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0621 저자: 이옥.
천천히 읽기로 했는데 어쩌다보니 올해 안에 이옥 전집을 다 읽고 말았다. 3권은 ‘백운필’이란 책과 ‘연경’이란 책이 함께 묶여 있다.
‘백운필’ 구성은 1,2,3,4가 아니고 갑을병정무기경신임계 이렇게 종류마다 넘버링을 12개 해 놨다. 새, 물고기, 짐승, 벌레, 꽃, 곡식, 과일, 채소, 나무, 풀 이렇게 큰 주제 아래 소소한 자연물 하나씩을 글제로 짧은 짓기를 해 놓았다. 다 써 놓은 걸 그렇게 엮은 건지, 일부러 박물지처럼 그렇게 한 건지는 모르겠다. 그래서 막 빼어나고 엄청 재미있고 그런 건 없고 약간 소소한 팁과 지식(대부분 중국 고서들이 출처인데 검증할 도리는 없음), 누구네 그거 있다더라, 어디서 주워다 들은 효능, 잡다한 종류가 많은데 내가 다 알진 못해, 하는 나열이 많았다.
정 쓸 게 없으면 이 책 목차 따라 자연물에 대해 잡글을 써 봐도 재미있을 것 같다.
벼슬은 못했어도, 이옥 집안은 땅과 집이 있고 부리는 사람도 있어 그럭저럭 잘 살았다. 곡식밭, 채마밭을 종더러 일구게 해서 잘 키운 무가 배보다 시원하다는 걸 아는 사람이었다. 그래서 양반 사대부 왕족 귀족 아닌 다수의 평범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가까이 듣고, 동식물 이야기도 하나하나 경험하거나 고서와 대조하면서 당시 삶을 글로 박제해 놓았다. 너무 관심사가 두루 많아 한 가지만 파는 전문가는 못되었다. 역사 교과서에 한 줄 실리지는 못했지만, 이쯤되면 이옥도 실학자 기질이 있지 않았나 싶다.
그래서 동물 부분은 어디서 들은 이야기들 위주라 좀 약하고, 꽃, 과일 이야기는 그보다는 나은데, 채소 이야기는 아주 신나서 적어둔 느낌이다. 오이 반찬 먹는다고 가난뱅이라고 누가 비웃으니 (아마도 긁혔을 것 같은데 초연한 척) 고서에서 본 부추 반찬 세 가지를 들먹이며 온갖 오이 반찬 먹는 내가 부자다, 하는 게 허세라도 자존감이 세 보여서 좋았다. 나도 시골 출신이라 그런가 채소 부분이 제일 재미있었다.
나무 부분에서 이옥은 시골 살며 심은 나무 종류와 그루 수까지 깨알같이 적어놨다. 이건 그냥 본인이 심심파적으로 헤아려봤나 싶게 누구를 위한 글인지 모르겠지만, 나무들을 세세한 종류별로 나누고, 차이를 구별하고, 고서 이름과 대조하고, 이러니 나무도 사랑했을 것이다. 바닷가에 절로 자란 해송을 사람들이 땔감으로 써서 까까머리, 벌거숭이 산이되자, 시골 사람들이 나무지키미로 결성한 결사대에 ‘장청사’라는 이름까지 붙여 주었다. 장청사의 규칙과 벌은 제법 엄격해서 진지한 모임이었구나 싶다.
‘연경’은 담배대백과 같이 재배법, 잎관리법, 불붙이기, 피우는 법, 도구, 담배 매너까지 다 나온 책이다. 세세하게 가르치는 듯 설명한 건 가상하나 하필 그게 몸에 안 좋은 담배야. 이 책이 이옥의 글 중 조금 늦게 발견되었다고 하는데 시중에 별로 안 돌아다니고 안 읽혔으면 흡연자 늘리는 과오는 덜했을 것 같다. 그렇지만 담배잎 재배 과정을 자세히 읽게 된 나는 그냥 신기하다.
