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라딘서재

참을 수 없는
  • 깨어남
  • 올리버 색스
  • 27,900원 (10%1,550)
  • 2012-09-03
  • : 644
-20250111 올리버 색스.

WING - Dopamine
https://youtu.be/qlrpeYdm9Ec

이 책에 나온 사례와 엘도파 치료 적용을 이해하려면 파킨슨증과 수면병(뇌염후증후군, 그 병세가 파킨슨증과 유사한 경우가 많음)에 대한 이해가 우선해야 한다. 책머리에 자세하게 병에 대한 소개가 되어 있지만, 제대로 이해를 못했던 것 같다. 약 복용 이후 잠시 회복되는 듯하던 환자들이 극심한 부작용이나 퇴행을 보이는 걸 읽으면서 그럴 거면 뭐하러...박사님 매드 사이언티스트 같네...하는 생각을 했다.

MSD매뉴얼에 설명된 파킨슨병
https://www.msdmanuals.com/ko/home/%EB%87%8C-%EC%B2%99%EC%88%98-%EC%8B%A0%EA%B2%BD-%EC%9E%A5%EC%95%A0/%EC%9A%B4%EB%8F%99-%EC%9E%A5%EC%95%A0/%ED%8C%8C%ED%82%A8%EC%8A%A8%EB%B3%91-pd

그렇지만 약물 치료가 없으면 뇌의 도파민 신경체가 망가진 사람들에게는 폭발적인 되돌림, 회생, 변화 같은 게 잠시라도 가능하지 않다는 걸 알게 되었다. 그래서 올리버 색스 박사가 부작용이나 퇴행에도 불구하고 약물 치료를 계속 시도하는 것을 조금은 이해할 수 있었다. 수치나 통계로 모든 것을 돌리는 환원주의를 경계하고, 환자의 병력과 입장을 관찰하고 공감하며 직접 말하지 못하는 이들의 서사를 가능한한 섬세하게 전달하려는 시도가 특색있었다. 이 책이 있었기에 나중에 조금 더 대중적으로 잘 읽히게 쓴 ‘아내를 모자로 착각한 남자’같은 책도 있었겠다 싶다.

잠든 듯 죽은 듯 갇혀 있던 사람들. 그들의 이야기마저 갇힐 뻔한 걸 박사님 덕에 알 수 있는 건 귀한 경험이었지만, 조금 걱정도 되었다. 건강한 사람들이 읽기에는 그들의 분투와 삶이 그저 흥미거리가 될 위험도 크기 때문이다. 그렇게 읽지 않으려고 의식적으로 애써야 할 부분이 종종 있었다. 환자의 사적 영역과 불행, 사회 속 인간들이 자제하고 억제하는 부분들이 무너졌을 때의 비참한 모습 같은 게 특히 그랬다.

이런 우려나 비판을 의식했는지, 박사님은 자신의 연구와 이 책에서 취한 관점, 환자들이 공통으로 겪은 깨어남, 시련, 적응에 대해 자신이 이해한 바를 상세히 후술해 놓았다. 이것만으로도 책 한 권은 될 법하다. 사례들을 보기 전에 이걸 먼저 보는게 낫지 않았을까? 싶지만 박사는 괴테의 문구 인용으로 대답을 해 놓았다. ‘어떤 의미에서는 모든 사실이 이론이다. … 현상 뒤의 무언가를 찾아다녀봐야 쓸데없다. 현상이 바로 이론인 까닭이다.’(360). 이 관점에서 본다면, 독자들이 먼저 사실을 접하며 직접 느끼고 알아가길 바라서 굳이 이런 순서로 책을 엮은 듯하다. 이 책은 여러 번 주석을 뒤집고 내용을 붙였다 뺐다 하면서 개정판을 계속 냈다는데, 거기에서도 박사가 어떻게 자신이 경험하고 알게 된 것을 잘 전달할지 고민한 것, 그리고 박사가 가진 환자에 대한 애정과 염려가 엿보였다.

