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전엔 이런 고백이 그리 부끄럽지 않았다.
언제부턴가 이런 이야기를 꺼내는 게 좀 부끄럽다.
그러니까 이런 이야기
"나는 신혼여행 말고 해외여행 가본 적이 없어."
예전엔 여행을 많이 다니는 사람이 부럽지 않았다.
언제부턴가 그런 사람이 부럽다.
그냥, 짧은 여행 말고
한 도시에서 오래 머물면서 낯선 곳에서의 일상을 보내는 사람들이.
이 책 『동미』의 표지를 보는 순간 나도 모르게 가슴이 뛰었다.
책 제목도 그랬지만
사진 속, 폴짝 뛰어오른 여자의 모습이, 옆모습이지만 활짝 웃고 있는 것 같은 표정이 마음을 두근거리게 했다.
코로나 시대,
떠나고 싶어도 떠나지 못하는 (물론 나의 경우 대부분 떠날 수 있어도 떠나지 않았지만) 요즘이라서 그랬을까.
하지 말라고 하면 더 하고 싶어지는 사춘기 아이 마음처럼 '진짜 어딘가로 떠나고 싶다'는 마음이 들었던 것도 같다.
'동미는 자유롭다. 그의 인생엔 걸림돌이라고 할 만한 것이 별로 없다.
일, 연애, 결혼, 돈, 그 어떤 삶의 루틴 앞에서도 동미는 기죽지 않고 살았다. - 저자 소개 중'
일, 결혼, 돈 그 어떤 삶의 루틴 앞에 번번이 무너지는(지고 마는) 나로서는 '와, 부럽다' 하는 마음이 드는 게 어쩌면 지극히 자연스러운 감정일지도 모르겠다.
부러우면 지는 거라는데, '그래, 나는 이미 졌다.'
그러니 실컷 대리만족이라도.
누군가의 자유로운 삶을 염탐하듯 기웃거리며 부러워라도, 상상이라도 징하게 해보자 마음먹었다.
'베를린'을 사랑했던 여자.
처음 베를린에 갔던 13년 전, 첫 만남에 베를린에 짝사랑에 빠진 여자.
한국으로 돌아와 이듬해(2008년) 결국 '다시 베를린'이라는 책을 출간한 여자.
2014년 다시 찾은 베를린에서 뭔지 모를 쓸쓸함을 감지하고 돌아왔지만,
프리랜서 여행작가로 살겠다는 확신에 회사로 돌아가야 하나 하는 고민을 접었다.
친구와 경리단에 작은 바를 차렸으나 친구는 바를 차린지 1년도 안 돼서 결혼을 하고 베를린으로 떠났다.
친구가 있는 베를린으로 여행을 떠난 게 일 년 전.
그리고 그곳에서 예상치 못한 남자(사랑)을 만나 연애를 하게 되고, 동거를 시작했다.
이 책은, 처음엔 베를린 여행기로 기획되었지만 사랑하는 남자를 만나면서 예정에도 없던 로맨스를 쓰게 된 여행 작가의 에세이다.
원래 쓰려던 여행기를 접고, 부끄럽지만 소소한 사랑 이야기를 썼다. 뒤늦게 만난 중년의 연애 이야기가 뭐 대단한 게 있을까마는, 뻔한 사랑 이야기가 아니라 오랫동안 싱글로 살던 한 여자의 또 다른 삶의 과정으로 읽어주면 좋겠다. 한 남자가 아니라 한 사람과 깊이 교감하며 연애와 삶에서 새로 알게 된 것과 느낀 것들, 즐거운 한때를 기록한 이야기라고 이해해 주면 좋겠다.
- 프롤로그 중에서, p8
누군가의 연애 이야기를 듣는 것만큼 재밌는 이야기가 또 있을까.
연애 세포는 다 죽었는지 잘 생긴 남자를 봐도 '저 남자라고 집에 있는 남자랑 뭐 다르겠어.' 하는 마음이 드는 10년 차 아줌마에게도
간혹 슬쩍슬쩍 들리는 남의 연애 이야기엔 귀가 쫑긋하더란 말이지.
책을 읽으면 알게 된다.
작가가 말한 '뻔한 사랑 이야기가 아니라 한 여자의 또 다른 삶의 과정'이라는 걸.
