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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을 수 없는
  • 부끄러움을 가르칩니다
  • 박완서
  • 14,850원 (10%820)
  • 2013-06-04
  • : 1,850
-20260301 박완서.


‘그 산이 정말 거기 있었을까’를 5년 전에 읽었다. 그러고는 단편전집을 갖추게 되어 언젠간 읽어야지, 하다가 이번에 읽은 전집 1권은 1971년에서 1975년 사이 발표된 소설들이었다. 소설들이 죄다 재미나서 전집이 7권인데 아직도 많이 남은 게 신나고 장편들도 집에 엄마가 갖춘게 있으니 읽을 게 많다. 이렇게 잘 쓴 것들이 많으니 내가 더 후지게 보탤 것도 없고, 그냥 이렇게 읽기만 하고 살면 되겠다.

소설 속에는 수많은 남편들과 부인들이 등장한다. 중산층에서부터 가난한 사람들까지, 졸부도 나오는 구나, 하여간에 다양한 계층에서 도시의 속물성, 인간 살이의 치사스러움, 그런게 재미있게 그려져 있었다. 40대가 다 되어 등단을 했다는데, 어린 아이들을 업고 글을 썼다는데, 소설가들이 헌정 소설집도 낼 만큼 문학계의 큰 산이었다든데 그런 건 너무 오래 전에 지나가듯 주워들은 이야기이고, 수능 국어 대비 지문으로 토막글을 감질나게 읽던 걸 이젠 마음만 먹으면 원껏 읽을 수 있으니 좋았다.

슬프고 부끄럽고 답답스럽고 시원하고 그런 글들도 있었는데 그런 느낌을 받는 읽기라니, 50년이 더 된 글들인데도 재미있게 읽히는 소설이라니 이걸 여태 안 읽었다니 나는 운이 좋구만. 앞으로도 한동안 더 재미있을 수 있다.

우리 시대의 중산층이든 가난한 사람이든 부자이든 저마다 삶의 면모가 있을텐데, 그런 걸 어디선가 부지런히 글로 남기고 있겠지. 글이 아니라 브이로그 영상과 에스엔에스의 사진들로 이미지만 남았을지도 모르겠다. 거기는 다들 윤색되고 좋은 모습, 풍요로운 모습만 한가득인데, 역시 구질구질한 것을 남기려면 글인가, 누군가는 남기고 있겠지, 아니면 쓰지 않아서 없어지고 50년 후의 누군가들은 와 저때는 정말 좋았던 때지, 오해할지도 모르겠어서 불안하기도 하다. 내가 왜? ㅋㅋㅋ


+밑줄 긋기
-이를테면 어떤 연속극은, 거피한 다디단 흰 팥이 노르께하게 구워진 겉꺼풀에 살짝 싸인 구리만주 같은가 자못 우물우물 맛있어하는가 하면, 어떤 연속극은 찐득하니 꿀 같은 팥을 얇은 찹쌀꺼풀로 싼 찹쌀떡 맛인가 짜닥짜닥 맛있어하고, 어떤 연속극은 백항아리에 담긴 눅진한 수수조청을 여자처럼 토실한 집게손가락에 듬뿍 감아올려 빨아먹는 맛인가 쪽쪽 맛있어하고, 이 정도의 차이를 바보와 벙어리 사이에, 벙어리와 폭군 사이에 보였을 뿐 결코 어떤 감동은커녕 안타까움이라든가 동정 흥분을 나타내는일이 없었다.
그는 그냥 맛있어하고, 맛있음을 그냥 즐겼다. (122, ‘지렁이 울음소리’중. 우리 시대의 사회관계망을 즐기는 사람들에게는 버블티처럼, 크로플처럼, 탕후루처럼, 두바이쫀득쿠키처럼, 달디단 것들도 금세 질려 빠르게 생겨나고 사라지고 하겠지.)

-나는 왜 사람들이 어른이 됨과 동시에 하나같이 행주처럼 무기력해지고, 자벌레처럼 비열해지고, 잘 삶은 야채처럼 보들보들, 나글나글해지는지를 몰랐었다. 왜 어떤 악덕에도 순종만 했지 정직하게 싸움을 걸 줄을 모르는가가 궁금했었다. 나는 사람은 누구나 스스로의 사람다움을 지키기 위한 가시를 인두겁과 함께 타고 태어난다고 믿고 있었기 때문에 요즈음 사람들은 도대체 언제 어디다 써먹으려고 가시를 감추고 숙맥 노릇을 하나 그걸 몰랐었다. 그런데 난 지금 그걸 알아낼 꼬투리를 잡은 듯했다. 마치 어떤 흉악한 음모의 단서라도 잡은 듯이.
그래, 거긴 분명히 음모의 냄새가 있어. 우리를 고분고분 길들이고, 우리의 가시를 마멸시키기 위해 용의주도하게 꾸며진 음모의 냄새가. (213, ’연인들‘ 중. 비슷한 생각을 했지만 깨달음이 부족한 나는 아직 덜 혼난 모양이지.)

-이렇게 나나 철이 엄마나 딴 방 여자들이나 남보다 잘살기 위해, 그러나 결과적으론 겨우 남과 닮기 위해 하루하루를 잃어버렸다. 내 남편이 십팔 평짜리 아파트를 위해 칠 년의 세월과 부드러움과 따뜻함을 상실했듯이. (284, ‘닮은 방들’ 중. 50년 전이나 지금이나 비슷)

-맙소사. 이제부터 부자들 사회에선 가난장난이 유행할 거란다. 기름진 영감님들이 모여 앉아, 자네 자식 거기 아직 안 보냈나? 웬걸, 지금 여권 수속중이네. 누가 그까짓 미국 말인가, 빈민굴 말일세 하고. (404, ‘도둑맞은 가난’ 중. 가난 사파리의 원조에다 더 매운맛으로 상훈과 나의 짧은 동거가 너무 슬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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