이렇게 전집 3권까지 이옥 읽기를 마쳤다. 4권은 원문, 5권은 저본 영인-원판을 사진 찍은 듯 그대로 올리는 것이라 하니 한문학 연구자 아니면 일부러 찾아볼 일이 없을 것 같다. 시대상이나 작가의 사상이 드러나는 글들이 많았다. 다 재미있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글을 독특하게 잘 쓰던 선비였다. 정조가 너무 에프엠이라 급제해도 떨어뜨리고, 과거도 못 보게 하고, 살아있는 동안은 벼슬에 미련이 없지 않았겠다. 그렇게 한가한 덕분에, 글을 이리저리 굴리며 살다간 사람 덕분에, 읽을 거리들이 남았다.
+밑줄 긋기
-매양 인가에 들어가 알록달록한 비둘기들이 지붕 꼭대기에 줄 지어 앉아 있는 것을 보면, 문득 주인의 품위가 열 발 아래로 떨어지는 것을 깨닫게 된다. 이는 후생들이 경계할 만한 일이라 할 수 있다. (66, 지금 우리 곁의 비둘기는 이미 이백여년 전 조상들이 집에서 키우다 방생한 놈들이었나 보다. 무늬 따라 비싼 애들도 있었대…)
-새 중에서 조그만 것으로 참새보다 더 작은 것이 없지만, 마작 이외에도 더 작으면서 조금씩 모습이 다른 것들이 또한 많다. 혹 작으면서 조금 푸른 것, 조금 누른 것, 조금 붉은 것, 조금 검은 것들이 있으니 그 이름을 분별할 수가 없는데, 시골 사람들은 ‘박새’니, ‘피죽새’니, ‘굴뚝새’니, ‘면화작’으로 일컬으며 구별하기도 한다. 가장 작은 것을 ‘수사자’라 하니, 곧 뱁새(붉은머리오목눈이)이다. 그러므로 속담에 따라가지 못할 것을 억지로 흉내 내는 것을 두고 ”뱁새가 황새의 걸음 따라가려 한다“고 말한다. (89, ‘참새’ 전문. 옥이 아저씨는 조그만 새들 이름을 잘몰라 뭉뚱그려 참새, 해버렸는데 시골 사람들이 더 분류를 잘했다. 나도 작은 새이름을 죄 알면 좋겠다. ‘한반도의 새’ 도감을 열심히 봐야겠어...)
-경기와 호서의 까마귀는 모두 큰 부리에 새카만 빛을 띠고 있는데, 영남과 호남은 모두 갈까마귀이다. 내가 일찍이 영남에서 보니 그 무리가 몇 천마리인지 알 수 없는데, 날면 마치 하늘에 드리운 구름과 같고, 내려앉으면 산 하나가 오통 새까맣게 된다. 그곳 사람들은 밤이면 죽림 가운데서 이들을 잡는데, 먹으면 또한 맛이 좋다고 한다. (92, ‘까마귀’ 전문. !!! 까마귀 고기를 먹었냐, 소리가 괜히 나온 게 아니었다. 조상들은 까마귀도 먹었다. 우리 동네랑 남쪽 동네 까마귀가 다른 종류인 것도 처음 알았다.)
-물고기가 오래도록 올라오지 않으면 긴 목을 늘이고 조심스레 작은 발걸음을 옮기며 엿보다가 요행히 물고기를 만나면 쫓아가서 쪼는데, 날갯죽지는 춤추는 듯 발걸음은 넘어질 듯하여 그 모습이 마치 미친 것처럼 보인다. 또 사방을 둘러보며 살피다가 다가오는 동류를 부리로 쳐서 좇아낸다.
대개 물고기의 처지에서 살펴보면 닭, 오리, 솔개, 까마귀와 진실로 다른 것이 없다. 아! 모습은 한가롭고 깨끗함을 취하고, 이름은 고상하고 우아함을 구하지만, 이익을 보고는 홀연 거꾸러지고 정신을 못 차리니, 세상에서 가장 험한 것은 욕심이요, 막기 어려운 것은 이익인 것이다. 사군자들도 오히려 지조를 잃고 타락을 하고 마는데, 하물며 새에 있어서랴!
