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1011 서효인.
나는 결국 파편화된 이미지나 느낌보다는 산문시를 좋아하고, 사실 산문을 좋아한다. 운문형 인간이 못된다. 못 알아 들으면서도 좋은 글도 있지만 대체로 못 알아들을 걸 써 놓은 걸 보면 짜증이 난다. 부족한 나한테도 똑똑한 쓴 이한테도 그렇다. 나는 흩어진 글을 좋아한다. 그런데 사실 운율도 좋아해. 나도 모르게 라임을 맞춰 글을 쓰고 말을 해. 그래도 작사가나 랩퍼나 시인은 될 생각도 못 했다. 말장난을 섞어 주접 떠는 독후배설가가 되었다. 책들은 작가들은 원통하겠지. 아이고 내가 저놈 간식 거리나 되려고 숱한 밤낮을 불태웠던가. 입가심조차 못되고 잊히고 읽히지 않는 글은 더 많으니까 그냥 만족하세요.
두 권의 소설 머릿 부분을 읽는 둥 마는 둥 하고 있었다. 소설을 좋아한다면서 나는 늘 소설 읽기를 망설인다. 그래서 과학책도 읽고 시집도 읽게 되었다. 이번에도 또 소설을 어떻게 빠져나갈지 기웃대다가 우연히 얇으니까 하고 가볍게 꺼냈는데, 시가 많지 않은 시집에다 마지막에는 시인의 에세이가 한 편 낀 구성이었다. 그리고 의외로 좋았다. 결이 맞다, 라는 너무 자주 쓴 말 말고 다른 뻔하지 않은 적확한 표현을 쓰고 싶다. 세대론 같은 거 믿지도 매이지도 않고 싶은데, 사실 내 또래 사람들 이야기가 제일 잘 들리고 또 그 사람들이랑 이야기도 가장 잘 통하는 느낌이다. 그런데 어느 나이부터는 내 또래를 새로 만나기도 쉽지 않게 되었다. 오래전 알던 이들도 다들 애키우고 돈벌러 다니느라 바쁜듯하다. 그래서 책으로라도 80년대와 90년대를 거쳐 21세기까지 아직 안 죽고 비슷한 걸 보고 비슷하게 자라 각자의 사정을 안고 아이를 키우거나 키우지 않고 자기 자신만이라도 키우고 있는 사람들의 글이 반가운 것 같다. 반가워만 하면 또 멍청이가 될 것 같이 마냥 가볍고 따뜻하고 그런 시들은 아니었다. 그런데 그래서 또 반가웠던 것 같다. 내가 모르는 죽음을 알리는 글이 존재하는 게 나는 반갑다.
+밑줄 긋기
-완전한 새로움이라는 건 가능한가
끝과 시작이라는 말
끝에서 다시 시작한다는 말
그해에 부모님이 이혼을 했다면
좋았을 텐데 나는 아무렇지도 않았을 텐데
언제나 핑계가 되는 일은 수치스럽다
수치심을 알게 해줘서 고맙습니다
감사의 인사를 올린다
처음이자
끝으로
새로운 시작 따위
등산로 입구 쓰레기통에 버렸다
불이 나면 안 되니까
정상에 닿기 전에 해가 떠버려서
사위가 서서히 밝아졌다
시작도 끝도 완전한 새로움도 다 헛소리라는
좋은 예시였다
감사합니다
이 모든 것에
효도하겠습니다
그런 말을 하면 칭찬받았다
토끼봉을 돌아 올라가는 코스에
아무렇게나 스틱을 휘두르는 사람들이 가득 찼는데
서로를 베는 걸까
동강 내는 걸까
두꺼운 겨울옷 안에 놓인 상흔을
내장이랑 같이 쏟아버리는 게
새해의 첫 계획인 걸까
왜 아직도 모르지
신정 아침처럼 반복되는 거짓과 진실을
나는 당신에게 화가 나 있다
이 화를 다스리지 못해 슬프다
이런 감정은
긑이 휘어진 칼처럼
완전한 새로움
을 방해할 뿐인데
화는 끝도
시작도 없는데
