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라딘서재

참을 수 없는
미국의 곡소리.
반유행열반인  2026/01/25 17:15
  • 미국의 목가 1 (무선)
  • 필립 로스
  • 13,500원 (10%750)
  • 2014-05-12
  • : 1,543
-20260125 필립 로스.

초성의 운이 살아 있는 번역 제목 ‘미국의 목가’는 읽기 전부터 지독하게 역설의 제목이겠지, 기대하게 했다. 미군이 맛간 이야기 같은, 헤비 메탈이든 랩 메탈이든 분노의 사운드를 떠올렸다. 이쯤 때려 맞추면 이제 필립 로스 깨나 읽은 놈이라고 주장할 수 있겠지만, 아직 읽지 않고 모셔둔 필립 로스의 작품이 이거 말고도 다섯 종은 더 남아 있다. 아껴 읽겠다고 연간 한 가지만 읽자, 했는데 적당히 (자동으로) 잘 지키고 있다.

이민자 유대인 조상 세대를 넘어 미국의 가치, 생활 양식을 체화하고 심지어 그 중에서도 가장 훌륭한 미국인의 본보기가 된 듯한 스위드, 시모어 레보브는 어린 주커먼의 우상이었다. 우연히 마주친 스위드는 스킵(주커먼)에게 만남을 제안한다. 주커먼은 함께 식사를 나누며 가족 타령만하는, 겉으로는 너무 평범하게 보이는 과거 영웅 스위드에게 실망하고, 나중에 동창회에서 만난 스위드의 동생 제리로부터 스위드가 겪은 고통의 사건을 알게 된다.

번역기 대참사라고 에스엔에스 짤로 보게 된 음식, 베트남 샌드위치 반미는 대기업 구내 식당에 anti-american 샌드위치가 되어 있었다. 반미를 현지에서 먹어 봤는데, 자꾸 중국인들에게 새치기 당해서 울 뻔했지만 끈기있게 기다려서 주문했다. 저렴한 가격에 정말 맛있는 빵이었다. 한국 전쟁에 군대를 파견해준 미국이 우리에게 베트남전 파병을 요청했을 때, 외화 벌이도 해야하고 미국 눈치도 살펴야 하는 한국은 청년들을 말도 통하지 않는 동남아시아 더운 나라로 배를 태워 보냈다. 친족 중에 파월 해병이 있으니 우리 할아버지들이 적지 않게 갔다 왔겠다. 이라크 전쟁 파병을 앞뒀을 때, 과 선배들에게 이끌려 반전 반미 부시 아웃, 이런 구호를 외치며 가두 행진하던 때도 기억난다. 그보다 몇 년 후에는 쇠고기 수입 반대한다고 촛불 들고 가족들과 엠비 아웃, 하면서 거리에 나가기도 했지만...지금은 미국산 쇠고기 세일하면 잘 먹는다.

뉴어크의 학교 스포츠 스타였던 스위드는 2차 대전 종전 직전 해병대에 입대했다가 전쟁이 곧 끝나 무사히 살아왔고, 아버지의 장갑 사업을 물려 받아 회사를 경영을 하는 자본가가 되었다. 스위드가 리타 코언에게 공장의 제조 공정을 소개하며 여성용 장갑을 만들어주는 장면에서, 나는 못 참고 백화점의 재고 양가죽장갑 하나를 온라인 주문해 버렸다. 그만큼 가죽 장갑 땡기는 장면이 있었다. (이제 하다하다 소설 핑계를 대고 뭘 산다…그래도 이만원 안 되게 싸게 샀다구) 이후 리타가 스위드에게 하는 짓은 진짜 역겹고 치졸했다. 반전 반미 반자본 반제국주의 외치며 테러범이 되어 버린 딸 메리를 되찾으려, 왜 이 지경이 되었는지 이해라도 해보려 하는 스위드의 발버둥은 처절했다. 주커먼은 그걸 스위드가 죽도록 못 알아차리고는, 스위드에게 실망했던 걸 좀 만회해보려고 했는지 상상의 나래를 펼치고, 아마도 책의 중후반부는 그렇게 주커먼이 픽션으로 그려낸 서사인 듯하다. 왜 짐작만 하냐면 아직 2권을 안 읽었기 때문에…

맵고 아려도 자꾸 찾아 먹게 되는 먹거리 처럼, 필립 로스의 소설은 이렇게 혀에 휘감기게 잘 읽히고, 읽는 중간중간 뒤통수나 어깨도 툭툭 퍽퍽 쳐준다. 어쩔 수 없음 앞에 왜, 왜? 왜 날 뷁? 하는 가련한 인간을 잠자리 다리 날개 머리 분해하듯 보여주는 걸 함께 지켜보며 인간, 너무 환멸을 느끼지도 미워하지도 말아야 겠네, 싶게 만든다.

