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0706 저자:박완서.
박완서 단편소설집 3권은 1979년부터 1983년까지의 발표작을 모아 놓았다. 40대 후반에서 50대 후반의 작가가 그린 소묘에는 그보다 젊은 30대 언저리 여성들의 이야기가 많았다. 그래서 그런가 읽기에 퍽 재미있었다. 경제 성장기의 부유층들의 속물성이 자주 나오고, 일하는 여성은 자립에 대한 자부심을, 대부분 가정에 종속된 여성들은 공허와 지겨움과 알 수 없는 불안과 바깥 세상에 대한 끌림을 보여준다. 중년의 글이다 보니 늙음도 화두가 되었는지, 불쌍하거나 지독스러운 할머니들도 많이 나온다. 남자 화자가 나오는 소설도 제법 있었는데, 과거에 스쳐간 인물의 죽음 근처를 지켜보는 이야기가 여럿이었다.
에스엔에스에는 그 사람의 가장 즐거운 순간, 이색적인 먹거리, 차려입고 한껏 꾸민 모습이 양지에 드러난다. 반대로 온갖 시궁창 인생을 사는 사람들이 음지 방송이라고 망가진 자신의 삶과 밑바닥까지 떨어진 존엄성을 보여주며 관심과 돈을 받는다. 지금 삶들을 바라볼 구멍은 그렇게 극단적인 것들이 많다. 이 소설집의 소설들처럼 그 중간 어딘가에서 행복을 의심하고 번민하는 이야기는 역시 문학뿐일까, 그런데 최근 한국 문학을 잘 안 보게 되어서 나는 이 시대도 잘 못 알아보겠다. 그냥 어딜가도 들리고 보이는 건 에이아이요. 이야이야오.
에이아이 역량 강화 연수라는 걸 필수 참여라고 해서 참석했다. 젊고 부지런한 강사 선생님은 게으르고, 새로운게 벌써부터 두렵고, 귀찮은 나같은 인간한테 세상에는 당신이 모르는 이런 도구들로 성능 좋게 일하는 사람들이 있어요, 하고 알려주었다. 신기한 것도 있고, 벌써 써먹고 있는 것도 있고, 그렇지만 잘 모르던 게 대부분이었다. 도구는 알았으니 써 먹기는 내 몫일텐데, 누구 말대로 나이 들면 머리가 굳고 유연성이 떨어지고 그야말로 꼰대가 되어서 새로운 게 어렵다. 그런 사람이 되고 싶지 않았는데 그렇게 되어가고 있다. 이제 더는 어리지가 않다.
뜬금없는 여러 어린 아이들이 사탕, 볼펜, 키링과 위로 편지 겸 반성문 같은 걸 줄줄이 들고 와서 당황했다. 아이들은 고맙고 착한 말을 꾹꾹 눌러 담아 주었지만, 선생님이 최근에 당한 일을 알아요, 하고 언뜻 비치는 편지글을 읽고는 섬뜩했다. 소문이야 날 수 있는 거지만 상황과 순서가 다르게, 또 사안을 다룬 이들 외에는 자세히 알 수 없을 일들을 아이들이 꺼내고 있었다. 그러고보니 오랜만에 수업을 들어간 반 아이들이 뭔가 나를 측은하게 보고 원래는 까불던 애들도 행동을 삼가고 시험이 막 끝났는데도 열심히 수업을 들었다. 누구냐. 누가 동네 사람들-하고 다니냐...
당혹감과 불편함이 들지만 어쩔 수 없다. 바깥의 사람들이 날 어떻게 보는지 짐작만 할 뿐, 그들의 프레임도 음모도 나는 알 수 없다. 그냥 어쩌다보니 일이 일어나고 그래도 그 공간에서 적당히 버티며 살아야 한다.
이렇게 소설은 아니지만 적당히 나 사는 꼴을 독후감에도 묻혀 놓고, 책 안 본 날은 잡잡글도 쓰고, 그렇게 남기는 것 말고는 더 할 바를 모르겠다. 나중에 다시 읽어보면 그게 그런게 아니었다, 할 수도 있고, 그런 일이 있었지 할 수도 있겠다. 저런 걸 썼구나, 하고 흐뭇할 때도 있는데 저게 뭐야 왜 저랬대 이러고 으으으 하면서 덮어버리는 글도 있다. 나의 나중 독자인 나에게 오늘은 이 정도만 남긴다. 기분이 좋은 하루는 아니었지만 어떻게든 시간은 갔단다.
