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1020 프란츠 카프카.
1973년에 나온, 영문학 전공자가 번역했다는 문예출판사판 카프카 단편선은 아무래도 독일어를 직접 옮긴 책은 아닐 것 같다. 그런데 앞서 두 번 읽은 민음사 카프카 단편선에 비해 잘 읽혔다. 거기엔 미완의, 이미지만 잡힌 토막글들도 여럿 실려 있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런데 이번에 이 책에 실린 단편소설 형태를 갖춘 다섯 편(변신, 유형지에서, 단식광대, 시골의사, 판결)을 읽는데 대부분 새롭게 읽혔다. 마지막의 ‘판결’만 읽어 본 기억이 났다. 아빠가 나보고 나가 뒤지래...하고 인상 깊었던 것 같다. 작가가 법을 배워 그런가 소설이 죄 ‘판결‘, ’소송‘, ’성‘에서도 뭔 결정을 기다리다가 읽다보니 뚝 끊겨서 아...이거 미완이었구나 했던 기억만 난다. 그냥 카프카는 나에겐 졸린 작가...왜들 좋다하는지 모르던 작가였는데…‘소송’은 사 놓고 읽어야지...하다가 10년이 흘렀다.
아무튼 이번에는 졸지 않고 흥미롭게 소설을 읽었다. 악몽에 가까운 환상들은 나한테 소설이 뭔지 다시 생각해 보라고 했다.
나는 벌레가 되지 않을 것이다. 유형지에서 사형을 당하지도, 굶어 죽지도, 하녀를 불한당한테 맡겨 가며 왕진을 나가지도, 물에 빠져죽지도 않을 것이다. 그런데 어쩌면 벌레가 되었을 수도, 이상한 기계 속에서 살갗에 글씨가 천천히 새겨지며 12시간에 걸쳐 죽어갔을 수도, 하녀를 빼앗기고 왕진을 가거나 그 모욕당하는 하녀가 될 수도, 나가 죽으라는 부모의 말에 정말 물에 빠져 죽었을지도 모른다. 환상이라 말하지만 사실 다 있을 법한 이야기였다. 나는 내 폐의 건강을 더 살피고, 너무 결벽 떨지 않고, 글에서 구원을 찾지 않고, 역시나 호흡기에 안 좋으니까 나무를 보듬고 다듬는 일은 다음 생에 미루고, 쓰다가 힘겹다가 죽은 사람들이 남긴 글이나 보기로 했다. 만약 벌레가 되어서 사과가 등에 박히면 썩기 전에 쑥 뽑아내서 먹어버려야지. 그리고 창을 열어 놓으면 뚜벅뚜벅 기어나갈 것이다. 모처럼 만에 노예 가장에서 벗어날 참인데 왜 잠자는 누구 좋으라고 방에 처박혀 죽어줬을까… 길거리 헤매며 출근도 안 하고 쓰레기가 입맛에도 맞으니 아무거나 주워먹고 가족들따위 명절에나 보든가 말든가 하고 자유로울 수 있었는데, 벌레는 그런 생각에까지는 미치지 못해서인지 남 좋은 일만 한게 서글펐다. 아니 방밖에서도 점액 묻히며 기어다니는 나를 보고 그냥 지나치는 사람은 없겠지...경악하고 뭘 던지고 괴롭히고 경찰에나 세상에 이런일이나 동물농장에 신고할 것이다. 그럼 그럼에도불구하고 난 다 왕 물어 버리고 잡혀가든 죽든 할 거야. 기왕 태워버리기로 했으면 막스 브로트같은 못믿을 놈한테 원고 맡기지 않았을 거야.
+밑줄긋기
- 아무리 우둔한 자라도 최후에는 예지를 얻게 됩니다. 우선 눈에 나타납니다. 그리고 눈을 중심으로 해서 전신에 퍼지게 됩니다. 그것을 보면 누구나 써레 밑에 한번 누워보고 싶은 충동을 느끼게 됩니다. 이것으로 집행은 일단 끝나고 죄수가 글자를 해독하기 시작합니다. 죄수는 마치 무엇을 엿들으려는 듯이 입을 죽 내밀지요. 당신도 보신 바와 같이 글자를 해독하는 일은 그리 쉬운 일이 아닙니다. 그런 데 죄수는 자기 몸의 상처로 글자를 해독합니다.(‘유형지에서’ 중, 듣기만 해도 아프잖아 미친놈아)
-˝나에겐 맛있다고 생각되는 음식이 없습지요. 맛있는 음식이 있다면 까짓거 사람들의 인기 같은 것을 얻으려 할 것 없이 당신이나 다른 사람들처럼 실컷 배불리 먹고 살아왔을 겁니다.˝
이 말이 단식 광대의 입에서 나온 최후의 말이었다. 그러 나 흐려진 광대의 눈동자에는 단식을 계속할 수 있다는 자부심과 확신의 빛이 어려 있었다.(‘단식 광대’ 중. 이건 실제로 이렇게 말라죽는 여자애들이 많아서 에효에효 하고 읽혔다. 광대가 사랑하고 광대를 사랑하는 사람이 한 명이라도 있었다면 아마 같이 먹는 일을 즐겼을 수도 있어.)
-˝그러니까 너 이외에 무엇이 있는지 이만하면 알겠지. 지 금까지 너는 너밖에 몰랐다. 사실 너는 순진한 어린아이였지. 하지만 너는 더욱 엄밀한 의미에서 악마 같은 인간이었다는 것도 부정할 수 없다. 그러므로 나는 너에게 빠져 죽을 것을 선고한다!˝(‘판결’ 중. 생각보다 부모를 죽이는 소설은 오이디푸스 이후로 잘 안 나온다. 아류가 되기 싫었는지. 그런데 자식 잡아먹는 소설은 크로노스 이후로도 잘도 나오네. 예전의 내 친구는 크로노스가 자식 뜯어 먹는 그림을 보고 무서워서 울었다고 했다.)
-카프카는 공무원 생활을 하면서도 그것에 절대로 만족할 수 없었다. 특이한 일은 시간이 나면 카프카는 가구를 만드 는 일을 배우러 다녔다는 사실이다. 대패질한 나무 냄새, 톱 소리, 망치 소리에 그는 매혹당했다.(나도 목수가 되고 싶던 공무원인데. 소설은 못 쓰고 있지만요.)
-˝나는 한 마리의 까마귀입니다. 한 마리의 카프카 Kavka(까마귀)인 것입니다. 데인호프에 있는 석탄 상인이 한 마리 가지고 있더군요. 그 카프카는 나보다 더 잘 지내고 있습니다. 물론 날개를 잘리긴 했습니다만••••••. 내 경우에는 날개를 잘릴 필요조차 없습니다. 내 날개는 퇴화되어 있으니 까요. 나에게는 높이도 거리도 없습니다. 나는 어찌할 바를 몰라 인간들 사이를 뛰어다닐 뿐입니다. 인간들은 나를 미심 쩍은 듯 응시합니다. 아무튼 나는 위험한 새요, 도둑이요, 까마귀입니다. 하지만 반짝이는 까만 날개를 가져본 적은 없습니다.˝(나도 사마귀 겸 까마귀인데...시방 위험한 새였는데…)
+왁 저 표지 벌레였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