+밑줄 긋기
-그러면서도 나는 계속 그가 누구도 이의를 제기할 수 없는 이런 뻔한 것 이상의 뭔가를 보여주기를 기다렸다. 하지만 하나의 거죽이 사라지면 또다른 거죽이 올라올 뿐이었다. 이 사람은 존재 대신 무개성을 갖고 있구나, 나는 그런 생각을 했다. 그런 무개성이 광채를 발하는구나. 그는 자신을 위해 익명성을 고안했는데, 그 익명성이 그 자신이 되어버린 것 같았다. 식사 도중에 몇 번이나, 그가 계속 이렇게 가족을 찬양하고 또 찬양한다면 나는 끝까지 가지 못할 것 같다는, 디저트까지 가지 못할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그러다 마침내 이 사람이 익명의 존재가 아니라 미친 것인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뭔가가 이 사람 위에 올라타 정지를 명령한 것이다. 뭔가가 이 사람을 진부함의 표본으로 바꾸어버린 것이다. 뭔가가 이 사람에게 경고를 한 것이다-너는 어떤 것도 거스르면 안 돼. (43-44, 어린 천재를 노년 이후 만나서 야 너 왜 이리 후져졌어, 하면 조금 불공평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하-하지만 아빠는 나를 미-미-미-미치게 만든다고요. 이해하려고 노력하는 이런 분별력 있는 부모 노릇 때문에요! 나는 이해받고 싶지 않아요. 자-자-자-자유롭고 싶다고요!” “그럼 내가 너를 이해하지 않으려고 노력하는 분별력 없는 부모인 게 더 좋겠니?” “더 좋죠! 더 좋을 거 같아요! 젠장, 어디 한번 그-그-그렇게 해보는 게 어때요. 젠장, 어디 한번 어떻게 되나 보게!”(171)

-그 일을 벌인 승려는 칠십대로, 바싹 말랐으며 머리는 빡빡 밀고, 샛노란 가사를 입고 있었다. 승려는 허리를 꼿꼿하게 세우고 책상다리를 한 채 남베트남 어느 도시의 텅 빈 거리에 우아하게 앉아 있었고, 그의 앞에는 그 사건을 보려는 승려 한 무리가 마치 종교 제의를 치르러 나온 양 앉아 있었다. 늙은 승려는 커다란 플라스틱 통을 들어 가솔린인지 등유인지를 자기 몸 위에 쏟았다. 주위의 아스팔트도 흠뻑 젖었다. 그는 바로 성냥불을 켰다. 그와 동시에 거친 불길이 후광처럼 그에게서 넘실거렸다. (235, 이 이미지는 1992년 발매된 랩메탈 밴드 RATM의 앨범 아트에 사용된다.)
Rage Against The Machine-Killing In The Name
https://youtu.be/bWXazVhlyxQ

-“사-사-사람들이 저-정신을 차리게 하려면 불속에서 스스로 노-노-녹아야 하나요? 저러면 누가 관심을 가질까요? 양심이 있는 사람이 있나요? 이 세-세상 누구한테 양심이 남아 있을까요?” ‘양심‘이라는 말이 입에 오를 때마다 아이는 울기 시작했다. (237)

-건물이 있어도 외롭고, 건물이 없어도 외롭단다. 외로움에 대해서는 어떤 저항도 할 수 없어. 역사상 어떤 폭파 운동도 거기에는 흠 하나 내지 못했지. 인간이 만든 폭약 가운데 가장 치명적인 것도 그것을 건드리지는 못한단다. 내 멍청한 아이야, 공산주의에 경외감을 품지 말고, 보통의, 일상적인 외로움에 경외감을 품어라. 노동절이 오면 밖으로 나가 네 친구들과 함께 외로움의 더 큰 영광을 향해, 슈퍼파워 가운데서도 슈퍼파워를 향해, 모든 것을 압도하는 힘을 향해 행진해라. 거기에 돈을 놓고, 내기를 하고, 그것을 숭배해라. 말을 더듬는 아이, 분노에 찬 아이, 멍청한 아이야, 카를 마르크스에게, 호찌민과 마오쩌둥에게 복종하여 고개를 숙이지 말고, 위대한 신 외로움에게 고개를 숙여라! (3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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