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0101 미시마 유키오.
연말연초에 무작위로 골라 읽은 책으로 한 해의 길흉을 점친다면, 올해 나의 점괘는 ‘대흉’아니냐. 애초에 아직 한 번 읽지 않았던 미시마 유키오를 겁없이 (사실 조금 겁나지만 까짓것 하고) 골랐던 내 탓이다. 아닌가, 이렇게 억지 해석할 수도 있다. 오래되고 낡은 관습은 죽고, 새로운 시대가 뱃속처럼 활짝-열리기는 개뿔. 여전히 나는 납작 엎드려 숨어지낼 생각이다.
그렇게 안정과 정체에 굴복했다고 죽어야 한다면, 무엇에 항의하고 저항해야 할지 모르겠다. ‘누구나 알겠지만, 영광의 맛은 쓰다’(187)며 단숨에 마시는 결말은, 폼은 나지만 크게 납득되지는 않았다. 가라앉은 염의 맛도 쓰다. 고여서 썩는 물도 쓰다고. 영광, 죽음, 여자 삼위일체에 여자를 엮은 것은 잘못이다. 이 여자 때문에 죽겠구나, 하면서 자꾸 밑밥 뿌릴 때도 죽긴 죽겠지만 헛소리네, 남자는 남자 때문에 죽는 경우가 더 많다. 구시대를 신시대가 죽인다는 비유처럼 해석하기에도 멋적다. 무겁고 일찍 죽을 생각 없는 한 덩어리의 구세대가 신세대의 미래를 알밤 파 먹듯 먹어치우고 있다. 나는 파먹히면서 파먹는 쪽…
끝까지 치장하면서 구렁텅이로 슬슬 밀어넣는게 되게 쫄리는 읽기였지만, ’오후의 예항‘의 툭 끊어버리는 결말은 오, 이상하게 상쾌했다. 예상만 하고 보여주지는 않을게, 그게 더 무섭지만 아 좀 치네, 메스로 난도질도 세공도 좀 하네, 그치만 그건 내 취향은 아닌 것 같고, 돼지 도살장에 금가루 솔솔 뿌리고 앉았는 변태의 책은 읽다 자꾸 딴전을 피우게 했다. 예항의 뜻을 다 읽고 찾아보니, ‘다른 선박이나 물건을 끌고 하는 항해‘라고 한다. 이야. 사공이 어린데다 미쳤고 많으니 배는 산으로 갔다.
두 번째 소설 ‘짐승들의 유희’도 시작부터 바닷가 마을이 배경이었다. 앞의 소설보다 시작을 읽는 게 덜 불편한 기분이었는데, 아무래도 미성년의 초점 화자가 등장하는 글들을 언제부턴가 불편하게 읽게 되었기 때문일 것이다. 그게 내 늙음의 시작이었다. 늙은이가 어린이를 흉내내는 말은 듣기 싫어졌다. 그치만 나는 점점 늙은 어린이가 되고 있으니 어쩌지. 이제 많은 소설 속 인물들이 다들 나보다 젊다.
앞서 읽은 소설보다 먼저 쓴 것이라 그런가, 내게는 좀 더 설익게 느껴졌다. 영화화 되기도 했다는데 내가 정서가 메마른 건지, 뭔가 구성하려고 시간 왔다갔다 장면 왔다갔다 하는데 정신 없고 지루하게 만들어놨네 싶었다. 원래 소설 읽을 때 인물에 잘 이입하지 않는 편이긴 하지만, 이 소설이야말로 어느 사람에게도 공감하거나 이입하고 싶은 마음이 안 들었다. 초점 화자는 고지인데, 이 인물상이 너무 알쏭달쏭했다. 배경음악은 지드래곤의 보나마나 같은 걸 틀어 놓으면 될까. 그 노래보다도 재미없었다. 앞 소설이 만족스러워 그런지, 이 소설은 절반 쯤 읽어도 별일이 없어 제목이 낚시 같이 느껴져서 그런지, 다음에 올 사건이 기대되는 게 없어서 앞 소설과는 반대의 느낌으로 더디게 읽었다. 결말의 후일담처럼 기자를 등장시켜서 뻔한 묘사로 대신 이야기 전하는 형식은 진부했다. 제목만 엄청 유혹적이지 서사는 통속적이고 재미가 없었다. 재미없다고 몇 번을 말하냐.
아이가 안 나오는 소설이라고 안도했는데 다 읽고 보니 고지는 둘의 아이 같은 역할이었다. 끝까지 읽어도 고지란 인물, 고아 설정에다 가짜 엄마 아빠 싸움에 휘둘리는 것처럼 그린 게 작가 이자식...인간이란 존재를 우습게 보네...우스운 건 맞지만 하여간에…이 소설에서도 새끼 고양이가 나오지만 죽지 않고, 아무도 죽지 않을까 과연, 했는데 과연, 사람은 언젠가 누구나 죽는다. 트라이어드의 나란한 세 묘.