등산로의 살얼음이
우리를 비추었다
새로 뜬 해가 녹일 수 있는 게
없었다 살얼음 아래에는 진짜 얼음이
차이가 있는 불행을 모두 쓸어버리고
사람들은 그것을 실족사라 불렀지만
가족이라는 것은 언제나
지나치게 조심스러워
완전히 새로울 가능성이 줄어든다
12월31일과 1월 1일의 차이를
칼로 무를 자르듯
칼로 물을 베듯
산은 말해주지 않았다
그런 것은 없다고
말하는 것 같았지만
일찌거니 떠오른 해가 지껄이는
거짓말에 아버지와 나는 녹아서
목욕탕에 때를 벗기러
가는 것이다
감사합니다
이 모든 때에
새로이 내 몸에 나앉을 새로운 때에게도
시간에게도
끝도 시작도 없을 아무 때에
실족할까봐 벌벌 떨며
다음 계단에 난 칼 위에
발바닥을 내미는
(p.30-34, ‘등산로에서’ 전문. 효 가 이름에 들어가는 사촌 둘을 보며 나도 그랬더라면 아마도 개명했을 거야, 했다. 이 시는 왜 내 마음을 등산 지팡이로 계단의 칼로 베어내는지 모르겠는 건 아니고 잘 알겠어서 서글프다. 시간이 지나면 또 무뎌질까 했는데 아직 아닌 걸로. 다음 시 ‘선산에서’의 개를 매단 장면도 제삿날도 내가 아는 광경이라 아 이제 다 베끼기는 너무한 거 아냐 그냥 잘 읽기나 하자 했다. 하다가 결국 베끼고 싶어졌어. 으앙)
-천변에는 개를 거꾸로 매달고
때려서 죽여서 먹어서 행복한 인간들이
있었다 살코기가 타는 냄새
무안 일로에서 온 먼 친척 어르신을
당숙모라 불렀는데
골초였다
개의 살을 태우는 연기 하나와
담배 태우는 연기 여럿이 섞여 흘렀다
개 짖는 소리처럼
받아주지 않는 곳으로 천천히
당숙모는 선산 아래에 터를 닦은 집에서
제사를 지내는 데 평생을 썼다고 한다
그에게는 연기란 흔한 것이었다 우리는
인간의 연기를 하고 있었다 나는
그날 죽은 개의 제사를 지내고 싶다.
개를 먹는 것이 인간의 증명이 되고
제사를 지내는 게 인간의 증명이 되니까
인간 중의 상인간이 되는 것이다
그 개를 사랑했기 때문에
여러 인간을 증오했기 때문에
제사 후에는 다음 제시가 온다
죽음이 적체되어 산 자들의 당숙모를 괴롭히고
당숙모가 홀로 키우던 개를 공터에서
때려죽이고
앞마당에서 개의 삶을 삶는 사람들도
죽으면 또다시 제사를 지내겠지만
나는 거기에 절을 하지 않기로
결정했다
당숙모는 골초였고
어느 날 벌초를 미룬 선산에서 비롯된 불이 번져
개의 고향을 거개 태우고
개의 등허리를 몽둥이로 박살 내던 삼촌들도
질식사했다 고기 타는 냄새를
모르는 체하느라 킁킁거리던
개들이 당숙모의 곁을 빙글빙글 돈다
건강하고 날렵한 꼬리들이
연기 사이로 살랑거린다
당숙모가 연초를 태운다
산이 터져 나간다
새로 지을 고속도로가 지나갈 자리였다
보상금의 분배를 두고
한때 개를 나누어 먹던 많은 이들의
정과
의리와
명분이
연기보다 못하게 가벼이 흩어졌다
멀리 개가 짖는 소리
가까이 사람 싸우는 소리
당숙모는 그 후로 이십 년을 더 살았다고 한다
서해안고속도로 옆에서 골초로 살아남아
양껏
다
태워버렸다고 한다
(p.36-39, ‘선산에서‘ 전문. 이 시가 너무 신산해서 와 아는 맛이잖아, 하고 결국 베껴놨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