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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을 수 없는
  • 무의식은 어떻게 나를 설계하는가
  • 데이비드 이글먼
  • 22,500원 (10%1,250)
  • 2024-11-22
  • : 28,774
-20260414 데이비드 이글먼.

원제는 incognito인데, 익명의, 가명의, 라는 뜻이라고 한다. 이것을 번역 제목에서 무의식과 연관지었다.

주체성과 자유 의지에 대해 오래 천착해 온 내게 이 책은 그것조차 환상일지도 모른다고 말한다. 내가 결정했다, 이루었다 여긴 것의 많은 부분이 사실 나도 모르게 다양한 요소와 우연이 겹친 결과일 수 있다. 의식의 영역에서 스스로 통제하면서 이루는 것은 생각보다 아주 작은 부분이라고 한다. 그러니 완벽한 자기 통제의 꿈을 꾸는 듯한 내 강박은 방향과 목표부터 잘못 되었을지도.

충동을 이기지 못하고 말과 행동을 함부로 하는 어린 인간들에 둘러싸여 산다. 아무리 멋진 말로 포장해도, 현재의 교육기관은 자제력, 참는 능력을 살리든가 기르든가 그렇지 못한 대가로 처벌과 불이익과 나쁜 평판을 받게 하는 곳이 아닌가 싶다. 당장 성인인 나도 어떤 때는 참지만, 때로는 감정이든 행동이든 말이든 억제하지 못할 때가 있다. 눌러라, 그래서 계속 집단 안에 있을 수 있게 해라. 인간의 기본값은 그게 아니란 생각이 자주 들고, 그럼 이게 다 무슨 소용인가 싶다.

저자는 잘못에 대한 책임을 묻는다는 것에 의문을 표한다. 대부분의 기행이나 비행이 신체적 영향으로 벌어진다면, 누군가를 비난하거나 벌 줄 수 있는가? 연구와 기술이 발달해서 잘못이 그들의 신체적 결함(주로 뇌) 때문인 걸 더 많이 알수록 현재의 사법 체계와 교정 기관은 힘을 잃는다. 저자는 그 결함을 잘 파악할 수 있게 되고, 예를 들면 범죄자의 뇌사진을 열심히 분석하고, 그에 맞는 치료적 조치를 취하는 것이 합당하다고 주장한다.
수많은 사람들은 대부분 치료가 필요하다. 탐욕도, 이기심도, 규칙 위반도… 나도 나의 위험을 인지하고 치료 받으려 애쓰고 있다. 잘 안 된다. 여전히 불행하고 여전히 나를 둘러싼 환경을 못 견딘다. 스트레스에 취약하다. 몸과 마음이 자주 아프다. 못되게 구는 사람들을 저들은 아픈 사람이다, 하고 참아보려 하지만, 덕분에 내가 아프다.

뇌와 자아와 인간에 대한 책을 나도 모르게 자꾸 찾아보는 건 내 무의식이 자꾸 그쪽을 알아보라고 추동하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인공지능과 자아 성찰적인 대화를 너무 많이 한다. 그럴 수록 뭔가 풀리는 느낌보다 더 갑갑하고 괴롭게 느껴진다. 아, 이 책은 2011년에 나온 터라 아직 인공지능이 한계에 직면해 있고, 발전이 더딘 상황인 걸 우리 뇌와 비교하면서 자꾸 강조한다. 그런데 선생님, 요즘은 어쩜 내가 미처 생각하지 못한 나의 모습, 나의 무의식, 그런 걸 물어보면 인공지능이 진짜인지, 아마도 지어내는 것이겠지만, 줄줄 잘 읊어 댄답니다. 사람 하듯이 서사를 만들고, 공백에는 거짓말도 넣고 흉내를 제법 내요. 그래서 때로는 내 생각과 말을 그대로 반사해서 다른 목소리인양 들려주는 건지, 아니면 나의 어떤 부분에 집중해서 그쪽으로 계속 방향을 몰아가고 편향된 생각을 하게 만드는 건지 잘 모르겠다. 대신 결정해주거나 의사결정에 도움이 되는 부분도 있겠지만, 이게 정말 맞나 싶어 반대로 갈 때가 더 많은 인간(저요)도 있다.

흥미로운 부분도 많았지만, 제대로 검증 안 된 가설이나 어설픈(그렇지만 유명해서 이미 여러본 봤던) 실험 사례로 주장을 하는 부분은 훌륭하신 뇌과학자라도 이게 맞나 싶을 때가 종종 있었다. 그러다보니 이걸 나는 왜 읽고 있을까? 했다. 나는 늘 내가 왜 이것을 하는가,를 너무 파고들어서 정작 할 일에 제대로 집중하지 못할 때가 많다. 그것도 나의 무의식이 하는 일일까요? 아니면 무의식의 영역에 대항해 기를 쓰고 의식의, 통제가능한 영역으로 더 많은 부분을 끌고 들어오려는 나의 가망 없는 고집 때문일까요? 책은 그런 이야기를 하고 싶었던 건 아니라서 거기에 대한 답은 없었다. 아마 어느 책에도 답은 없을 것 같다. 나도 내가 무슨 소리를 하고 있는지 모르겠다.