이렇게 처음 만나는 미시마 유키오는 괴이하고 찌질하면서도 섬세한 글쟁이는 맞는 것 같고, 내 취향을 건드리지는 못한 거 같고, 금각사가 하도 유명하니까 가장 근처에 꽂혀 있긴 한데 읽기가 한참 미뤄질 것 같다. 새해 첫날부터 피곤한 독서였다. 모든 피곤한 인생은 자초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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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분선 철도 위를 날아다니는 참새 몇 마리가, 동그랗게 둘러앉은 그들 바로 옆까지 찾아왔다. 누구 못지않은 무자비함을 자랑스러워했기 때문에 참새에게 밥풀 한 톨 나누어주는 소년이 없었다. (61, 이놈들이 나중에 무슨 무서운 짓을 할지 두려워지는 무자비함. 그러고는 열페이지도 지나지 않아 정말로 이놈들은 고양이 살육 및 해체를 한다. 이놈들이 아니지, 미시마 유키오가 한 짓이지. 자기가 고양이가 된 놈)
-“편지, 많이 보내줘서 고마웠어. 백 번씩 읽었다고.”(106, 진짜로 백 번 읽었을 것 같다.)
-두 사람이 항구가 내려다보이는 철책에 도착했을 때는 6시를 한참 지난 시간이었다. 금성은 남쪽으로 기울었고, 빌딩이나 창고 앞에 켜진 불빛이나 앞바다의 빨간 장등의 깜박임은 여전히 명확했으며, 마린 타워 선회등의 빨강과 초록 불빛의 띠가 공원의 어둠을 더욱 확실히 쓸어내고 있었으나, 주택가의 윤곽은 차츰 선명해지면서 동쪽 하늘에는 붉은 보랏빛이 퍼지기 시작했다.
그들은 관목의 작은 나뭇가지를 흔드는 차가운 아침 바람결에 멀리서 작게, 비장하고 단속적으로 울려오는 올해의 첫 닭 울음소리를 들었다.
“올해는 복된 한 해가 되기를.”
후사코는 소리 내어 기도했다. 추워서 서로 뺨을 바싹 대고 있다가 류지는 바로 옆에 있는 여자의 입술에 입을 맞추며 이렇게 말했다.
“복된 한 해가 되고 말고. 이미 기정사실이야.”
(…)
저목장에서 훨씬 오른쪽, 옅은 먹색 하늘의 중간쯤에 어정쩡하게 붉은 윤곽이 나타난 것은 그로부터 얼마 지나지 않아서였다. 순식간에 태양은 불쑥 주홍빛 원이 되었지만, 아직 그 빛은 맨눈으로 직시할 수 있을 만큼 약해서 붉은 보름달처럼 보였다.
“복된 한 해가 될 것 같아요. 둘이서 이렇게 첫 일출을 볼 수 있으니. 게다가 내가 태어나서 처음 보는 일출이에요.”
그렇게 말하는 후사코의 목소리는 추위로 찌그러져 있었다.
(118-119, 121, 새해 아침에 첫 일출을 글로 맞이하는 나는 저렇게 간절하게 바라고 단언하며 평온한 아침을 누리는 사람들을 미친 작가가 어떻게 찢어발길지 불안과 긴장감으로 바라보는 중...병이야)
-올해 5월이 되면 그도 서른네 살이다. 너무 오래 품은 몽상은 이제 버려야 한다. 이 세상에 그를 위해 따로 준비해놓은 영광은 없다는 사실을 받아들여야 한다. 창고의 희미한 불빛은 청회색으로 어렴풋이 떠오르는 아침의 첫 햇살을 거부하고 깨어나지 않으려 버티고 있지만, 류지는 이제 눈을 떠야 한다. (119, 마도로스는 평범한 삶을 이제 막 결심하는데, 그게 그토록 어려운 것인 걸 난 왜 알지. 궁금해서 찾아보니 류지는 사관인데 이쪽이 계급은 더 높고 마도로스는 사병에 가깝다고 한다.)
-그는 쓴맛 단맛을 다 보아서 더는 모르는 맛이 하나도 남아 있지 않다고 확신했다. 내 그럴 줄 알았지! 영광은 어디에도 없었다. 전 세계 어느 곳에서도. 북반구에도 남반구에도. 저 뱃사람들의 동경의 별, 남십자성 하늘 아래에도! (120, 그렇구나…다른 어디에도 없구나...)
