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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요일그녀,
  • 완벽한 가족을 만드는 방법
  • 정은숙
  • 11,700원 (10%650)
  • 2023-07-07
  • : 645

아빠는 오래 공단에서 일했다. 힘들게 모은 돈으로 아파트를 샀다. 그러다 어느 날 갑자기 아파트가 사라졌다.

우리는 방 두 개 작은 집으로 이사를 했다. 고등학교 2학년 때 일이었다. IMF 한가운데를 통과하고 있었다.

대단히 부유하게 살다가 하루아침에 가난해진 것도 아니었는데, 한참 예민했던 고등학생에겐 모든 게 힘들고 짜증 나는 시절이었다.

아빠는, 엄마는 나보다 몇 배는 더 힘들었을 거라는 걸 한참이 지난 뒤에야 알게 되었다.

선빈이네 가족은 부유했다. 아빠의 사업은 승승장구했고, 엄마는 부잣집 사모님 소리를 들으며 우아하게 살았다.

선빈은, 큰 꿈은 없었지만 아빠의 재력 덕분에 곧 유학을 떠날 계획이었다. 아빠의 사업이 망하기 전까지는.

그때까지는 모든 게 순조로웠다. 아빠는 돈을 갚지 못해 구속되었다. 겨우 남은 돈으로 얻은 전셋집은 사기를 당했다.

엄마는 부잣집 사모님에서 하루아침에 전세사기를 당한 가진 것 없이 청소년 딸과 감옥에 간 남편을 둔 한 집안의 가장이 되었다.

소설을 읽으면서 느낀 선빈이라는 아이는, 오래전 나와 비슷한 나이였지만 어딘지 모르게 달랐다.

이 아이는 주눅들지도, 그다지 절망하지도 않는 것 같았다. 나는 그게 참 신기했고, 좋았다.

물론 갑작스럽게 휘몰아친 상황들에 혼란스러워했지만 아빠를 원망하지도, 엄마를 미워하지도 않았다.

"미워도 밥은 먹이고, 큰 소리를 내고 결국 마주 앉는 이런 게 가족인가?"

그런 게 가족 맞는 거 같다. 어느 면에서는. 징글징글하다고 말하는 그 가족. 그럼에도 가족이라고 말할 때 그 가족.

소설은 뻔하게 '가족'을 이야기하고 있는 것 같지만 아니었다.

작가는 묘하게 다양한 모습의 '가족'을 소설 안으로 들여왔다.

재혼 가족, 매일 싸우는 가족, 부모와 함께 살지 않는 가족, 할머니와 단둘이 사는 가족, 사회적 문제로 소중한 식구를 잃은 가족......


선빈의 친구 민하는 가족을 제일 믿지 못한다고 했다. 피가 섞였다고 무턱대고 맹신하다니. 이거 좀 공감 됐다.

때론 가장 믿지 못할 게 가족, 가장 힘들 게 하는 게 가족, 가장 징글징글한게 가족.

근데 또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족'이라서 가끔 뭔가 이상하다는 생각이 든다.

다양한 '가족'은 어디에 있을까.


소설 속에 '정말 그런 일이 가능하다고?' 싶은 반전이 있는데 그 장면에서 '아, 작가님 멋있다!'라는 말이 절로 나왔다.

작가님은 이미 알고 있었던 것 같다.

가족은 미지수라는 걸.

완벽한 가족을 만들 수 있을지 모르지만, 피를 나누지 않아도 가족 같은 사이가 될 수 있다는걸.

이미 각양각색의 모양으로 우리는 관계를 맺으며 살아가고 있다는걸.

그러니까 우리가 상상하는 어떤 모습으로든 '가족'을 만들 수도 있다는 걸 말이다.


"살다 보면 많은 일들이 생겨. 내 깐엔 저승 가기 전에 좋은 일 한다는 뜻으로 했지만 누군가에게는 못마땅할 수도 있겠지. 하지만 어떻게 매번 정답을 찾을 수 있겠어. 공부 못한다니 잘 알 거 아냐? 정답 찾기가 얼마나 힘든지." - <to be continued> 중에서


맞다. 특히 삶이라는 답 없는 문제 앞에 어떻게 정답을 잘 찾을 수 있을까.

많은 어른들이 먼저 삶에 정답이 없다는 걸 인정했으면 좋겠다. 그래야 아이들에게 마치 자신의 이야기가 정답인 듯 라떼는~ 같은 이야기를 더 이상 하지 않을 테니까.

그냥, 아이들이 자기 하고 싶은 대로 하면서 살면 좋겠다. (그리 오래 살진 않았지만) 엄마, 아빠가 해줄 수 있는 일이란 게 그리 많지 않은 것 같다. 그리고 그리 많지 않았으면 좋겠다. 그래야 서로 좀 덜 의지하고, 덜 기대하고, 덜 질척대면서 살 수 있지 않을까.

이 소설을 읽는 청소년들이 책을 덮고 '아, 개운하다' 싶었으면 좋겠다. 그냥 하고 싶은 거 하면서 살자고 마음먹었으면 좋겠다. 그리고 부모도 그냥 사람이구나, 저들의 삶도 참... 하고 가까운 타인을 대하듯 너그럽게 바라봐 주면 참 좋겠다.


왜들 이렇게 열심히 사는 걸까. 누구에게나 똑같이 주어지는 시간인데 왜 남들보다 열심히 살지 못해 안달을 하는 걸까. 잠을 줄여 가며, 코피 터져 가며, 자존심 구겨 가며, 허리띠 졸라매 가며, 배고픔을 참아 가며 최선을 다해 사는 사람들은 많아도 성공하고 출세한 사람은 쉽게 찾을 수도 없건만. 도대체 왜들 그러셔요? 진심으로 묻고 싶었다.
- P45
누구처럼 고수가 아니어서인지 선빈은 불행이 시시하다고 생각되진 않았다. 하지만 고통과 쪽팔림을 같이 나눌 이들이 있다면 불행이 만만하게 보일 날도 오지 않을까 믿고 싶어졌다. 앞으로도 느닷없이 비는 오고 대략 난감한 상황이 발생하겠지만, 뭐 이까짓 것쯤이야 말할 수 있는 날이 올지도 모르겠다고......
- P2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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