(94, ‘갈매기와 해오라기’ 중. 방죽의 갑문을 지키며 학꽁치를 잡아 먹는 갈매기, 한가롭고 우아한 새라고 글의 문을 열더니 묘사된 바로는 별로 우아하진 않다. 그리고 나도 덩달아 지조를 잃고 타락했다는 기분이 든다.)
-작년 봄, 나무하는 아이가 우연히 여우 새끼 한 마리를 산에서 잡아 묶어 왔기에, 나는 빨리 때려죽이라고 하였다. 한 마리를 잡으면 한 마리를 죽이고, 천 마리를 잡으면 천 마리를 죽여야 하니, 잡는 대로 죽여야 하는 것은 오직 여우이다. (155, 시체 파먹는게 싫어서 여우를 혐오하는 옥이 씨. ‘여우와 나’ 라는 책을 읽어보면 생각이 달라지실까…)
-어지 알겠는가, 보지 못하고 심지 못한 것 중에 또 얼마나 어떠한 괴기한 모양이 있을 것인가?(219, 꽃의 모양을 논하던 중에. 궁금증도 많고 겸손함도 갖췄다. 내가 다 알지, 하지는 않고 늘 여지를 둔다.)
-대저 나의 집이 서울과의 거리가 불과 백이십 리인데, 매양 채소와 과실 등속을 비교해보면 늘 한 달쯤 늦게 이루어지니, 사람 노력의 부지런함과 게으름 탓만이 아니요, 또한 지기가 미약한가, 왕성한가에 달린 문제이다. 식물이 오히려 그러하거늘, 하물며 사람에게 있어서랴. (222, 환경의 영향을 강조하는 옥이 씨)
-그러나 돌이켜 생각해보건대, 가령 집 뒤의 대나무가 큰 것이었다면 대그릇을 만들고 부챗살을 붙일 수 있을 것이고, 그 다음의 것이었다면 피리에 구멍을 내고 지팡이로 잘라 쓸 수가 있을 것이고, 작은 것이었다면 그래도 붓에 꽂고 담배통에 이을 만한 것이니, 장차 도끼로 베임을 당할 날이 이르렀을 것이다. 어지 능히 푸르게 우거지고 빽뺵하여, 도리어 책상을 맑게 하고 거문고와 서책에 어울림을 얻을 수 있었을 것인가? 그렇다면 대의 무성함은 그것이 쓸모가 없기 때문이니, 쓸모가 없다는 것은 도리어 쓸모가 있는 것보다 낫다 하겠다. (227-228, 문장의 무성함은 쓸데없는 글에서 나올 수도 있겠다. 이옥은 동물보다는 식물에 대한 글을 더 잘 쓰고 또 더 잘 아는 것 같다. 이 말에 화답하듯 다음 글에서는 원래 게을러서 꽃 잘 못 돌보다가 노년이 되면서 꽃을 사랑하게 되었다고 한다.)
-장준(감의 종류)은 매우 높고 홈은 자못 선명한데, 그 껍질은 두꺼워 떡으로 만들어 먹는다. (264, 감 껍질로 감껍질 버무리 같은 떡을 만든다는 걸 처음 알았다.)
-내 성질이 씨를 삼키지 못해 비록 앵두의 작은 씨라 하더라도, 씨를 삼켜 내리지 못한다. 그러므로 일찍이 앵두를 얻으면 그것을 잘게 부수어 베로 싼 뒤, 비틀어 즙을 내어 마셨다. 그 색은 담홍색으로 매우 예뻤다. 또 청포도를 얻으면 그 방법에 따라 즙을 냈는데, 그 빛깔 역시 옅은 초록색으로 예뻤다. 앵두에 비교하면 더 맑고 시원하게 느껴진다. (278, ‘앵두즙과 청포도즙’ 전문. 씨 못삼켜서 즙내달라고 징징대는 애기 같은 영감님. 뭔가 주스 광고 같아서 퍼왔다. 깨작깨작 쓸 때는 이걸 이백몇 년 후 어떤 애가 베끼고 앉았을 거라는 생각 못했겠지.)
