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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을 수 없는
  • 해부학자의 세계
  • 콜린 솔터
  • 25,200원 (10%1,400)
  • 2024-09-30
  • : 835
-20260815 저자: 콜린 솔터.

이십 대에 초심자를 위한 해부학이라는 외국 영상물 시리즈를 다 본 적이 있다. 특별한 이유는 없었다. 텔레비전 방영분인지 방청객이 해부대를 둘러싸고 앉아 있고, 선생님이 가공 처리 된 시신 일부를 소화계, 근골격계, 순환계, 생식계 이런 식으로 한 편씩 파헤쳤다. 그냥 그런 영상을 봤다는 기억만 남고 그때의 기분이나 정보들은 다 잊어버렸다. 직접 해부를 해보고 싶은 생각은 전혀 없지만, 몸 속 세계에 대한 궁금함은 여전한건지 해부 들어간 책을 소설이나 만화책과 운동책, 논픽션을 포함해 여러 권 사 놓았다. 이 책도 그 중 하나이다. 작은어린이는 몸 속을 보여주는 그림을 아주 싫어해서, 인체에 대한 어린이 책과 모형을 전부 안 보이는 곳에 치워두었다. 언젠가는 막연한 두려움이 사라지면 좋겠다.

원제는 해부학자의 도서관, 해부학자의 서재 쯤 된다. 이 제목이 책 내용과 관련해서 조금 더 솔직하다. 저자는 다양한 시대의 해부학자들이 저술한 백여 권의 책들을 소개한다. 학자들에 대해 알려진 내용이나, 의학에 기여한 발견, 한계까지 간략하게 짚어준다. 해부학 내용 그 자체를 다뤘다기 보다 해부학의 역사책이다.

사람이 아픈 이유를 알고 낫게 하려면, 몸의 구조와 기능을 아는 것도 가장 중요한 일 중 하나이다. 그러려면 해체해서 부분을 자세히 관찰하고 부분 간의 연결을 확인하는 것도 필요하다. 해부학의 역사는 기원전 3천년 파피루스에 관련 기록이 남을 만큼 길고 오래 되었다고 한다. 어느 시절에는 해부가 허용되어 죽은 또는 산 채로 사람 몸을 갈라 학자가 궁금한 바를 발견할 수 있었고, 덕분에 후대 학자들은 더 나은 발견을 하거나 사람들을 치료하는 데 도움을 받았다. 그러나 제법 긴 기간 동안 해부는 금지되어 학자들은 오래 전 책과 낡은 지식을 참고하고, 일부는 몰래 해부를 하는 경우도 있었다.

내가 영상으로 봤던 방청객이 있는 해부학 실습은 꽤 오래 전부터(적어도 500년 전) 있던 일이었다. 해부 극장이라는 게 있어서 학자들이 해부 시범과 인체 부분들을 보이면 빙 둘러앉은 사람들이 보는 식이었다. 이 책에는 그렇게 수많은 사람에 둘러 싸인 해부 실습 장면을 그린 그림이 여러 가지 나왔다. 물론 상세하게 인체 세부를 시각화한 그림이 더 많이 수록되어 있다.

르네상스 하면 인간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고대 그리스의 학문을 재발굴하고 예술 분야가 발달했다는 이야기를 들어 왔는데, 인간을 탐구하는 분야 중에 해부학이 빠질 수 없다는 걸 알았다. 유명한 예술가인 레오나르드 다빈치와 미켈란젤로의 정교한 작품들이 해부학을 기반으로 했다는 것이 이 책에도 소개되었다. 특히 이 책 중반부에서는 이탈리아 지역의 해부학책을 지은 학자들을 많이 소개했다. 너무 많아서 이름들을 다 못 따라갈 지경이었다.
전에 달갑지 않게 읽은 소설 ‘해부학자’의 주인물인 콜롬보(음핵 발견자)가 여기서도 등장했다. 콜롬보와 그의 제자 발베르데와 대립하는 베살리우스가 낸 책은 엄청 성공해서 그의 책의 해부도를 대놓고 베끼는 일이 흔했다고 한다. 표절한 책이 넘칠 만큼 사람들의 인체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해부학책이 돈이 되었다는 뜻이다. 이게 베살리우스에게는 열받는 일이지만 덕분에 그의 책 오류도 수정되고 조금 더 새로운 발견이 덧붙여지기도 했으니 미래 사람에겐 도움이 되지만 이렇게 말하면 나중에 지옥에서 베살리우스가 나를 해부하려 들지도 모르겠다. 이후로도 수많은 훌륭한 해부학 서적이 등장하고, 삽화 표절이나 번역서를 자기가 지은 척 하는 일이 계속 이어진다.

