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1011 양안다.
십 년 만이라는 뮤즈의 인천 콘서트에는 3만 명이 넘는 사람들이 모였다. 지하철역에서 내려 주경기장으로 걸어가는 길에, 내가 실수를 저질렀음을 깨달았다. 평소라면 이렇게나 사람들이 많이 모여드는 곳에 일부러 돈까지 내고 찾아오지 않았을 거야. 20여년 전에 내가 이 음악가들을 좋아해서 해외직구로 시디를 사고, 노래를 따라 부르고, 미디로 음원을 만들고, 그럴 때 여기 모여든 애들 대부분은 태어나지도 않았다. 그렇게 생각하니 왠지 내가 잘못 찾아온 것 같았다. 이렇게나 많은 사람이 좋아하면 나까지 좋아할 필요는 없잖아? 그저 형님들도 나이가 드셨군요. 그런데도 20년 전 노래를 여전히 하고 계시네요. 여전하시네요. 전 여전하지 못합니다. 그런 걸 확인하러 온 걸까.
그러니까 나는 음악가도, 소설가도, 시인도, 무엇이든 내가 좋아하던 것들을 너무 많은 남들이 좋아하기 시작하면 난 이만 갈게, 하는 버릇이 있다. 반대로 남들이 사랑하던 사람은 내내 그 열광을 환호를 이해하지 못하다가, 한물 간 뭔가가 되면 뒤늦게 뒤적뒤적 남들 몰래 좋아해야지, 하는 버릇도 있는 것 같다.
여기에서 이런 이야기를 하고 있으면 양안다가 대중적 사랑을 받는 시인이 된 것처럼(사실 잘 모른다 얼마나 좋아하는 애들이 많은지는), 내가 좋다고 할 때는 별로 읽는 사람이 없던 것처럼 떠드는 것 같은데, 잘 모른다. 시인이 등단하고나서 십 년이 다 되어서 처음 읽었잖아. 사실 하나도 모른다. 이번 시집은 또 결이 많이 달라졌고, 유럽 잔혹 동화 같은 느낌도 났고, 더 어린아이의 어조 같은 기분도 들었는데 아 난…이제 진짜 그만 읽어야겠어 새로 나오는 건...하는 기분이 책의 절반도 읽지 않았을 때 들었다. 나는 이렇게 작가들과 작별인사를 아무도 모르게 저혼자 요란 뻑쩍지근하게 하는 경향이 있다.
+밑줄 긋기
-종교인은 인간이 만든 아름다움을 무시하잖아요. 오직 그들의 아버지의 아름다움만…...
(…)
보고 싶어.
난 지금은 예쁘기만 하고 멋이 없어.
여름만 잘 버티고 있어.
세상을 속이고 가을에 갈게.
(‘델피니움 꽃말’ 중. 검색해본 꽃말은 ˝당신은 왜 저를 미워하나요(원망), ˝제 마음을 헤아려 주세요˝, ˝당신을 행복하게 해 드릴게요˝, 경솔, 자유, 깊이 생각치 않고 자유롭게 살아가는 것이 숙명˝ 꽃말이란 무슨 꽃이든 어딜 가든 일치하지 않고 중구난방 나오는 대로 적어 놓은 기분이다. 누가 만들까 저런 꽃말은. 시인 되고 싶은데 못 된 꽃집주인? 원예농업인? 단체로 나를 때리러 오는 소리...손에는 모종삽 하나, 호미 하나씩 들고...)
-누군가가 불안을 내다 버리기 위해 인간을 만든 건 아닐까. 뒷골목에 쓰러져 있는 당신을 내가 주워 왔다. 불안을 전부 게워 내라고 두들겨 주었지. 도대체 나는 누가 내다 버린 불안이지? 있잖아요, 온 세상이 잠들었을 때에도 나는 어지러움을 느껴요. 나 빼고 모두가 춤을 추는 기분이고 나 혼자 쓰러지죠.
그렇다면 당신은 무용수가 버린 불안인가 봐.
(‘하늘은 다홍빛 불타는 시간에’ 중. 나한테 버리지 마 임마)
-모든 생물은 꿈을 꾼다. 다만 그것이 꿈인지 모를 뿐.
이만 갈까요?
선전용 전단지가 흩날리고 있었다. 영원한 저항은 없지. 그것은 단지 믿음.
거리를 이롭게 하는 것들의 목록-마드모아젤이라 부르지 않는 것. 낡은 만화책을 돌려 보는 것. 보고 또 보는 것. 악인들이 원하지 않는 말을 하는 것. “맞아. 우린 미친 마음의 주인이야!” 유행가, 유행가를 반복하지 않는 것.
사랑하기 때문에 상대를 구속한다니?
목동은 왜 양을 키우는 걸까. 약을 오남용하는 애들은 왜 꿈속을 헤매는 걸까. 가짜인 너. 가짜 마음을 가진 너.
부모님이 너에게 평범한 이름을 주신 거에 감사하렴. 죄를 지어도 누구도 모를 테니. 나는 거리의 마음을 팔지 않아. 너나 나가 죽으렴.
인쇄 활자.
2층 건물.
갓난아기가 발코니를 이해하지 못해서 기어간다. 어어, 하다가 달려가는 사람들. 간신히 아기를 받아 내는 사람들.
-눈을 감으면 가끔 당신이 보여요.
-그게 내 영혼이에요. 당신이 훔쳐 간.
한 침대에서 같이 깨어날 수도 있겠습니다.
나는요. 많은 걸 이해할 수 없는 내가 너무 좋아서요.
세상에는 미친 사람들이 많아서요. 그게
나였을까요?
나는 선한 마음이 어떻게 생성되는지 연구했어요.
그것은 악행의 반대편으로 걷는 것.
아름다움. 아름다움.
아니요. 나는 그렇지 않아요. (118-119, ‘캐노피 마음’ 전문. 내가 좋아하는/했던 시 속 단어들을 한 편에 꽉꽉 그런데 붐비지 않게 담아 놓은 시를 발견해서 아휴 이걸 만나려고 시집의 절반 이상을 참고 읽어야 했구나...전문 베끼고 싶은 시를 하나라도 발견해서 다행이야 싶었다. 이러면 헤어질 결심이 흔들린단 말이지.)
-화단에 죽은 길고양이를 묻어 주는 일.
우리보다 먼저 갔으니 천국에선 우리가 동생이겠구나. (161, ‘Fin’ 중)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