+밑줄 긋기
감기 기운만 있어 봬도, 노인네가 옷을 얇게 입으시니까 그렇죠. 화장실만 자주 들락거려도, 노인네가 과식을 하시니까 그렇죠. 질긴 거나 단단한 걸 먹으려 해도, 노인네가 그걸 어떻게 잡수시려고 그래요. 이런 식으로 그 여자는 모든 자연스러운 행동을 하나하나 간섭받으면서 늙은 여자로 만들어졌다.
그러다가 젊은 여자는 아이를 낳았다. 늙은 여자에게 손자가 생긴 것이다. 그때부터 젊은 여자는 늙은 여자를 할머니라고 불렀다. (32, ‘황혼’ 중. 아 이거 불효새끼 나인데, 거울 치료인가…)
-먹는 것이라면 쓴맛이라도 맛이 있어야 하고 썩는 내라도 냄새가 나야 한다. 그러니까 무미무취한 것은 먹는 게 아니다. 세상에서 가장 고약한 맛은 먹는 게 아닌 걸 먹는 맛이다. (40)
-고려장 이야기는 곧 그 시대의 늙은이들을 위한 사회보장제도 같은 거였다. (49)
-그러나 늙은 여자는 지금 정말 불쌍한 건 혼자 사는 여자가 아니라 자기 뜻대로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여자임을 깨닫는다.(51)
-혼자 살 수 있는데도 같이 살고 싶은 남자를 만남으로써 결혼은 비로소 아름다운 선택이 되는 것이지 혼자 살 수가 없어 먹여살려줄 사람을 구하기 위한 결혼이란 여자에게 있어서 막다른 골목밖에 더 되겠느냐는 게 후남이의 생각이었다. (96, ‘아직 끝나지 않은 음모3’ 중. 3대에 걸친 연작소설의 마지막이었다.)
-후남이는 거듭한 고배로 의식은 더욱 명료해져 눈 아래 거대한 도시, 그 갈피갈피에 여자 길들이기의 아직 끝나지 않은 음모가 공룡처럼 징그럽게 도사리고 있음까지 분명히 볼 수 있었다. (99, 직장 내 커플의 혼인 후 여성의 퇴사를 종용하며 부부를 진주, 속초로 찢어 발령낸 나쁜 회사가 있었다. 저렇게 지켜내려는 일자리를 나는 왜 온마음으로 밀어내고 있나…어쩌다 이렇게 됐을까.)
-그는 예측할 수 없는 변덕으로 개인을 씹었다 삼켰다 뱉었다 하는 집단의 폭력과 개인의 무력에 대해 이미 체념하고 있었다.
(…) 어떤 좋은 한때가 전 생애를 덮을 만큼 부풀어오르고, 재차 그것들끼리 결합해서 더 큰 간판이 되고 싶어하는 그 끈덕진 힘은 무엇일까. 배우성씨는 사람들마다의 좋은 한때에 대한 더러운 집착과 집단이란 것의 터무니없는 허구에 대해 이를 갈아붙이고 싶은 건 시늉뿐 어쩔 수 없다는 엄살쪽으로 편안히 기울고 있었다.
(157-158, ‘천변풍경’ 중. 왕년에 잘나갔다는 노인들이 모인 백수회란 단체에 뜬금 없이 가입된 배교수의 생각이다. 나이듦은 못마땅하던 것들에 하나씩 체념하는 건가 싶다.)
-남을 감쪽같이 속이려다가 탄로가 나면 무안하다. 그러나 자신을 속이려다가 탄로가 났을 때처럼 구원의 여지가 전혀 없이 무안하진 않을 것 같았다. (178, ‘천변풍경’ 중. ‘천’의 한자가 내(개울)가 아닌 샘(약수터)이었다는 걸 다 읽고서 알았다.)
-그러나 그 여자는 이 새로운 발견에 철저하게 무관심하려 들었다. 관심이 미구에 사랑이나 미움, 동정, 실망, 분노 등 불필요한 정서를 유발하게 된다는 걸 알고 있기 때문이었다. (387, ‘무서운 아이들’ 중)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