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1207 최현숙 외.
내 부모도 장사를 했었다. 시장 안은 아니고, 시장 바깥에서 멀지 않은 사거리, 터미널로 가는 길에 있는 가건물이었다. 아빠가 귀금속 세공사 일을 했었어서 금은방을 했다. 빚을 내어 보증금, 인테리어비, 진열할 물건들 떼어오는 값으로 써서, 원래부터 겁이 많고 불안도가 높은 아빠는 매일 가게를 접자고 엄마를 들볶고 결국에는 조현병까지 걸렸다. 아빠가 아픈 동안 엄마가 가게를 혼자 운영했다. 작지만 고가의 물건이라 도난, 강도, 부도수표 지불, 반지계 파토, 외상값 미회수 등 이런저런 일이 많았다. 그렇지만 최고의 재앙은 정신질환 호전 이후에도 하루종일 나가 술먹고 놀다 들어와 깽판치고, 세콤(도난방지설비)이 잘 안 된다고(꽐라되서 자꾸 문잠그는 타이밍을 놓침) 셔터 문을 마구 발로 차고 엄마를 때리고 언어폭력을 행사하던 아빠였다.
엄마는 자기 성격과 맞지 않던 장사를 하느라 많이 힘들었다고 했다. 점심 도시락을 싸다가 나르고, 아빠가 안 오면 혼자 문을 닫고, 술취한 채 문을 닫겠답시고 혼자 발광을 떠는 아빠 탓에 주변 사람들에게 창피하고. 아빠는 손님과 자주 싸우고, 싸게 팔아도, 비싸게 불러 못 팔아도 난리를 떨었지만, 엄마는 물건을 사지도 않을 거면서 가게 쇼파에 들러붙어 박카스를 얻어 먹거나 커피를 타달라고 하는 아빠 지인들, 주변 상인들에게 마음에도 없는 친절, 요새 말로 감정노동을 했다. 결국에는 그 사람들이 잠재적인 손님이었으니. 1994년에 가게를 열어서 2007년 아빠를 떠나 서울로 올 때까지 13년 간 30대 후반에서 50 직전까지 장사하는 엄마를 지켜봤다. 그런 탓인지 내가 장사할 일은 꿈도 안 꿔 봤고, 실제로 형태가 있는 재화를 파는 일은 안 해 봤다. 대신 용역? 서비스?를 팔고 있읍니다...
대부분 50대 언저리인 망원시장의 여성 상인들의 생애를 구술한 것을 구술생애사 작가 최현숙의 제자 작가들이 인터뷰해서 정리한 책이었다. 그래서 글마다 완성도나 가독성, 반복되는 말이나 내용 여부가 편차가 좀 있었다. 그리고 구어체로 쓰여 있으면 잘 읽힐까 했는데, 나새끼 남의 말 경청 못하는, 사회 지능 부족… 오래 더디게 읽었다. 읽던 거 먼저 읽자 하고 새로운 책 펼칠 엄두를 못 냈더니 독서 자체가 더뎠다. 힘든 한 주이기도 했다.
2018년의 여성 상인들은 온갖 장시간 노동에 시달리지만, 그래도 먹고 살 정도는 되고, 스스로 쌓아올린 지금의 모습에 자부심을 느끼는 듯했다. 삶에 대한, 자기가 몸담은 시장이라는 장소에 대한 긍정과 애정도 공통으로 엿보였다. 그렇지만 삐뚤이 나놈은 장사 잘 안 되고 힘든 상인들은 인터뷰에 응하려 들지도 않았겠지… 장사 못해 먹겠다 싶어도 이걸로 책이 나가고 내 얼굴과 이름이 나간다 생각하면 어느 정도 미화되는 부분도 있었겠지… 이 정도면 고통 서사 중독자야… 행복하고 편하고 좋다고 하는 걸 보면 못 믿거나 전체 구성원의 일부 표집이라고 생각하고 만다. 어딜가도 불행을 조금씩 남겨 놓고 사는 놈의 눈은 그렇다.