깨어남 이후 환자들이 큰 어려움으로 이행될 때 내가 아무 고민 없이 ‘부작용’이라고 지칭한 상황에 대해서 박사는 그 용어 자체를 반대하며 내재한 ’근본적인 문제‘, ’병에 걸리기 쉬운 경향‘ 등으로 다르게 보고자 한다.
’그런데 이 모든 현상을 ‘부작용’으로 부르다니 그 얼마나 부조리한 노릇인가! 환자 한 사람 한 사람 개인의 경험과 성격, 전체적인 기질과 관계없이 그런 현상을 이해할 수 있다고 생각하다니 말이다. 각 환자 개인의 특성에 대한 이해가 없다면 그런 반응의 본질을 이해할 수 없으며, 세계의 특성에 대한 이해 없이 환자의 특성을 이해한다는 것도 있을 수 없는 일이다. 그리하여 우리는 모든 자연이 본질적으로 연극적이며(“이 세계는 일종의 연극 무대…”) 기회가 있을 때마다 계시처럼 자신을 드러낸다는 사실(한때는 모두가 알았던 사실)을 이해하게 된다.‘ (397-398)

유행병으로 번졌던 특정 시기의 수면병과 뇌염후증후군은 국지적으로 발생하거나 잘못 진단되어 발견되지 않는 것처럼 보이지만, 1990년대에도 드물게 병례가 등장하고 있다. 비슷한 듯 진행 양상이 조금은 다른 파킨슨증 환자는 우리나라에서는 증가 추세(2025년 기준 최근 4년간 약 13퍼센트 증가)라고 한다. 파킨슨증이든, 알츠하이머든, 정신질환이든, 뇌손상이든, 과거의 모습을 잃고 다른 인격체나 다른 상태로 생을 이어가는 가까운 사람이 있다면, 이 책의 사례를 통해 조금이나마 이해에 다가가는데 도움이 되지 않을까. 그들이 마주한 심연을 짐작하며 고통을 더는데 작은 위로가 되었으면, 하고 조심스럽게 생각해보았다. 이 책을 영화화한 작품도 파일을 구해놨었는데 조만간 보려고 한다.

+밑줄 긋기
-“발작이 일어나는 생각을 하면 바로 발작이 일어나요. 그래서 발작이 일어나지 않는 생각을 하려고 해도 발작이 일어나요. 발작에 대해 생각하지 않으려고 생각하면 또 발작이 일어나요. 선생님은 이게 강박으로 발전하고 있다고 보세요?”(99)

-“(…) 하지만 점점 더 멀어지는 것 같습니다. 이 병에 휘말려 들어가는 걸 알 수 있어요. 파도가 헤엄치는 사람을 집어삼키는 것처럼요. 저 병이 누나를 집어삼켜 우리 곁에서 빼앗아 가는 것 같아요…” Y부인은 서른다섯 무렵에 사실상 말을 잃고 정지된 채, 깊고 아득한 곳에 완전히 갇혀버렸다. 남편과 자녀들은 무력감으로 고통받았고,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쩔쩔맸다. 결국 입원하는 것이 모두에게 가장 좋은 선택이라고 결정한 사람은 Y부인 자신이었다. 그녀는 말했다. “난 이제 됐어. 더 할 일이 없어.” (163, 내 안에 갇히지 않았음에 감사하기. Y부인의 가정은 슬프게도 저 입원과 함께 해체되었다.)

-“야, 이놈들아, 그만 좀 내버려두지 못해! 이 빌어먹을 검사가 무슨 의미가 있어! 그 대가리엔 눈하고 귀도 안 달렸어? 내가 슬퍼서 죽어간다는 게 안 보여? 빌어먹을, 좀 평화롭게 죽잔 말이다!” 이것이 로날드가 한 마지막 말이었다. 나흘 뒤, 그는 잠자다가 혹은 혼미한 상태에서 죽었다. (205, 사랑을 잃으면 죽기도 한다.)

-‘고통이 이 방 안 어딘가에 있다고 느껴왔지만 그게 어딘지 안다고는 확실히 말씀드릴 수 없군요.; (209, 저 느낌 왠지 알겠다.)

-“선생님처럼 사는 것은 어떤 것입니까? 무엇에 비교하시겠습니까?” 그는 다음의 답을 한 자 한 자 늘어놓았다. “감금. 박탈. 릴케의 <표범>같다.”

