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0118 쿠르치오 말라파르테.
Manic Street Preachers - Revol
https://youtu.be/vf91dTrLkgA
밀란 쿤데라의 산문집을 보다가 말라파르테의 ‘Kaputt(망가진 세계)’를 알게 되었다. 소설이 궁금해서 마련해 놓았는데, 같은 작가가 쓴‘쿠데타의 기술’이 번역되어 있는 걸 알게 되어 함께 사 뒀다. 망가진 세계는 얼른 읽어보고 싶은 마음과 압도될 것 같은 예감과 불안이 이리저리 싸우다가 자꾸 미뤄뒀다.
재작년 12월3일 밤 열 시 반쯤 우연히 네이버 메인에 들어갔다. 속보-어쩌구 계엄령 선포-하는 제목을 보고 벙쪄서 주위 사람들에게 메신저로 계엄이래...하고 알렸다. 갑자기? 하는 비현실적인 느낌이었고, 미친놈이 진짜로 미쳤군… 했다. 삼일 후에는 언제 그 소동을 벌였냐는 듯 적막한 국회를 보러 여의도로 걸어갔다 왔다. 그 정도였다. 당장 내 안의 재난이 크던 시절이라 바깥의 재난은 크게 와 닿지 않는 마비상태였다. 그런 와중에도 ‘쿠데타의 기술’ 읽어 봐야겠네 하는 생각을 했다. 그러고서 또 일년이 지났다.
부록의 해제를 먼저 읽고 마음을 단단히 먹었어도, 쏟아지는 잠과 무관심을 이기기는 어려웠다. 십여년전에 나의 투쟁도 이렇게 졸다 깨다 뭐라는 거야 미친놈아...하면서 1권을 겨우 보고 2권은 포기한 기억이 났다. 레닌, 트로츠키, 스탈린, 나폴레옹, 무솔리니, 히틑러, 이 정도가 들어본 이름들이었지만 이 자식들이 뭐 어쨌다고… 위대해지고 싶었던 놈들 때문에 엄한 사람들 많이 갈렸을 건데 뭐 어쩌라고… 싶고 재미없었다. 역사 덕후들도 있는데 나는 학교 다닐 때부터 역사에 약했다. 그리고 위인전과 역사책도 대부분 재미가 없었다. 인터넷 강의도 잘 못 듣고 여러 사람을 대상으로 선전이든 연설이든 뭐든 웅장하게 말하는 것에 집중을 못한다. 멀리 떨어져서 저 사람, 머리에 뭘 많이 발랐네...이러고 딴 생각을 한다. 그러니 다행히도 집단 최면에 빠지지는 않겠지만 종교도 우상도 신념도 가지지 못한다.
이 책은 각 장 앞에 해설이 붙어서 말라파르테의 오류를 미리 잡아준다. 여기에서 이미 신뢰할 수 없는 화자, 그렇지만 독특하고 겁없는 떠벌이를 만난다는 생각에 크게 진지하게 읽게 되지 않았다. 1931년에 나온 책이고, 히틀러가 세계대전 일으키기 전이니까 나중에 쪽팔리기도 했을 것 같다. 그래서 1948년판에는 에필로그처럼 길게 자기 자랑도 해놓고 자기 책에 대한 해명도 해놓고 자신이 핍박 받은 것도 길게 풀어놨다.
그러나저러나 나는 너무 졸렸단 말이다. 아저씨들만 잔뜩 나와서 자기들의 꿈을 이루려고 다른 아저씨들을 수단 삼아 부품처럼 이리저리 끌고다니는 게 징그러웠단 말이다. 네놈들 때문에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혼란스럽게 그 시국을 견뎌야 했겠냐… 한 방에 우리를 구해줄 라젠카나 태권브이 같은 건 없다. 한 방에 세상을 자기 걸로 만들고 싶은 욕심쟁이 대마왕들은 많다.
+밑줄 긋기
-근대에서 쿠데타의 문제는 기술적인 문제이다. 반란이란 하나의 엔진이라고 트로츠키는 말한다. 반란을 시동하려면 기술자가 필요하고, 그 기술자만이 엔진을 멈출 수 있다. 이 엔진을 움직이는 것은 한 국가의 정치, 사회, 경제 상태와 무관하다. 반란은 대중에 의해 행해지는 것이 아니라 모든 준비를 갖춘, 반란 전술에 따라 훈련받은 소수, 국가의 핵심 기술 서비스를 신속하고 격렬하게 타격할 수 있도록 훈련된 소수에 의해 행해진다. 이 돌격 부대는 전문 노동자, 기계공, 전기 기사, 전신 기사의 집단으로 편성되어야만 한다. 그들은 국가의 기술적 기능을 숙지하고 있는 엔지니어의 명령을 따라야 하는 것이다. (101, 거의 100년 지난, 변화한 세상에서 이거 진지하게 믿고 쿠데타 시도하는 바보 없지?)
