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0108 임솔아.
맨 마지막 소설 ‘눈과 사람과 눈사람’을 제일 먼저 읽었다. 신년이라서 어울릴까 했는데 배경이 신년이긴 했다. 눈이 쌓인 호숫가에 모인 여성들, 여섯이었다가 넷만 모였지만 멀리 하나까지 다섯이 계속 이어지려 애쓰고 있었다. 연대하다 싸우다 다시 자신 없이 희망을 끌어올리려 분투하는 사람들 이야기였다. 오래 전 읽은 윤이형의 ‘작은마음동호회’와 ‘붕대감기’와 비슷한 느낌이었는데 바로 윤이형의 발문이 이어졌다. 고통으로 가득찬 소설집이면 아마 나중으로 미뤄뒀을 것 같다. 고통 서사 중독자이긴 했는데, 오 지금은 아닌 것 같아… 진화에서 고통이 기여한 바가 있어서 고통 받고 고통에 민감한 존재들이 여태 남아 있고, 또다른 고통 받는 자손들을 이어갔겠지만… 꺼져 진화… 꺼져라 고통… 이렇게 남의-그것도 매우 잘 쓰던 소설가의- 서평을 먼저 읽고 소설들 하나씩 꺼내 읽는 건데 이게 나은 선택이었는지 아닌지는 더 읽어봐야 알겠다. 다 읽고 나니 서평을 읽는 것은 생각보다 독서에 큰 영향을 안 준다. 어차피 직접 읽기 전엔 아무 것도 모른다. 다행이다. 휴.
‘줄 게 있어’ 달라고 한 적 없는데. 왜.
‘병원’은 카프카 생각난다고 하면 작가가 좋아할지 화낼지 모르겠다. 윤동주의 병원도 나왔다. 이전에 변신의 잠자의 방 건너편 병원에 대해 상상해 쓴 소설을 읽었던 것 같다. 내가 겪은 병원은 저것보다는 나은데 저런 병원도 어느 세상에는 있겠지. 저런 삶도 가능하겠지. 곧 불가능하겠지. 아, 상해진단서를 끊을지 말지 그걸 끊으면 건강보험이 안 된다고 해서 결국 안 끊었던 것 같은, 입원한 나와 엄마를 한심하게 다루던 의료진들이 여럿 있던 병원이 그나마 저기랑 가깝겠다. 거기에는 피를 흘리는 외국인 노동자 같은 사람이 기다리고 있었다.
오래전에는 책을 다 읽도록 뭔가를 쓰거나 밑줄을 긋거나 하지 않았었다. 다 읽고 나서 다시 뒤적이며 건질 만했던 문장이 생각나면 옮기고, 아니면 말고, 했다. 지금은 뭔가 집중력이 무너졌는가, 책한테 딴지를 걸고 싶은가, 대화를 하고 싶은가, 인터랙티브는 아니고 오도방정을 떨며 아무말잔치를 하려고 책읽기는 뒷전인 것 같았다. 이제 한동안은 책 다 읽을 때까지 뭘 찌그리지 말아야지. 옮겨적지 말아야지. 이 책도 거의 절반을 봤지만 남은 동안만이라도 그래야지. 하는 주절이를 마지막으로 적는다. 에효. 후지다.
‘다시 하자고’ 피아 구분 못하다가 분리되는 홀가분함
‘추앙’ 사람 같지도 않은 새끼들 다 죽었으면. 이라고 쓰는데 갑자기 눈 뒤쪽으로 뭐가 위아래 훝고 지나갔다. 비문증은 반대쪽 눈인데. 너무 성질 내지 말아야지.
‘뻔한 세상의 아주 평범한 말투’ 나는 빌러비드랑 빌리버드가 늘 헷갈린다. 병든 사람이 곁의 사람을 병든 사람처럼 만드는 되먹임을 나는 많이 겪어 봤다고 하기에는 또 다른 모습이라 뭔가 징글징글한데도 애증인지 애정인지 수프 먹고 싶었다.
‘신체 적출물’ 손톱이나 머리카락 말고 잃어본 적 없어서 다행이다.
‘선샤인 살레’ 열대섬 가 본 기억이 나고 다시 가고 싶지만 비행기를 오래 못 타서 이젠 해외 못 갈 것 같다. 이름 잃고 낙원 같은 곳에 이름 없는 사람들과 아주 잠시만 교감하다 일회용 감정 관계 묻고 사라지는 삶 그거 아주 워너비 아닌가 그래서 소설 속에만 있다.
오, 앞에서부터 읽은 소설들은 다 인상적이고 좋았다. 순서대로 읽을 것을 괜히 표제작부터 읽었다. 이거는 매운맛 먹고 샤벳 같은 걸로 도닥거리는 순서였는데 나는 눈부터 실컷 퍼먹고 야 싱겁냐 했다. 그리고 앞으로는 역시 아까 다짐한 것처럼 책읽기에 집중하고 괜히 옆에서 추임새 넣는 메모 같은 거 좀 자제해야 겠다. 그편이 더 나은 독서인 걸 오랜만에 알았다. 한국 소설 읽기도 오랜만이다. 아주 오랜만인데 생각보다 좋았다.
+밑줄 긋기
-연대에도 자격이 있겠지요. 우리에겐 그 자격이 없는지도 모른다고 생각해봤어요. 나래씨는 성폭력 피해자였고 앞장서서 싸워왔어요. 나래씨는 피해자들의 싸움에 우리가 무임승차를 하고 있다고 받아들인 것 같아요. 고통받아본 적도 없으면서 남의 고통마저 약탈해서 정의로운 척하는 족속을 보듯이 우리를 본 것 같아요. 우리가 정말 그런 사람들일까요?(183, ’눈과 사람과 눈사람‘ 중. 당사자성. 고통이 짙으면 비뚤어지기도 한다.)
-단단해지고 싶어서 자기의 말랑말랑한 부분을 떼어내 냉동실에 넣어 얼리는 사람은 단단한 사람일까 말랑말랑한 사람일까. (203, 윤이형의 발문 중)
-그들은 자신이 아무것도 아니라고 생각하지 않지만 사회는 그들이 아무것도 아니며 따라서 아무런 가치도 없다고 생각한다. (210, 흑흑)
-“그렇게 슬픔을 이겨나가는 거야.”
이겨나가야 할 정도의 슬픔이 나에게는 없었다. (17, ‘줄 게 있어’ 중. 슬플 거라고 단정하지 마. 슬픔을 강요하지 마. 너의 죄책감을 내 죄책감 스위치 켜는데 쓰지 마.)
-“있고 싶어요.”
“그래, 잊어야지.” (33, 말 되게 못 알아 처먹는 인간들. 사람을 말려죽이는 방법은 다양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