-이는 개를 잡아 찢어 벽사하면서 갱헌(종묘의 제례에 쓰던 삶은 개고기)의 예를 쓰지 않는 것과 같은 잘못이다. (282, 복숭아만 제사에 안 쓰는 걸 지적하는데 종묘제례에 개고기 쓰는 TMI까지 알게 되었다.)
-혹시 과일에도 술을 마시는 사람들의 술배처럼 따로 과일배가 있는 것인가?(…) 나는 본디 과일에 벽이 없어서, 먹으면 또한 좋지만 많이 보면 쉽게 염증을 느낀다. (288, 저때도 술배 타령한 게 웃긴데 과일 앉은 자리에서 몇십 몇백 개 먹는 사람들 이야기 전하면서 디저트 배는 따로 있나 하는 것 같다. 실제로 잔뜩 먹은 사람도 디저트를 보는 순간 배가 꿀렁 하면서 자리를 만든다는 글을 어디서-아마도 찰스 스펜스- 본 것 같다. 그리고 마무리로 난 안 그래, 하는 게 또 새침하다. 다른 글에서는 ‘나는 천성이 산나물을 좋아해서 보게 되면 반드시 포식을 하고 만다.’하고 객점에서 산나물 반찬에 밥 몇 그릇 뚝딱-심지어 귀한 건어물과 바구어-먹은 이야기가 있다. 이옥은 과일은 그냥저냥 좋아했고 산나물은 무척 좋아했구나...)
-이 때문에 홍초, 만두, 청과, 송병, 생해, 침채는 그 근원을 궁구하면 모두 동성에서 전한 것이다. (291, 음식 사치하는 먼저 망한다고 옷 사치가 낫다고 뒤에 덧붙인다. 이 부분은 주석이 거의 없어 각각 음식이 뭔지는 모르겠는데 엄청 손이 많이 가는 음식들을 나열한 듯하다. 침채는 김치를 말하는 것 같다.)
-내 집에 작은 채마밭이 있는데, 마루 앞에 바로 면해 있다. 아이종 하나가 거기에 부지런히 힘을 기울이면 밥반찬으로 나물을 마련하는 데 이바지 할 수 있다. 그 심은 것으로는 파, 마늘, 부추, 무, 배추, 겨자, 아욱, 방아, 해바라기, 상추, 시금치, 오이 등이다. 이 채소들은 절여 먹을 수 있고, 국을 끓여 먹을 수 있고, 데쳐 먹을 수 있고, 생으로 먹을 수 있고, 해물이나 고기에 넣어 먹을 수 있고, 즙을 내어 먹을 수 있고, 약용으로 쓸 수도 있다. (294, 나열한 채소 뒤에 호박, 박, 미나리, 가지 고추도 있다고 추가로 자랑한다. 그러고는 주자가 안 부럽다, 이렇게 마무리하는 패기. 주자가 채소 13종에 대해 오언절구로 시를 지은 것은 주석 덕에 알게 되었다.)
-산가지는(…)생으로는 먹을 수 없다. 물가지는 굴젓에 섞으면 생으로 먹어도 아주 맛이 좋다. (296, 날 가지에 굴젓이라니 참신한 레시피… 지금은 그 물가지라는 게 남아나지 않은 것 같다. 우리 할머니가 키운 가지는 나물 무쳐도 맛잇었는데, 시장의 가지는 다 맛없다.)
-내가 들은바, 철원에 나이 팔십 세가 된 노부인이 있는데 천성이 고추를 좋아하여, 떡과 밥을 먹는 이외에는 모두 고추를 뿌려 붉은색이 되고 나서야 비로소 맛을 본다고 한다. 한 해 동안 먹은 것을 합해보면 백여 말에 달할 정도라 한다. (308, 외래종이지만 두루 심기는 고추와 호박에 관한 글에서. 팔십 살 넘었다는 저 할머니는 ‘세상에 이런 일이’나 ‘화성인 바이러스’에 등장해서 “할머니, 고추는 적당히 드시고 오래오래 건강하세요~”하는 멘트로 끝날 것 같은 에피소드의 인물이었다.)