-그러나 무력에 의한 정부 전복에 성공한 후 개헌이나 선거, 국민 투표 등 요식 행위를 동원해 스스로를 합법화하려 시도하지 않은 쿠데타가 과연 역사상 얼마나 존재할까? 정권을 장악한 후 개헌 또는 투표를 통해 지지를 확인받았다고 해서 진정 쿠데타의 합법성이 보장되는 것일까? 말라파르테가 말하는 ‘합법의 한계를 넘지 않는 쿠데타’개념의 자의적 허위성을 비판할 수 있는 부분이다. (192, 합법적 쿠데타는 지드래곤 노래 제목 말고는 없다…)
-카프, 프리모 데 리베라, 피우수트스키, 그리고 어떤 점에서는 히틀러조차 법과 질서의 인물들이라 할 수 있다. 권력 장악 목적이 자신의 위엄, 권력, 권위를 높이는 데 있었고, 자신들의 반란 동기를 국가의 적이 아니라 종이 되려는 것이라고 정당화하는 반동적 인물들이었다. 그들이 가장 두려워하는 것은 불법화되는 것이었다. 쿠데타 계획을 세울 때, 그들은 나폴레옹이 자신이 범법자로 선언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놀라 창백해졌다는 사실을 결코 잊지 않았다. 의회는 그들의 전술적 목표였고, 그들은 의회를 통해 국가를 전복하고자 했다. 타협과 계략의 게임에 매우 유리한 도구인 입법권은 그들을 헌법적 질서 내에서 기정사실로 편입되도록 도울 수 있었다. 그렇게 되면 혁명적 폭정은 한법적 합법성과 접목될 수 있었다. (195, 국회를 장악하지 않고는 무력 반란 만으로는 성공할 수 없다는 입장. 국민의 대표들은 이렇게 반역의 수단이 될 수도, 운이 좋으면 헌법 수호자가 될 수도 있다.)
-따라서 파시스트들이 벌인 쿠데타란 실상 피 끓는 폭력 혁명, 목숨을 건 영웅적 투쟁이라기보단 이스라엘 쟁윌의 말 처럼 한 편의 희극-혼란의 와중에 유감스러운 사상 사고를 동반하는-에 가까운 경우가 많았다. ‘봉기’는 벌어졌지만 그 봉기를 일으킨 이들도, 그 ‘공격’을 받는 이들도 전체적인 상황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무엇에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 제대로 모르는 채 혼란을 겪었다. (208-209, 정말 싫구만. 뽀개버리고 싶은 말 중에 ‘대의명분‘이 있다.)
-어떤 공식적 연대기 작성자들은 수사학과 문학에 취해서, 파시스트 쿠데타의 극장식 기록을 만들었다. 이것들은 허위다. 아무 위대한 발언도 멋진 자세도, 율리우스 카이사르, 크롬웰이나 보나파르트를 연상시키는 아무 몸짓도 없었다. 로마로 행진한 군단들은 다행히도 갈리아로부터 귀환하는 카이사르의 참전병들이 아니었고, 무솔리니도 로마식 복장을 하지 않았다. 신문 삽화나 공식 회화들은 모두 역사 기록에 나쁜 안내자들이다. (250, 이탈리아 파시스트들 ‘긁’히는 소리가 나는 부분. 과장도 왜곡도 오판도 심한 놈 같긴 한데 담대하게 깔 땐 까는 말라파르테를 보며 이놈도 참 특이하고 겁없긴 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책은 무솔리니 깎아내린 덕분에 이탈리아에서 금서가 된다.)
-히틀러는 독재자, 오늘의 독일 상황에 합당한 ‘여자’다. 그의 여성적 측면은 그의 성공, 군중에 대한 지배력, 그리고 독일 청년들 사이에서 그가 일으킨 열정을 설명해준다. 보통 사람의 눈에 히틀러는 흠 없고, 금욕적이며, 독일 민족에게 필요한 행동이 무엇인지를 해석해주는 신비에 싸인 성자다. 그가 얻은 평판은 카틸리나(음모를 꾸며 반란을 획책하는 인물)로서의 명성이 아니다. (276, 히틀러를 얕잡아 보고 놀리듯이 쭈절쭈절해 놨는데 거기에다 여자를 멸칭처럼 쓰는게 확 깬다…)
-혁명적 행동을 통해 권력을 장악하려 시도하지 않는 독재자는 어떤 대가를 지불하고라도 자유를 수호할 준비가 되어 있는 서유럽을 결코 굴복시킬 수 없을 것이다. (278, 그 자유를 수호할 준비가 되어 있는 사람들의 손으로 선출된 총통이 폴란드를 침공하고 유대인을 죽이고 세계 대전을 일으킨다. 말라파르테는 이런 식으로 틀린 예언이나 과거 사건을 실제와 다르게 서술하는 일이 많다. 소설가라면 그것도 괜찮은 장치겠지만 기자였잖아…100년 전에도 기러기가 있었어…)
-어떻게 현대 국가가 전복될 수 있고 어떻게 방어될 수 있는가를 보여주려는 나의 열망을 탄생시킨 것은 바로 이 불안, 자유를 사랑하는 한 사람에겐 너무나 당연한 이 불안이다. 셰익스피어의 작품에서 헤리퍼드 공작 볼링브룩은 “독을 필요로 하는 사람은 그 독이 효과가 있은 후에는, 그 독을 더 이상 사랑하지 않는다”라고 말했는데, 아마도 자유를 사랑하는 사람도 그러할 것이다. (28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