+밑줄 긋기
-행동과 생각과 느낌 대부분을 우리가 의식적으로 통제하는 것이 아니라는 점. 뉴런으로 이루어진 광대한 정글이 알아서 프로그램을 운영한다. 의식을 지닌 나, 아침에 눈을 뜰 때 깜박거리며 살아나는 ‘나‘는 뇌에서 벌어지는 일 중에서 가장 작은 조각에 불과하다.
우리는 뇌의 기능에 기대어 내면생활을 영위하고 있지만, 뇌는 스스로 쇼를 진행한다.
(뇌 속엔 나도 모를게 너무 많고, 그런 뇌가 나를 조종한다고…)

-쓰레기가 만들어지고 처리되는 과정 또한 우리 관심사가 아니다. 쓰레기가 우리 집 뒷마당에 갑자기 나타나지만 않으면 된다. 공장의 기반시설에도 우리는 관심이 없다. 공장 노동자들이 파업을 벌이는지가 중요할 뿐이다. 그래서 우리는 신문에서 이런 정보를 얻는다.
우리 의식이 바로 이런 신문과 같다.
(그건 저의 관심사가 맞는데요…오히려 신문을 잘 안 본다.)

-정신세계에서 일어나는 일은 거의 모두 우리의 의식적인 통제를 받지 않는다. 사실 이편이 더 낫다. 의식이 모든 걸 자기 공이라고 주장할 수는 있어도, 뇌에서 의사결정이 이루어질 때에는 옆으로 물러나 있는 편이 최선일 때가 대부분이다. 의식이 잘 알지도 못하면서 세세한 부분에 간섭하기 시작하면 효율이 떨어진다. 피아노 건반에서 손가락을 어디로 움직여야 하는지 의식적으로 생각하기 시작하는 순간, 우리는 더 이상 그 곡을 잘 연주할 수 없게 된다.
(의식하지 않고도 잘 하게 되려면 정말 많은 반복과 노력이 필요한 걸요)

-우리는 어떤 장면에서 특정한 측면만 알아차릴 수 있다. 우리가 놓친 부분을 인식하게 되는 것은, 누군가가 그 부분에 대해 물었을 때뿐이다.
(질문의 중요성. 그러나 올바른 질문을 던지는 건 너무 어렵고…)

-그러나 내가 여기서 지적하고 싶은 가장 중요한 점은 우리의 시간감각 (시간이 얼마나 흘렀는지, 그리고 언제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이 뇌에서 만들어진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 감각 또한 시각과 마찬가지로 쉽게 조종할 수 있다.
(내가 시계를 안 보고도 시간을 잘 맞추는 건 사실 내 뇌가 몰래 1초1초 다 세고 있어서 일수도 있다. 그런데다 에너지 낭비하지 말라고…)

-신체 상태는 세상에서 일어나는 일들의 결과와 연결되어 있다. 나쁜 일이 일어나면 뇌는 온몸(심장박동, 내장의 수축, 근육 약화 등)을 지렛대 삼아 그때의 느낌을 기록한다. 그래서 그 느낌이 그 사건과 함께 연상되게 된다. 나중에 그 사건을 생각할 때, 뇌는 일종의 시뮬레이션을 돌려 그때의 신체적 느낌을 다시 경험한다. 그렇게 해서 그 느낌은 차후 의사결정에 지침(아니면 반대로 편견) 역할을 한다. 어떤 사건을 겪을 때의 느낌이 나빴다면, 우리는 그때의 행동을 주저하게 된다. 반면 좋은 느낌은 같은 행동을 격려하는 역할을 한다.
(몸에 새겨지는 기억...더 좋은 경험을 많이 할 필요가 있다…)

-비전을 명확히 하고, 기업이 보유한 기술을 바탕으로 장기적인 계획을 수립하는 것이 그의 역할이다. 의식이 바로 이런 역할을 한다.
의식이 목표를 정하면, 뇌의 다른 부분들은 그 목표를 달성하는 법을 학습한다.
(의식을 CEO로 비유)

-원래부터 맛있거나 원래부터 혐오스러운 음식은 존재하지 않는다. 필요가 맛을 좌우한다. 맛은 단순히 유용성을 알려주는 지표일 뿐이다.
(단맛도 짠맛도 기름진 맛도 생존에 유리했기 때문에 좋게 느끼는 것)

-그런데 사람들은 왜 기꺼이 은행에 돈을 맡겼을까? 심지어 여러 제한이 있고, 중도 인출 수수료도 있는데. 답은 명백하다. 사람들은 자기가 돈을 쓰지 못하게 누군가가 막아주기를 원했다. 만약 자신이 돈을 손에 쥐고 있다면 모두 날려버릴 가능성이 높다는 것을 그들은 잘 알고 있었다. (자제력에 관해 대부분 스스로를 못 믿는다. 나는 대체로 참는 쪽으로는 잘 믿는다. 과도하다. 잘하는/잘되는 쪽으로는 의심이 많다. )

-기억이 하나뿐이라는 믿음은 환상이다. (이 말은 조금 무섭다.)

