉽게도 범죄를 피할 수 있는 방법 따윈 없다. 우린 모두 예비 피해자다. 대신 책을 읽고 나면 범죄 피해에 잘 대응할 수 있는 사람이 될 것이다.
그러니 바이러스에 걸리지 않기 위해 백신을 맞는 것처럼 이 책을 예방주사처럼 여기며 읽어주셨으면 좋겠다. 지인들에게도 추천해 주셨으면 좋겠다.
그리고 그 누구보다도 네가 꼭 끝까지 읽었으면 좋겠다. - <프롤로그> 중에서, p16
"그 누구보다도 네가 꼭 끝까지 읽었으면 좋겠다."
이 문장은 주문처럼 읽혔다. 가해자는 20년 형을 선고받았다. 처음 12년을 선고받았고, 피해자는 스스로 모든 걸 바꿔 놓았다.
살인미수에서 강간살인미수로. 누구도 아닌, 피해자가 해낸 일이었다.
그 과정에서 사법부에 많이 실망하고, 피해자가 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다는 무력감을 느끼고, 외롭게 싸워야 했던 순간들.
그 순간에도 진주 씨는 포기하지 않았다. 그리고 해냈다.
물론 검찰이 구형한 36년보다 훨씬 줄어든 형량이었지만.
사건 이후 피해자인 진주 씨가 보낸 500여 일이 책 속에 담겨 있다.
이 책에 관한 내용 소개는 진주 씨가 적은 프롤로그만으로도 충분하다는 생각이 든다.
우리 모두 예비 피해자가 될 수 있다는 건, 생각만 해도 몸서리가 쳐진다. 집에 가는 길을, 길에서 친구들과 웃으며 버스킹을 보는 즐거움을, 가볍게 술 한잔할 여유를,
매 순간 겁내며, 두려워하며 살아야 한다는 거니까. 예방주사 맞듯. 이 책을 읽자.
예방주사와 다른 게 있다면 예방 주사는 맞고 나면 금방 잊힌다. 언제 맞았냐는 듯.
이 책은 읽고 나면 잊을 수 없을 것이다. 누군가에게 소개하고 싶어질 거고, 조금 더 알고 싶어질 거고,
그러다 다른 이야기들에도 귀 기울이게 될 거다.
좋은 사람들을 많이 만나게 됐지만 아직도 나는 대한민국 국민이 아니라는 생각을 여전하게 가지고 있다. 피해자가 되어보지 않으면 모른다는 말에 백번 공감한다. 왜 이렇게 착하게 사는 사람들을 괴롭힐까. 힘 있는 사람들을 괴롭혀서 법이라도 빨리 바꿀 수 있으면 좋겠다는 괴팍한 생각도 들었다.
- P165
아직 바꿔나갈 것들은 말 그대로 산투성이다. 또 새롭게 만들어지는 제도들에도 사각지대는 있을 것이고 계속 보안하고 수정해 나가야 한다. 난 끝까지 물고 뜯을 거다. 아마 내 평생 가해자와는 떨어지지 못할 것이다. 그 이외에도 국가에 대한 돌도 계속 던질 계획이다. 수사 초기 부실했던 수사의 문제점을 꼬집는 국가배상을 할 것이다. 보상을 바라는 게 아니라 지금 가지고 있는 수사의 부실한 점을 보완하고 기억을 잃은 피해자들을 향한 수사 매뉴얼을 다시 구축하라는 의미에서. 아마 나는 범죄에서 영원히 뗄레야 뗄 수 없는 인생을 살 거다. 언젠가는 피해자들이 나를 찾지 않는 세상이 오길 바라지만 그때까진 열심히 나설 예정이다. 얼굴 없는 피해자로.
- P29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