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0308 박완서.
이번에 본 박완서 단편 전집 2권은 1975년부터 1978년까지 발표된 작품들이었다. 여전히 읽는 재미는 있었지만, 한 작가만 통독 전작 하는 건 금세 물리거나 이전만 못하네, 하는 고약한 심보만 돋우는 짓이다. 소설들은 여전히 전쟁 후 시대상을 생생하게 그려내고 있었다. 그러니 질리고 물릴 일 없겠지만 이 다음부터는 연달아 보지 않고 아껴봐야겠다.
개학 후 한 주가 정신 없이 흘렀다. 이상하게도 새벽 중간에 깨서 오래 잠들지 못한다. 그러다 얕은 꿈인 듯 생각인 듯 주변의 사람들, 해야할 일들, 일어나면 엊저녁 충동구매한 옷 구매를 취소해야지 하는 생각까지, 잡념이 소음처럼 들끓다가 어느새 알람이 울린다. 전날 싸둔 도시락을 들고 씩씩하게 일찌감치 집을 나선다. 걸음걸이는 예전같이 빠르고 넓은 보폭을 못한다. 개학 직전에 하루 무리를 한 채로 내리 3일 여행을 다녀와서 많이 걸은 무릎이 상했다. 며칠마다 의원 가서 물리치료 받고 소염진통제와 근육이완제를 받아 온다.
그렇게 맞은 첫 일요일이어서, 아침부터 기가 팍 깎였다. 내일부터 또 일하러 간다… 소설 속에는 취직이 못 되어, 겨우 얻은 그 자리가 불안정해 결국 일을 관두고 자영업 생각하는 사람부터, 피엑스 물건을 빼돌리다 미군들에게 덤벼서 일자리를 잃은 사람, 수험 생활에 또 실패하고 시험을 보다 말고 뛰어 나온 사람, 남편을 너무도 멀리 보내 두고 살짝 미쳐가는 건지 본성이 드러나는 건지 하여간에 외로움에 절어버린 사람 등 나보다 괴로운 사람이 잔뜩 나온다. 그러니까 엄살 그만 부리고 그냥 살아야지. 자꾸 그런 생각을 하게 하니까 일상 풍속 소설 읽는 걸 좀 쉬어야 겠다 싶었다. 소설 핑계를 다 대네. ‘망가진 세계’ 나 ‘율리시스’나 크러스너호르커이라슬로 같은 더 빡센 걸 절절매며 읽어야 좀 더 확실하게 조그맣고 보잘것 없는 일상을 감사히 여길런지. 그런데 이쪽 진짜 세계도 망가지고 있어서 문득문득 불안하다. 갑자기 내가 있던 건물이 폭격을 당하고, 그동안 이룬 모든 것이, 모은 책들이 불타 사라지고, 뭐 그런 두려움이 엄습한다. 기껏 겪는 불운은 주식이 떨어지는 정도이지만 뭐 그렇게 지내고 있다. 쓰지 않는 건 다 없어지니까 이렇게 쪽글이라도 남겨둔다.
+밑줄 긋기
-죽은 망령이라면 용한 무당 시켜 지노귀굿이라도 해서 좋은 곳으로 천도라도 할 수 있으련만, 용한 판수를 시켜 경이라도 읽어 다시는 못 헤어날 옥중에 가둘 수라도 있으련만, 북쪽에 살아 있는 자의 망령에 대해선 나뿐 아니라 우리 모두가 속수무책이었다. (161, ‘돌아온 땅’ 중. 월북 삼촌 때문에 자식들의 앞길이 막히자 속상한 어머니 마음)
-왜 사회는 젊은 놈이 반드시 어떤 집단에 속해야 비로소 사람 구실을 할 수 있는 철통 같은 제도를 마련해놓고도 열 명 중 아홉 명은 아무 집단에도 안 끼워주고 팽개쳐버리는 걸까. (216, ‘꼭두각시의 꿈’ 중. 그러게 왜 그러는 걸까.)
-자기가 식욕이 없을 때, 타인의 식욕처럼 덮어놓고 싫은 건 없다. (341, ‘집 보기는 그렇게 끝났다’ 중)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