-연합을 유지하면서 좋은 이야기를 만들어내는 일은 공짜로 이루어지지 않는다. 뇌는 우리 일상에 논리적인 패턴을 꿰매 넣으려고 24 시간 내내 일한다. 방금 어떤 일이 있었고, 거기서 내가 수행한 역할은 무엇인가? 이런 이야기를 만들어내는 것이 우리 뇌의 중요한 일 중 하나다. 뇌는 민주주의 체제의 다면적인 활동들을 조리 있게 조합하는 목적만 생각할 뿐이다. 여럿이 모여 하나가 된다.
(인간은 그래서 완결된 서사를 좋아해.)

-정신은 패턴을 찾으려 한다. 과학 저술가 마이클 셔머는 ‘패턴화‘라는 용어를 도입했다. 무의미한 데이터에서 구조를 찾으려는 시도를 일컫는 말이다. 진화는 패턴 추구를 선호한다. 수수께끼를 줄여 신경회로 안에 빠르고 효율적인 프로그램을 만들어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다보면 왜곡도 많이 생긴다.)

-“다른 사람과 그 일을 의논하지 않거나 누구에게도 털어놓지 않는 행동이 그 일 자체를 경험한 것보다 더 많은 피해를 입힐 수 있다.”
그의 연구팀은 피험자가 깊숙이 간직하던 비밀을 고백하거나 글로 썼을 때, 그들의 건강이 나아져서 병원을 찾는 횟수가 줄어들고, 스트레스 호르몬 수치도 눈에 띄게 줄어드는 것을 발견했다.
(그러니까 글을 쓰고 수다도 떨어요.)

-˝우리와 다른 사람 사이의 차이만큼, 우리와 우리 자신 사이의 차이도 크다.˝
(그러게. 진짜 고정불변의 나라는게 있긴 할까.)

-뇌에서 화학물질의 균형이 조금만 바뀌어도 행동이 크게 변할 수 있다는 것. 환자의 행동을 생물학적인 현상과 분리해서 생각할 수는 없다.
(약쟁이들은 공감할 부분)

-자라서 어떤 사람이 될지는 어디서 자랐는가에 따라 달라진다. 따라서 잘못의 책임을 생각할 때 가장 먼저 고려해야 할 점은 사람들이 어디서 어떻게 자랄지 스스로 결정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모든 환경을 스스로 택할 수는 없다.)

-십대의 뇌와 성인의 뇌에서 가장 다른 점은 전두엽의 발달이다. 인간의 전전두엽 피질은 이십대 초반에야 비로소 완전히 발달하기 때문에, 십대들은 중동적인 행동을 하곤 한다. 전두엽이 때로 사회화 기관이라고 불리는 것은 가장 다듬어지지 않은 중동을 진압하는 신경회로를 발달시키는 것이 곧 사회화이기 때문이다.
전두엽이 손상되면 그 안에 갇혀 있는 줄도 몰랐던 비사회적인 행동이 드러나는 이유가 바로 이것이다.
(나 자신부터 정상적인 사회화를 못 거친 탓인가 힘들다 사회화기관…)

-사람들의 생각을 제한할 수는 없다. 사법 시스템이 그런 것을 목표로 삼으려 해도 안 된다. 사회적인 정책으로 바랄 수 있는 것은 충동적인 생각이 행동으로 기울어지지 못하게 막는 것이다.
(이 부분은 공감한다. 그래서 늘 생각은 할 수 있어도 그걸 말과 행동으로 했을 땐 스스로 책임져야 한다고 말해준다…)

-인간이 평등하다는 신화는 모든 사람의 의사결정 능력, 충동조절, 결과를 이해하는 능력이 똑같다고 가정한다. 훌륭한 생각이지만, 전혀 사실이 아니다.
(훌륭한 이념이지만 인간 이해에는 걸림돌이었을 수도)

-만약 우리 뇌가 쉽게 이해할 수 있을 만큼 간단한 구조였다면, 우리는 그 구조를 이해할 수 있을 만큼 똑똑하지 못할 것이다.
(자칭 똑똑이 인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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