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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을 수 없는
  • 저스트 키딩
  • 정용준
  • 13,500원 (10%750)
  • 2023-07-25
  • : 586
-20260215 정용준.

이 짧은 소설 시리즈는 대체로 좋았다. 정용준 책을 사서 네 권을 읽었고, 세 권이 남아 있었다(아니 구매 내역은 한 권 더 있다고 하는데 어딨는지 못 찾겠다...). 여기저기 아무데나 흩어져 꽂혀 있길래 (전자책은 빼고) 읽은 것, 안 읽은 것 전부 모아 가지런히 한 곳에 모으고 그 중 ‘저스트 키딩’을 읽기로 했다. 패티 스미스의 ‘저스트 키드’도 생각났는데, 읽고 보면 둘이 크게 관련은 없다. 아닌가, 노래하는데 크게 성공하지 못한 가수들이 나오긴 한다. 나도 그런 사람이었다.

겨울에 태어났지만 겨울이 좋진 않다. 어려서는 내 생일이 있어서 좋아하는 계절이라고 생각했는데, 이젠 겨울이 없는 나라에 가서 살고 싶다는 생각을 가끔하고 그 바람을 또 가끔 포기한다. 이번 겨울도 길고, 겨울에 긴 겨울이 나오는 소설을 읽으면 그래도 여기 겨울은 끝날 거니까, 하면서 봄옷도 사고 여름옷도 산다.

지난 번엔 괜시리 소설가의 산문집을 굳이 찾아 읽고 읽다가 포기를 하고, 또 기어코 다시 다 읽고 투덜거리는 뭘 끄적여놨다. 짧은 소설집이 좋은 점은, 소설가들이 뭔가 여유롭고 너그럽게 따뜻한 걸 써 놓는다는 것이다. 글이 길어지고 삶이 길어지면 꼭 마가 끼고 슬픔과 비극도 닥치고 그런 것이다. 짧은 글은 그런 안 좋은 일을 시시콜콜 늘어 놓기엔 너무 짧으니까, 인생 짧고 한 번인데 한 잔해, 하고 하하호호 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런데 그걸 읽는 나도 평소에는 짠돌이이지만 짧은 이야기니까 훈훈해도 어쩔 수 없지, 하고 편안하게 읽는다. 두껍거나 지독하거나 후지거나 한 책들만 연달아 보다가 뭘 만날까 조금 걱정하며 펼쳤지만, 생각만큼 가뿐하고, 텁텁함 없이 읽혀서 만족한 독서였다. 모든 이야기가 굳이 길 필요는 없다.

+밑줄 긋기
-‘어떤 가사를 써도 마음이 온전히 담기지 않아. 어설프게 망가트리고 싶지 않아. 차라리 쓰지 않음으로 내 모티프와 영감을 지키는 거야.’
그때는 왜 솔직하게 내 생각을 말하지 않았을까?
“개소리하지 마. 에이징? 억지로 멀쩡한 것을 망가트리면서 그것이 멋있게 낡은 거라고? 미친 새끼. 부서진 것과 낡은 것은 다른 거야. 아무 노력도 하지 않으면서 시간을 꼼수로 사려고 하잖아.”
주하는 충격을 받은 듯 멍하게 나를 바라봤다. 그리고 무슨 말을 더 했는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 너무 솔직하고 정직한 말이었다. 꺼내면 그 말이 마음이 될까 봐 절대로 입술 밖으로 꺼내지 않는 단어들을 아무렇지 않게 섞어 침을 뱉고 돌을 던지듯 쏟아부었다. 주하는 놀란 아이처럼 얼어붙어 꼼짝도 하지 않았다. 그는 실패한 가수가 아니다. 무엇인가를 시도하거나 이룬 적이 없으므로 그에게 실패라는 말은 어울리지 않는다. 그는 실패에 대한 로망을 갖는 것으로 실패를 흉내 내고 있을 뿐이다. (64-65, ‘시간 도둑’ 중)

-막막하고 하염없어도 눈을 미워하는 사람은 되지 말아라. 눈과 비는 빛과 함께 하늘에서 내리지. 천국은 이런 것들로 이루어져 있는 거야. 좋은 곳에 있으니 슬퍼 말고 언젠가 그날이 오면 기쁘게 나를 만나러 오렴. (156, ‘겨울 산‘ 중)

-달군 철판 위에 쑥을 덖고 바람에 말리고 다시 철판에 올려 덖는 것을 몇 번이고 반복하던 엄마에게 물었다.
왜 그렇게 오래 하는 거야.
물기가 없어야 해. 그래야 시간을 견딜 수 있단다.
왜 이렇게 많이 만드는데.
겨울은 기니까.
엄마는 창고 한 면을 가득 채울 정도로 많은 통에 말린 차와 꽃을 저장했다. 긴 겨울 동안 평생 마셔도 부족함이 없을 것 같던 쑥과 꽃이 다 사라졌다. 엄마는 알았다. 겨울이 이토록 길 것이라는 것을. 둘째는 몰랐다. 평생보다 긴 시간이 있다는 것을. 둘째는 마지막 통 속에 반쯤 남은 까만 쑥을 보며 시간의 끝을 예감했다. 첫째가 식탁 맞은편 의자에 앉으며 말했다.
춥다. 나무를 해야겠어. (158-159, ’겨울 산‘ 중. 영원히 끝나지 않는 겨울이 기쁠 수도 있고 슬플 수도 있겠다.)

-소설을 쓰기 어려운 게 바로 그거야. 아무리 노력해도 괴상한 삶을 따라잡을 수가 없거든. 그 어떤 끔찍한 상상을 해도 현실은 그것보다 끔찍하니까. 내 몸을 뺏은 나도 그걸 곧 느끼겠지. 느껴봐라. 흡수된 내가 피와 땀이 되어 실컷 비웃어줄 테니까. 웃음이 나온다. 웃음이 나와. 얼마 만의 해피엔딩인가. (203, ‘해피 엔딩’ 중. 내가 무서운 영화나 무서운 소설을 잘 읽는 이유였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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