-서울에 있을 때를 회상해보매, 매양 술집에 들어가서 연거푸 서너 잔의 술을 마시고 손으로 시렁 위의 붉은 고추를 집어서 가운데를 찢어 씨를 빼내고 장에 찍어 씹어 먹으면 주모가 반드시 흠칫 놀라며 두려워하였다. 남양에 살게 되어서는 가루를 내어 양념장을 만들어 회와 함께 먹는데, 또한 누런 겨자즙보다 나았다. (310, 이옥 선생의 맵부심, 고추 사랑. 마지막 양념은 초장에 회 찍어 먹는 느낌인데 식초는 아직 안 섞었나 보다.)
-매년 여름 시골집에서 마늘을 먹은 사람을 자주 만나게 되는데, 입을 한 번 열자마자 역한 냄새가 방에 가득하여 곁에 있는 사람을 참을 수 없게 만드니, 암내나 방귀보다 심하다.(…)비록 연꽃 향으로 입 안 가득 채우지는 못한다 할지라도, 어찌 불결한한결기운으로 도처에 냄새를 풍길 수 있겠는가? 깊은 병에 약으로 쓰는 것이 아니라면 절대 먹지 않은 일이다. (319, 어우 마늘 냄새, 불결해!를 여기서 시전하는 옥이 씨ㅋㅋㅋ 18, 19세기의 이옥은 마늘 고추 팍팍 넣고 빨갛게 무친 배추 김치는 못 먹어봤지 싶다. 배추 글에서도 종류만 나오고 용도를 논하지 않는다. 그런데 겨자랑 생강(심지어 생생강 깨물어 먹음…)은 많이 먹고 좋아한다고 자랑하는데 걔들도 냄새나!!!!)
-매년 한여름 단비가 처음 지나가면 상추잎이 매우 실해져 마치 푸른 비단 치마처럼 된다. 큰 동이의 물에 오랫동안 담갔다 정갈하게 씻어내고, 이어 반의 물로 두 손을 깨끗이 씻는다. 왼손을 크게 벌려 승로반처럼 만들고, 오른손으로 두텁고 큰 상추를 골라 두 장을 뒤집어 손바닥에 펴놓는다. 이제 흰밥을 취해 큰 숟가락으로 퍼서 거위 알처럼 둥글게 만들어 상추 위에 올려놓되, 그 윗부분을 조금 평평하게 만든 다음, 다시 젓가락으로 얇게 뜬 송어회를 집어 황개장에 담갔다가 밥 위에 얹는다. 여기에 미나리와 시금치를 많지도 적지도 않게 더하여 송어회와 어울리게 한다. 또 가는 파와 향이 나는 갓 서너 줄기를 집어 회와 나물에 눌러 얹고, 곧 새로 볶아낸 붉은 고추장을 조금 바른다.
그러고는 오른손으로 상추잎 양쪽을 말아 단단히 오므리는데 마치 연밥처럼 둥글게 한다. 이제 입을 크게 벌려 잇몸은 드러나고 입술은 활처럼 되게 하고, 오른손으로 쌈을 입으로 밀어 넣으며 왼손으로는 오른손을 받친다. 마치 성이 난 큰 소가 섶과 꼴을 지고 사립문으로 돌진하다 문지도리에 걸려 멈추는 것과 같다. 눈은 부릅뜬 것이 화가 난 듯하고, 뺨은 볼록한 것이 종기가 생긴 듯하고, 입술은 꼭 다문 것이 꿰맨 듯하고, 이는 신이 난 것이 무언가를 쪼개는 듯하다. 이런 모양으로 느긋하게 씹다가 천천히 삼키면 달고 상큼하고 진실로 맛이 있어 더 바랄 것이 없다. 처음 쌈을 씹을 때에는 옆사람이 우스운 이야기를 주고 받는 것을 허락하지 않아야 된다. 만일 조심하지 않고 한번 크게 웃게 되면 흰 밥알이 튀고 푸른 상추잎이 주위에 흩뿌려져, 반드시 다 뱉어내고 나서야 그치게 될 것이다. (…)나는 상추를 유달리 좋아하여, 때때로 이 방법대로 쌈을 싸 먹곤 한다. (324-325, 유독 공들여 묘사한 이옥의 상추쌈 싸먹는 법이 이 책의 백미였다. 뒤에 나 상추 좋아해, 덧붙이는 게 불필요할 정도로 생생한 먹는 법이었다.)