내가 사는 관악구 지역 상인들의 이야기였으면 조금 더 이입해 봤을 듯하다. 반대로 망원동 근처에 살거나 인근을 많이 돌아다녀 지리를 아는 사람들은 책을 읽는 동안 시장의 모습이 눈에 선하고, 왠지 시장 한 번 더 가서 상인 분들 여전히 잘 지내시나 궁금해서 아케이드 안 이곳저곳을 기웃대기고 뭘 사기도 할 것 같다.
책으로나마 다른 종류의 노동을 하는 사람들 이야기를 읽는다. ‘뭐든 다 배달합니다’, ‘까대기’, ‘편의점 인간’(여긴 좀 많이 이상한 놈이 나오긴 하지만), ‘골목의 약탈자들’(여긴 주로 자영업자들 등쳐먹는 놈들이 많이 나온다) 같은 데서도, 그외 작가, 분식점, 부동산, 판매원, 여러 소설과 에세이에서 다른 삶을 엿본다. 과학자들이 쓴 책에서는 과학자의 삶을 봤구만… 그러고보니 선생 이야기는 많이 읽지 못했던 것 같다. 의도적으로 교육에세이 같은 거 피해서 그럴 수도 있고… 나도 학교 생활 적당히 픽션으로 재구성해서 뭘 쓸 수 있지 않겠나, 하는 생각을 잠시 한 적도 있었다. 그렇지만 지금은 다 귀찮다… 어른들의 요구는 칼 같이 자르는데 아이들 앞에서 약자가 되는 나는 아무래도 직업을 잘못 골랐다.(친구는 나에게 최악의 상대는 악한 약자라고 했다. 말도 참 잘 골라.) 별 수 있냐 그냥 살아야지… 시장 언니들처럼 긍정 연대 협력 투쟁하면서 살 수 있을까… 됐다. 너무 애쓰지 말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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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에 마포구에서 여성건강 사업 한다고 설문지를 돌리는데 질문에 ‘당신은 아픈데도 참고 일한 적이 있습니까?’하는데 나 거기서 볼펜을 멈추고 있었잖아요. 이걸 내가 어떻게 써야 되나. 나는 늘 아프거든요. 365일 다 아파요. (91, 노동의 고통. 육체노동이나 정신노동이나 몸이고 마음이고 다 아프다.)
-생각해보면 나는 지금이 최고로 편해. 내가 뭘 안 했다고 뭐라고 하는 사람도 없고. (…) 40대에는 “내가 장사는 왜 하나. 여기서 뭐하는 건가?”그런 생각으로 한참 힘든 적이 있었어. 애들이 다 크고 집안이 편안해지니까, ‘아, 지금이 참 좋다’ 이런 생각을 많이 해. (123, 40대에게 괴로워도 존버하면 50대엔 편해, 하는 느낌. 지금이 좋긴 한데 편하지 않은 저는 버틸 수 있을까요?)
-한마디로 그녀는 현명하다. 이제와서 그녀의 삶이 불이익을 받았고 계급의 불평등이었다고 우긴들 무슨 소용일가. 행복했다 생각하는 긍정의 힘 앞에 계급적 논리가 무슨 소용일까. (153, 그러니까 종교든 정치든 우상이든 자부심이든 뭔가를 사랑하며 행복해하는 어르신들의 산통을 깨는 대신, 투쟁은 아직은 불행한 젊은 사람들이 열심히 하자..곧 만41이 될 난 늙은이인가 젊은이인가 아리까리하다만. 투쟁 안 하려고 늙은 척하는 듯)
-우울은 좌절에서 온다. 내가 충분히 나로서 살지 못할 때, 세상이 내게 나아닌 다른 사람의 삶을 요구하는데, 이를 거부하지 못할 때 우리는 자신을 세계로부터 닫아 건다. (271, 가사에 갇혀 있을 때 우울증에 시달리던 한 상인은 시장 일을 시작하고 시장 사람들과 나이트클럽에 놀러 다니면서 우울감이 가시고 성격도 변했다. 일을 하는 사람은 안 해도 먹고 살 수 있다면 내패대기 치고 싶고, 이런저런 이유로 일을 할 수 없는 사람은 일하기를 꿈꾼다. 해도 안 해도 우울과 좌절은 온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