-아버지라는 것은 진실을 은폐하는 기관이고, 아이에게 거짓말을 꾸며대는 기관이며, 게다가 가장 나쁜 것은 자신이 진실을 대표한다고 남몰래 믿고 있는 거야.
아버지는 이 세상의 파리 같은 놈이야. 그놈들은 가만히 노리고 있다가 우리의 부패한 데 들러붙어. 그놈들은 우리들의 어머니와 섹스한 것을 온 세상에 퍼뜨리고 다니는 더러운 파리야. 우리의 절대 자유와 절대 능력을 부패시키는 일이라면, 그놈들은 무슨 일이든 하지. 그놈들이 세운 불결한 마을을 지키려고. (145, 대장네 아버지는 저 놈을 뒤지게 패면서 키웠어야 했다… 다정하게 키워도 소용 없네. 20년 전 쯤이면 나도 물개 박수 쳤을 수 있겠어서 섬뜩… )
-“때리는 게 제일 나쁜 건 아니야.” 대장은 붉고 얇은 입술을 있는 힘껏 올리며 말했다. “더 나쁜 것은 얼마든지 있어. 너는 이해 못 해. 너는 행복한 놈이야. 아버지가 죽어 없어졌으니 너는 선택받은 인간이 된 거야. 그러나 너도 이 세상의 악에 대해서는 알아야 해. 그러지 않으면 언제까지고 힘이 붙질 않아.” (146, 바로 위의 내 말에 응답하듯 대장이 말했다. 그러고나서 이런저런 아버지, 아버지 없음이 이어진다.)
-이것은 어른들이 품은 꿈을 표현한 것이고, 동시에 그들이 이룰 수 없는 꿈을 표현한 것이기도 해. 어른들이 자신들을 꼼짝달싹 못 하게 구속하고, 또 우리는 아무것도 할 수 없으리라 방심해준 덕에 이곳에서만 살짝 푸른 하늘 한 조각, 절대적인 자유 한 조각을 볼 수 있게 해줬지. 말하자면 그건 어른들이 만들어놓은 동화지만 상당히 위험한 동화를 만든 거지. 어쨌든 좋잖아. 어쩄든 우리는 아직 귀엽고 여리고 죄를 모르는 어린애니까.
우리 중 다음 달에 14세가 되는 건 나와 1호와 3호지. 남은 셋도 3월이면 14세가 돼. 생각 좀 해 봐. 우리 모두 지금이 마지막 기회야. (172, 41세의 나는 14세 미만의 어린이들이 이 구절을 몰랐으면 좋겠지만, 비슷한 나이의 어린이들 몇몇이 폭행 및 갈취 사주를 받아 야간특수강도짓을 저지르고 지금 깜빵에 가 있다. 그리고 난 이 장면을 미리 예상한 나새끼가 조금 싫다. 앙팡 떼리블...아, 그리고 대장이란 놈은 사드 작품에 심심하면 나오는 무신론적 학대자의 근현대 아류 소인판이라는 생각이 강하게 든다. 너 임마 미시마 유키오 너 임마 지옥에서 사드랑 쎄쎄쎄나 해라)
-세상은 비뚤어질 처지의 인간이 비뚤어지지 않은 것을 과하게 칭찬했다. 세상 사람들은 부자연스러운 인간의 자연스러운 태도에 매혹된다. (222, 사람들은 고통받은 사람이 보이는 의외의 담담함에 대견해한다.)
-몸에 들러붙는 타인의 어둡고 혼탁한 세계를 공공연히 깨뜨려 없애는 것이 젊음의 특권이라는데, 누가 감히 그것을 방해할 수 있을까? (238)
-그때 처음으로 깨달았다. ‘나는 그저 육체일 뿐이구나. 개와 다를 바 없는 고깃덩어리구나.’ 조금은 ‘운명’에서 치유된 것 같은 기분이었다. (297, 섹스한 번 하고 너무 거창하고 하찮아진다. 그래서 더 마음에 안드는 고지라는 놈)
-고지는 시골의 이런 진액처럼 찐득거리는 밤이 두려웠다. 낮에는 모든 것이 잠이 든 것 같다가 밤이 되면 한꺼번에 생생하게 깨어난다. 도회지의 밤보다 훨씬 욕망을 자극하고, 밤 그 자체가 하나의 거대하고 혹독하고 뜨거운 피가 뚝뚝 떨어지는 고깃덩어리 같았다. (313, 고기 좋아하는 구나…찐득거리는 밤. 내가 잘 모르거나 잊어버린 것)
장기하와 얼굴들-새해복
https://youtu.be/QoLGyujSc2k
지드래곤-보나마나
https://youtu.be/y7wlmJ0olqQ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