해부학이 발달하고 공식화되어 실습이 많이 실시될수록 시신 수요가 늘어나서 별일이 다 있었다. 영국 정부가 살인범은 공개 해부한다, 했더니 살인 범죄가 줄어들어 시신 공급이 모자랐고, ‘빈민, 정신질환자, 죄수의 시체까지’ 해부용으로 허락하는 유럽 국가들이 생겼다. 시신은 시장 거래 대상이 되어 묘지 도굴, 시신을 만들려는 살해까지 일어났다.

주로 이탈리아, 영국, 독일, 네덜란드, 프랑스 등 유럽의 해부학 서적을 소개하지만, 일본은 18세기에 동아시아 국가 중에서 비교적 이르게 유럽의 해부학을 도입했다는 걸 알게 되었다. 그래서 일본의 해부학 고서적 또한 많이 남아 있었고 이 책에 소개되었다. 수술 전 마취를 하는 시도가 일본에서 유럽보다 40년 가까이 먼저 있었다는 게 흥미로웠다 .

빌 헤이스의 ‘해부학자’에서 알게 된 두 헨리-그레이와 카터-가 ‘그레이 해부학’의 공저자라는 것, 그걸 그레이가 다 숨기고 이익 대부분을 차지했다는 것을 이 책에서도 언급했다.

어려서 본 적 있는 ‘인체의 신비전’을 가능하게 한 플라스티네이션 기술을 개발한 군터 폰 하겐스도 빠지지 않았다. 그가 2002년 극장에서 공개 해부를 실시하는 것을 영국 채널4에서 방영했다고 하는데, 아마도 내가 본 영상의 모자 쓴 해부학자가 이 선생님이 맞는 것 같다.

이 책의 장점은 책에서 소개하는 오래된 책의 삽화 일부를 전부는 아니지만 꽤 많이 실어 놓은 것이었다. 그래서 칼라 페이지가 많고, 주석 포함 400여쪽의 페이지에 겁먹었던 것에 비해 잘 읽혔다. 걸렸던 점도 있다. 독자의 주의를 끌려는 건지 해부학자와 관련된 일화나 해부 대상이 된 시신 중 신분이 밝혀진 극소수의 사람들에 대해서도 이야기한다. 그래서 이렇게 흥밋거리처럼 넣어도 되나? 하는 생각을 잠시 했지만 내내 진지했으면 내가 읽는데 버거웠겠지, 하고 말았다.

해부학의 역사나 해부학 도감에 대한 관심이 있는 사람, 해부학이 뭔지 왜 해부를 하는지 잘 모르겠는 사람, 본격적으로 해부학이나 미술을 공부하고 있는 사람(이 경우엔 머리 식히기용)은 재미있게 볼 만한 책이었다. 나는 어쩌다보니 샀으니까 집에 있어서 읽었다...라고 하기엔 인체에 관한 책을 열심히 보고 있구만…나는 인간이 정말 궁금한가 보다.

+밑줄 긋기
-‘(…)화가, 조각가, 건축가, 금세공인, 자수업자, 목수를 비롯해 회화 및 조각 예술을 사랑하는 모든 이에게 유용하고 필요한 책’이다. 요약하면 예술가를 위한 예술가의 책이라는 뜻이다. (201, 주앙 쿠쟁이 쓴 학습서 ‘초상화 기법’(1595)의 타겟 독자. 의학 외의 분야에도 해부학은 많은 영향을 주었다.)