수많은 창살이 스쳐 지나가 그의 시선은
지쳐 더 이상 아무것도 볼 수 없다.
그에게는 수천의 창살만 있고
수천의 창살 뒤에는 어떠한 세계도 없는 것 같다.

그리고 병동을 훑어보고는 다시 타각타각 알파벳을 가리켰다. “여기는 인간 동물원이다.” (…) “내게 있는 것은 어떤 끔찍한 실재다.”(…) “그리고 어떤 끔찍한 부재가 있다. 내가 말하는 실재는 성가시게 따라붙고 밀쳐대고 짓누르는 제약과 구속과 훼방의 상태다. 나는 이걸 보통 ‘막대기와 고삐’라고 부른다. 부재란 끔찍한 고립과 차가움, 쪼그라드는 것이다. 이건 당신이 상상하는 이상, 아니 경험해보지 않은 사람은 감히 상상할 수도 없다. 한없이 깊은 어둠, 비현실.”(325-326, 뇌염후증후군 환자 레너드 L.이 알파벳보드로 표현한 자기의 생.)

-열 살 때는 이런 소리를 자주 했다. “나는 평생을 책 읽고 글 쓰면서 보내고 싶다. 책 속에 파묻혀 살고 싶다. 사람은 도저히 믿음직하지 못하다.” (…) (서른 살에) 입원하자마자 바로 병원 도서관 관리를 맡았다. 책 읽는 것 말고는 할 수 있는 일이 거의 없었고, 정말로 책 읽는 것 말고는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이때부터는 실로 책에 완전히 파묻혀 살았고, 어떻게 보면 어린 날의 소원이 무시무시한 형태로 성취된 셈이다. (327-328)

-정신분열적 환각의 기능(과 양상)은 일반적으로 현실 부정의 성격을 띤다. 반면에 마운트카멜병원 환자들한테 나타난 양성적 환각의 기능(과 양상)은 현실 창조의 성격을 띤다. 다시 말해 운명으로 인해 잔인하게 부정당한 행복하고 충만한 건강한 삶을 상상하는 것이다. 따라서 나는 이들의 환각이 건강하고 사람답게 살고 싶은 소망의 표시라고 본다. 그들이 자유를 누릴 수 있는 유일한 영역이 상상과 환각뿐이기에, 그들은 환각 속에서 풍요롭고 극적인 인생다운 인생을 경험한다. 그들의 환각은 생존을 위한 것이다. 감각기능과 운동기능, 사회적 기능에서 극도로 고립된 모든 사람이 그렇다. 그리고 이런 이유로 어떤 환자가 풍요로운 양성적 환각 ‘생활’을 누리고 있다는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나는 마음껏 즐기라고 권장한다. 삶을 추구하는 모든 창조적 노력을 권장하듯이.(338, 색스 박사의 ‘환각’을 읽을 때 박사가 엘에스디 사용 경험을 털어 놓은 게 어렴풋이 떠오른다. 환각에 대해 긍정적이고 대안적인 관점을 가질 수 있는 사고의 유연성이 놀라운 각주 부분이었다.)

-“처음엔 말입니다, 선생님, 저는 엘도파가 세상에서 가장 훌륭한 발명품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내게 그 생명의 묘약을 처방해 준 선생님께 감사했죠. 그러다가 모든 게 나빠졌을 때는 그게 이 세상에서 가장 흉악한 물건이라고 생각했어요. 사람을 지옥의 나락으로 떨어뜨리는 치명적인 독약이라고요. 그걸 내게 준 선생님을 저주했습니다. 만감이 교차하더군요. 공포와 희망, 증오와 사랑...지금은 이 모든 상황을 받아들였습니다. 근사하면서 끔찍하고, 비극적이면서도 희극적인 일이죠. 결국엔 슬픈 일이고요. 하지만 그게 다예요. 나는 그냥 놔두는 게 최선입니다. 약은 이제 그만이에요. 지난 3년 동안 많이 배웠습니다. 평생을 갇혀 지내던 장벽을 뚫고 나온 겁니다. 이제는 제 자신으로 살아갈 겁니다. 엘도파는 그냥 두셔도 됩니다.” (344, 레너드 엘의 경험과 통찰은 이 책의 사례들을 어떻게 받아들일 것인지 정리하는 데 도움을 주었다.)

