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라딘서재

참을 수 없는
  • 셀붕이의 도
  • 이미상
  • 11,700원 (10%650)
  • 2025-10-22
  • : 1,425
-20251104 이미상.

제목만 보고는 펨붕이 뭐 이런 남초 사이트의 호칭을 떠올렸는데 비슷했다. 인셀의 셀이란다. 선언문 갤러리 라는 가상의 게시판 이용자들끼리 오손도손 선언문 올리고 살았고 중수도 그 중 하나였다. 였는데, 앞뒤 안 재고 세게 질러버린 셀프로 뒤지고 그러고 남들도 죽여, 뭐 그런 말도 개도 새도 안 되는 글때문에 중수는 신상 다 털리고 도망자처럼 활녀 할머니댁으로 숨는다.

제목의 도는 길이기도 하겠지만 칼이기도 하다. 중수는 문구멍으로 자기 글의 영향을 받아 스스로의 몸을 칼로 난자하는 어린이를 보고 말았다. 아마도 PTSD인지 질질 짠다. 그래서 그렇게 누구도 해치지 않는 예리한 면도날 동호회에서 위안을 받는 것 같다.

미히는 유학 갔다 예술가병만 얻어 돌아온 중수의 사촌 누나인데, 이전 세대의 아픔과 고통을 긁어모아 소설 써서 대박난 작가들을 좇듯(그래서 전쟁같은 맛을 싫어했어) 아픈 할아버지에게 월남 파병 이야기 같은 거 해달라고 조르다가 의절당했다. 지난 주에 월남 다녀온 큰외삼촌이 돌아가셨다. 인생의 가장 큰 공이 파병가서 외화 벌어오고 보훈자가 된 젊었을 삼촌은 술만 먹으면 부모에게 주정을 하는 패륜아가 되어 중년과 노년을 보내고 할머니 떠나보내고 4년차에 별세하셨다. 엄마는 장지인 현충원 납골묘에 다녀오면서 “죽어서야 좋은 데 간 것 같아. 위치도 딱 정가운데 눈높이이고 현충원 경치는 어찌나 좋은지” 현충원을 공원 삼아 걸어 돌아다니던 수험생활 망해본 아이는 잘 알지요. 암.암.

활녀 할머니는 아파 죽어가는 친구를 떨궈버리려고, 쓸데없이 미리 온 죽음의 공포를 떨치려고 시도하지만 약 몇 알 술 몇 잔에 금세 가책을 느끼고 이산상봉의 드라마를 펼친다. 부모를 유기하는 자식이 미워 ‘디아스포라, 장송’ 소나무든 핏줄 아닌 간병인이든 남에게 돈을 쏟아 버리고 죽어버리는 노인 세대 이야기도 비극이긴 마찬가지였다. 신이 나서 알약 러시안룰렛 돌리던 정선생도 겉 보기엔 지극정성 환자를 돌보는듯했지만 어쩜 아무 약이나 먹고 너든 나든 죽어버렸으면, 하고 지쳐버린 간병인일지도 모르겠다.

작가의 말에서 스스로 영포티 하고 소개하는 작가와 유사한 세대는 소설에 안 나온다. 좀 더 어리고 희망 없거나, 좀 많이 늙고 역시 희망 없거나. 중년배에게는 그럼 희망이란 게 있을까. 내 얘기든 남 얘기든 쓴다고 다 써지나… 내 엄마도 할머니도 이야기 욕심은 많아서 자꾸 했던 옛날 이야기를 하고 또 하고 또 해서 난 맨날 지랄염병을 떨었는데, 그때 난 소재거리를 다 차냈던 것이냐? 관심과 사랑을 원하는 게 인간이라지만 어떤 부분은 그저 묻어두고 잊히고 싶은 것도 인간이다. 이번 소설도 정신 없었는데 재미있었으면 됐다. 이미상 작가의 소설은 아마도 조금 더 읽을 것 같다. 위픽 시리즈 1권 ‘파쇄’ 읽고 내내 하나도 안 보다가 이 책이 100권째라고 그 사이 많은 소설이 나왔구나 감개 무량한데 또 게으른 마음이라 시리즈를 다 파고들고 싶진 않다. 일단 단편 한 편에 한 권이라 가성비가 안 나와… 그래도 이미상 소설가라 내돈내산 했다오…아 그리고 피를 부르는 턱 쳐든 글쓰기보다는 역시 배꼽 냄새나 맡는 소소한 짓이 무해하겠다.

+밑줄 긋기
-“(…)어차피 곧 돌아가실 텐데. 죽은 후에 자신이 어떻게 쓰이든 알지 못할 텐데, 하고 생각한 적이 있어, 나는. 구정의 세뱃돈처럼 할아버지에게 비밀을 받아내려 한 적이 있어. 우리 할머니가 왜 입을 열지 않는 거죠?” 미히가 냉장고에 기대앉은 정 선생에게 물었다.
“누나 참 개 같은 년이다.” 중수가 말했다.
“내 말이 그 말이야.”미히가 말했다.(60-61, 인정할 건 인정하는 개 같은 년 미히)

-(…) 정 선생이, 신비롭고 지혜로운 자의 역할을 맡은 그가 손바닥으로 교자상을 탁 쳐서 알약들을 튕겨 올리곤 밝은 목소리로 말했다.
“오랜만에 알약 러시안룰렛을 합시다.”
그러곤 눈을 감고 상위의 약들을 마구 흩었다. 미히가 미국에서 가져온 알 수 없는 약들을 쏟아부어 총알을 추가했다. 먹지 않고 모아둔 약들 같다고 중수는 생각했다. (71, 이쯤 오니 내게도 정선생에 대한 호감이 생기고…)

-왕 큰 자아를 가진 사람이 소설을 쓰기도 하지만, 소설이 쓰는 사람에게 자기중심성을 강제,강화하기도 한다. 그래서 쓰는 일은 언제나 약간이라도 죄를 짓는 일이다 .어쨌든 여기까지가 포티의 삶이라면저 아래 영의 삶도 흐른다. (90, ‘내가 그것이오’ 하고 영포티 고백을 먼저 날리는 작가라서 나 혼자 몰래 내적 친밀감을 키우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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