낯선 나라에서, 낯선 방식으로 누군가를 만나고 관계를 맺어가는 일 자체가 뻔하지 않다.
그 뻔하지 않은 상황에 기대 글이 별로였다면 '아, 그랬구나.'하고 그만이었겠지만
여행기로서도, 에세이로서도 꽤 흥미롭게 읽을 수 있는 책이었다.
(물론, 내 취향에 맞았으니까 그랬을 거다.)
베를린에 도착해 제일 먼저 (친구의 권유로) 데이팅 앱 '틴더'를 시작했다.
그리고 몇몇의 남자와 그렇고 그런 만남을 거쳐 '스벤'이라는 특별한 남자를 만났다.
사랑에 빠지게 되면 모든 사람을 특별해지니까.
이 책 속의 이야기는 작가와 스벤의 사랑 이야기이면서 작가가 한 남자를 만나 (베를린에서) 어떻게 살게 되고,
어떤 마음의 변화를 거치게 되는지 자연스럽게 들려준다.
(외국에서의 생활이 어떨지 상상만으로는 한계가 있어서 데이팅 앱으로 사람을 만나는 일이 그렇게 쉬워? 하는 마음이 들기도 했지만
베를린에서는 많은 사람들이 이용하고, 커플이 되는 사람들도 꽤 있다고 했다.)
난 우는 게 창피하지 않아. 그래서 눈물도 금방 나. 혼자 있을 땐 오히려 안 울지만, 내가 가깝다고 느끼는 사람 앞에선 금방 울 수 있어. 동양에서는 남자가 우는 일이 흔하지 않고 터부시된다는 걸 알고 있어. 하지만 남자건 여자건 감정을 내보이고 우는 건 절대 창피한 일이 아니야. 오히려 그걸 참고 숨기는 게 문제지. 참고 참았다가 나중에 화병이 되거나 폭력적으로 되는 게 더 나쁜 거야. 참으면 더 큰 병이 돼. 나도 한동안 불안장애를 앓았지만, 지금은 사람들에게 숨기지 않고 얘기해. 그건 절대 창피한 일이 아니니까.
- <그가 처음 울던 날> 중에서, p56
불안 장애를 앓았던, 눈물이 많은, 외국인 남자를 만나 사랑에 빠질 확률이 얼마나 될까.
아마 작가 역시 틴더를 깔고, 남자를 만났지만 진짜 운명처럼 사랑에 빠지는 남자를 만날 기대를 한 건 아니었을 거다.
둘의 사랑은 낯섦과 불안과 (한국과 베를린의 거리만큼) 언젠가 한 번은 떨어져 있어야 한다는 애달픔과 그럼에도 달달함이 합쳐진
특별하게 포장될 수 있는 '사랑'처럼 보였다. 처음엔.
글을 읽을수록, 둘의 이야기에 빠져들수록
사랑은 결국 '포장'이 아니라 그냥 그대로 '사랑'이구나 싶어졌다.
"불안해서 그래. 불안하니까 너한테 계속 확인받으려는 거야. 네가 날 좋아한다는걸, 나랑 계속 같이 있고 싶다는 걸 자꾸 말로 들어야 안심이 돼. 왜 불안하냐고? 특별한 이유가 있는 게 아니야. 나의 불안이 그냥 감기처럼 찾아오는 거야."
그가 불안해할 때마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별로 없다는 걸 알았다. (중략)
나 또한 스벤을 만나기 전, 냉소적이며, 스스로에 대한 자신이 없고, 우울한 마음이 한 편에 있었다. 그 우울함은 사실 <타임아웃 서울> 매체를 그만둔 이후부터 조금씩 생겼다. 온 애정을 쏟아부어 만든 매체를 예상치 못한, 심지어 어처구니없는 상황으로 접어야 했던 것이 내게는 큰 상처와 우울이 됐다. 그런데 애써 괜찮은 척, 밝은 척하며 지냈다. 곧 괜찮아질 거라고 방치했다. 여름마다 베를린으로 온 건, 사실 일종의 도피였다. 어디로든 서울이 아닌 곳으로 떠나고 싶었고, 베를린에 오면 그나마 잠시 위안을 얻을 수 있었다. (중략)
"날 떠나지 않을 거지? 계속 나랑 같이 있을 거지?"