-라이프니츠의 ‘최적률’(건강)은 수치로 나타난 지수가 아니라 엄청나게 다양한 세계, 현실성 그 자체인 세계라는 구조에서 가능한 방대하고 다양한 관계를 시사하는 개념이다. 이런 의미에서 볼 때 질병이란, 구조 혹은 서롂가 허약하고 경직된 까닭에 최적률에서 이탈한 상태인 셈이다(질병 자체의 힘이 워낙 강력하기는 하지만 말이다). 건강의 양상은 비한정적이고 확장적이며 세계의 충만함을 지향한다. 반면에 질병의 양상은 한정적이고 환원적이며 세계를 자기 안으로 축소시키려 든다. (361, 건강과 질병에 대한 다른 관점. 그저 아프거나 불편해지는 것 이상의 존재론적 변화.)

-처음에는 마른 토양에 물을 공급하거나 침체 지역에 돈을 지원하듯 엘도파를 ‘적정’하는 것이 가능하다. 그러나 조만간에 합병증이 발생한다. 합병증이 발생하는 것은 애초에 복잡한 문제가 있었기 때문이다(그것은 단지 한 가지 물질의 고갈이나 감소의 문제가 아니라 뇌조직 자체에 결함 혹은 장애가 있는 것이며, 그 밖의 부위에도 문제가 있을 수 있다). (386, 병은 제거 가능한 단일 원인이 아닌 여러 구조적 문제가 겹쳐지며 나타난다고도 볼 수 있다.)

-투약량은 늘리거나 줄이는 것뿐, 다른 일은 할 수 없다(투약 간격을 조정하는 것도 여기에 포함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반면에 뇌 반응과 행동은 여러 차원으로 전개되기 때문에 1차원적인 언어로는 기술하거나 산정하기 어렵다. 환자의 반응을 투약량으로 ‘적정’할 수 있다고 주장하거나 가정하는 것은 뇌가 일종의 척도이고 그 엄청난 복잡성을 축소시킬 수 있다고 믿는 꼴이다.“ 생물 조직은 생리학 및 화학 조직으로 축소할 수 없다”는 사실을 니덤은 우리에게 상기시킨다. “왜냐면 어떤 것으로 축소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기 때문이다.” (394)

-질병disease의 중심 개념이 편안하지 않음dis-ease인만큼 치료의 중심 개념은 편안함이다. 환자에게 편안함을 더해주는 모든 것이 잠재적 병리 요소를 감소시키며 최선으로 적응하게끔 돕는다. (409, 나를 만나는 의사 선생님들이 이런 생각을 늘 해주시면 감사하겠다.)

-그들에게 현실이란 현실 속 사람들에 의해 주어지며, 사람이 존재하지 않는 부재에 의해 그들의 현실은 박탈당한다. 우리의 현실감, 신뢰감, 안정감은 절대적으로 인간관계에 의존한다. 견고한 관계는 재난에서 우리를 구해낼 생명줄이요, 망망한 고해에 뜬 북극성이자 나침반이다. (…) 중요한 점은 세계에 존재하는 것을 집에 있는 듯 편안하게 느끼는 것, 세계라는 집에 진짜 자신의 자리가 있음을 마음속 깊이 느끼는 것이다. (414, home sweet home)

-나는 지옥이란 그 누구도 살아서 돌아오지 못하는 곳이라고 생각하곤 했다. 그러나 나의 환자들은 돌아왔다. 돌아온 이들에게서는 그 경험의 자국이 영영 지워지지 않는다. 그들은 그 궁극의 심연을 겪었으며 영원히 잊지 못한다. 그런데도 그 경험이 그들을 깊이 있는 사람으로 만들어 줄 뿐만 아니라, 어린아이처럼 천진하고 환한 사람으로 만들어주었다. 뇌염후증후군의 심연으로 떨어져 본 적이 없는, 자기만의 심연으로 떨어져본 적이 없는 사람이라면 이해하지 못할 일이다. (4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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