-이제 우리말의 호칭대로 나누어보면 ‘떡갈나무’라는 것은 잎이 넓고 껍질이 두꺼우며, 도토리는 깍지가 있어 둘러 싸고 있다. 이것이 이아에서 말한 역나무이다. ‘소리참나무’라는 것은 잎도 조금 작고 열매도 또한 작은데, 이것이 각나무이다. ‘참나무’라는 것은 잎은 밤나무 같고, 열매는 조두라고 하여 매우 크다. 이것이 작나무이다. (332, 중국 책에 나온 생물 이름과 우리 말이나 방언을 그대로 음차해서 한자로 쓴 것을 연결해주곤 한다. 차마 한글은 못 써도 떡갈나무를 ‘덕가을목’이런 식으로 소리를 옮긴게 재미있다.)
-그런데 오행(성정과 형체는 있지만 지각은 없는 것 다섯 가지) 가운데 오직 나무만은 지각이 있는 것에 가장 가까우니, 계절에 따라 피고 지는 것은 나고 죽는 것과 같고, 바람에 따라 흔들리거나 고요해지는 것은 가고 멈추는 것과 같으며, 종자를 서로 전하는 것은 자손을 잇는 것과 과다. (350, 나무를 베는 것을 살생의 유라 하니, 역시나 이옥은 나무를 매우 사랑했군.)
-남초, 연초, 담파고, 담박귀(378-380, 모두 담배를 이르던 말. 어찌나 정성스레 담뱃잎을 키우는지, 백운필에 담배 글 하나가 있는데, “연경”이라는 담배 백과사전 같은 걸 아예 따로 만들어서 이 전집에도 실려있다. 비교적 최근에 발굴된 책이라고 한다.)
-”(…)아! 낳는 것은 하늘에 있으나 영화롭게 하는 것은 인간에 달려 있다. 하늘은 사심이 없기에 그 조화가 균일하지만 인간이 널리 베풀지 못하므로 소원함도 있고, 친함도 있는 것이다. 하늘이 이미 낳아주었는데, 또한 어찌 사람이 영화롭게 하고 그렇지 않게 한다고 원망하겠는가? 나는 비록 느낀 바가 있지만 풀은 무정한 것이니, 그것이 소의 목구멍을 채우는 것을 보매 나비의 향기 다툼의 대상이 되는 것과 다름이 있겠는가?“ (385-386, ‘꽃의 귀천’이라 이름 붙인 글인데 수능 공부할 때 지문으로 봤던 글이어서 오, 읽어봤네, 했다.)
-여기서 옛사람이 만물에 대하여 진실로 기록할 만한 좋은 점이 한 가지라도 있으면, 그 물건이 보잘것없다고 해서 버려두지 않고, 그 숨겨진 것을 수집, 열거하고, 그 속에 포함된 것을 밝게 드러내면서, 모아서 책으로 만들어 후대에 가르침을 주지 않음이 없었음을 알 수 있다. 그것은 온갖 미물이라도 보잘것없고 초라한 것들을 밝게 드러내어 천하 후세의 사람들과 그 쓰임을 공유한 것이다. 그 뜻이 어찌 일시적인 붓장난에 불과하겠는가?(395, 이옥의 글/책에 대한 생각이 압축되어 있다.)
-강한 맛이 너무 센 것은 말린 대추 살점을 썰어 뒤섞으면 좋다. 혹 연잎을 썰어서 섞기도 하고, 혹 향가루를 휘저어 태우면 맛이 좋다. (416, 조선시대에도 가향담배가 있었어...대추향 연잎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