오늘도 그가 똑같은 불안의 질문을 한다. 이제는 애 또 묻냐고 되묻는 대신, 그의 얼굴을 쓰다듬으며 몇 번이고 속삭여준다.
"응, 난 너랑 같이 있을 거야. 널 떠나지 않을 거야. 너도 내 옆에 있어줄 거지?"
내가 듣고 싶은 말. 그 말을 아끼지 않고 스벤에게 한다.
- <나의 불안이 감기처럼 찾아온 것뿐이야> 중에서, p77
언젠가(정말 언젠가) 기회가 찾아올지 모르겠지만,
내게도 그런 시간이 찾아온다면 몇 개월 살아보고 싶은 곳이 있다.
지금보다 조금 더 어렸을 때는 '프랑스'라는 나라가 그랬고,
최근 1,2년 사이에는 '스웨덴'이라는 나라가 내게 그렇다.
작가가 현실 도피처럼 선택했던(찾아갔던) 베를린이라는 도시에서 또 다른 삶의 방향을 찾아내고, 자연스럽게 자신의 삶을 살아가는 것처럼
낯선 곳에서 '나'를 바라보는 시간을 갖고 싶다는 게 나의 버킷리스트 중 하나다.
그 여행에 지금의 짝꿍이 동행을 하게 될지, 아이들이 함께 하게 될지 알 수 없지만 되도록이면 혼자, '나'로 떠나는 여행이 되면 좋겠다는 바람도 가지고 있다.
'사랑' 이야기에 (빠져서) 여행기로서의 책 이야기를 놓친 것 같아 아쉬운 마음도 들지만,
그건 다시 이 책을 읽게 될 또 다른 독자들의 재미로 남겨둬야겠다.
그리고 나는 한 가지를 챙겨 마음에 담고 이 책을 책꽂이에 이쁘게 꽂아 두기로 했다.
언제가 내가 여행을 위한 가방을 싸게 될 때, 다시 이 책을 꺼낼 수 있으면 좋겠다(여행을 떠나는 날이 오면 좋겠다는 이야기다.)
마음에 챙겨 담은 한 가지는 이거다.
'나이가 들수록 유연한 삶의 자세를 잊지 말자는 것'
언제 어디서 어떻게 나의 인생이 다른 방향으로 흘러갈지 알 수 없으니
지금 내 삶을 불행이나, 행복으로 평가하지 말고 자연스러운 삶의 일부분으로 여기면서
일어날 수 있는 많은 가능성들에게 너무 눈치 주거나, 거리를 두지 말자는 것.
나도 베를린에서 살고 싶은 때가 있었다. 뭘 해도 자유롭고 새로운 것 투성이인 이 쿨한 도시에서 살아보고 싶었다. 하지만 모든 걸 훌훌 털고 오기엔 용기가 없었다. 30대 중반이란 나이도 그땐 늦었다고 생각했다. 여행 기사 쓴답시고 자주 외국을 다닌 것도 다른 도시에 살고 싶은 갈망을 줄였다. 한 달에 한 번씩 출장을 갔다 돌아오는, 내 집 있는 서울이 좋았다. 외국에 나가면 나갈수록 서울만큼 살기 편한 도시도 없다는 걸 깨달았다. 사랑하는 가족과 친구들, 내 영혼의 한식이 있는 서울을 굳이 떠날 이유가 없었다. 나이가 들수록 '나가면 고생'이란 생각만 늘고, 도전정신은 안일함, 귀찮음과 자주 맞바꿔 먹었다.
이런 내가 다 늦게, 갑자기, 베를린에서 살게 됐다. 거창한 계획도 없이, 베를린에서 만난 남자 하나 믿고 옮겨와 살고 있다. 온갖 애정으로 사들인 서울의 살림살이며, 친구며, 가족을 다 서울에 두고 왔다. 베를린에서 뭐해 먹고 사나 하는 걱정이 없는 건 아니다. 하지만 그 고민은 서울이든 베를린이든 어디서나 하는 것. 프리랜서 작가로 오래 살았고, 한 직장에 매인 몸도 아니어서 결정하기가 쉬운 것도 있었다. 하지만 베를린에 훌쩍 오게 된 건 뭐랄까, 나이가 들수록 삶이 유연해졌달까. 아니면 만만해졌달까.
- <베를린으로 오는 건 평생의 꿈이었어> 중에서, p17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