-파리에서 해부학을 배우면서 그(윌리엄 헌터, 해부학자)는 젊은 외과의들이 죽은 자로 먼저 실습하면 산 자를 덜 죽일 거라고 확신하게 되었다. (270-271, 외과의 해부학 실습이 의무화 된 게 18세기에 와서야라니…)

-‘삶과 죽음에 관한 생리학적 연구’에서 그(그자비에 비샤)는 생명을 해부학적 측면에서 정의했다. 그는 생명이란 “죽음에 반항하는 기능의 완전체”라고 했다. 이어서 “사방에서 자기를 파괴하려 달려드는 상황에서 살아 있는 몸이 존재하는 방식이다”라고 했는데, 아마도 비위생적이고 피비린내 나는 프랑스 혁명을 겪으며 얻은 통찰일 것이다. (316-317, 생명에 대한 관점이 독특했다.)

-(영국) 해부학법의 예기치 않은 결과는 망자의 주검에 대한 굴욕스럽고 경멸적인 공개 해부를 가난한 사람들의 몫으로 만든 데 있었다. 해부는 더 이상 범죄에 대한 형벌이 아닌 가난한 죄에 대한 형벌이 되었다. (326, 시신 거래의 합법화는 장례를 치를 수도 없는 빈곤한 사람의 시신을 거래되게 만들었다.)

-(…)시신은 임신 막달에 스스로 목숨을 끊은 가엾은 젊은 여성이었다. 브라우네(냉동 사체 단면 전문가)는 1870년에 이 시신을 받아서 얼린 후 엄마와 아기를 위에서부터 아래로 절반으로 자른 다음, 태아의 두 반쪽을 다시 합쳤다. (358, 있던 일을 서술한 건데도 왜일까 시시콜콜 늘어 놓는게 좀 거부감이 드는 지점들이 종종 있었다.)

-해부학의 역사에서 자주 간과되는 것은 해부학자의 실험실이 되었던 몸과 그 영혼이다. 이들이 없었다면 해부학의 발전은 한없이 더뎠을 것이다. 이들은 살아 숨 쉬던 진짜 사람이었다.(…)

당신이 이름 모를 시신 위에 허리를 숙이고 딱딱한 메스의 칼날을 들이댈 때, 그 몸은 두 영혼의 사랑으로 태어난 존재임을 기억하라. 그는 그를 가슴으로부터 아끼고 보호한 사람의 믿음과 희망으로 키워졌다. 어린이였을 때, 젊은이였을 때, 그는 당신과 같은 꿈을 꾸며 미소 지었다. 그는 사랑했고 사랑받았으며, 행복한 내일을 희망하고 소중히 여겼고, 먼저 떠난 이들을 그리워했다. 이제 그는 이 차가운 슬레이트 위에 그를 위해 눈물 한 방울 흘려줄 이 하나 없고, 기도해줄 이 하나 없이 누워 있다. 그의 이름은 신만이 아실 것이다. 그러나 거침없는 운명이 그에게 인류에게 봉사할 힘과 위대함을 주었음을 기억하라. (’병리해부학 편람‘ 저자 카를 폰 로키탄스키가 1876년에 쓴 글 인용)
(361, 직전의 내 기분을 의식한 건 아니겠지만 곧이어 해부학의 윤리적 측면을 다룬다. )

-그의 네 권짜리 걸작에 실린 훌륭한 이미지는 나치 체제에서 사형당한 사람들의 몸이었다. 당시 나치는 동성애자, 집시, 반체제 인사, 유대인을 학살하여 인종 순수성을 추구했다.
(371, 나치 지지자 에두아르트 페른코프의 ’인체의 국소 해부학‘은 1937년 출간, 가장 훌륭한 삽화가 수록되었지만 윤리적 문제로 사용이 꺼려지고 있다고 한다.)

+표지는 친근감(?)들라고 꽃도 끼워 놓고 애썼다.

+’잔혹함의 보상’(윌리엄 호가스, 1751년)의 마지막 도판은 ‘의학집성’(케탐, 1491년)의 구체적인 묘사 영향을 받았다고 한다. 주변의 뼈솥이나 내장 노리는 개 무서워...

+‘인체 구성의 역사(발베르데, 1556년)‘의 근육남. 인체의 신비전에서도 이 모습을 비슷하게 재현해 놨었다. (1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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