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라딘서재

참을 수 없는
  • 아웃 오브 아프리카
  • 카렌 블릭센
  • 14,220원 (10%790)
  • 2009-12-04
  • : 1,580
-20250918 카렌 블릭센.


5년 전에 이 책을 전자책으로 사게 된 것은 아마도 다른 책에서 언급된 걸 흥미롭게 느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책을 알게 해 준 그 책이 무엇인지 지금은 그게 더 궁금하다. 기억이 나지 않는다. 독후감을 뒤져도, 구매날짜를 조회해 그 무렵 읽은 책들을 봐도 단서가 없다. 어떤 것들은 끝내 알기를 포기해야 옳다.

아프리카도 그런 동네가 아닐까, 읽다보니 든 생각이다. 화자는 유럽에서 동아프리카 은공 지역으로 건너와 커피 플랜테이션을 하며 가축도 키우고 농장을 운영했다. 그런데 망했다. 부유해질 꿈을 안고 아프리카에 커피 원두 장사를 하려다가 망해 버린 유럽인 이야기는 어디선가 이미 들어본 이야기였다.

-“람보 좋아해요?”
말랐지만 건강해 보이는 아랍계 아프리카 사람이 하얀 흙벽 그늘에 웅크리고 앉아 내게 물었다. 날카로운 눈매에 성긴 콧수염 그리고 흰색 터번. 실베스터 스탤론의 팬과는 거리가 멀어 보였다.
“람보요?” 나는 잘못 들었나 싶어서 다시 물었다.
그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요, 람보.” 남자는 옷이 바닥에 끌리지 않도록 허리끈을 추슬렀다. “람보.” 그는 더 없이 무관심한 표정으로 되풀이했다. “파랑기(유럽인) 말이오.”
“정말 람보 팬이세요?” 나는 놀라 물었다. 사실 콜카타에서는 찰스 브론슨이 더 인기였다. 나는 좀더 확실히 하기 위해 이두박근에 힘을 주어 보였다. “이런 거 좋아해요?”
남자는 짜증나는 표정으로 나를 쳐다보더니 거듭 말했다.
“람보말이오, 람보! 가볼래요? 좋아해요?”
“안 가요. 안 좋아해요.” 나는 그만 자리를 떴다.
에티오피아의 수도 아디스아바바에서 스물 네 시간이나 걸리는 지루한 기차 여행 끝에 고지대에 있는 외딴 마을 하레르에 이제 막 도착한 순간이었다. (“커피견문록”(스튜어트 리 앨런), 24-25)
커피에 대한 책을 펼쳤을 때, 시작부터 람보 타령을 해서 뭐지...했는데 랭보였다. 랭보는 커피상인, 무기상인(미수) 이거저거 시도하다 쫄딱 망해 프랑스로 돌아가서 죽었다. 에티오피아에는 랭보가 말년에 살던 집이 있고, 그 작은, 관광객 별로 없는 마을의 명소인 모양이었다.

커피로 먹고 살려다 망한 유럽인이 이 둘 뿐은 아니었을 것이다. 그런데도 철없던 어느 시절에는 난 그냥 내 외모로 추정되는 고향 같은 에티오피아나 아님 중남미, 베트남 어드메 가서 커피 체리나 손으로 따고, 밤에는 노동에 절어 죽은 듯 자고, 먹여주면 먹고, 다른 고민은 안 하고, 그렇게 살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언제 한 번 택배 상하차나 농촌 김매기 품팔이나 갯벌 꼬막캐기 알바로 가서 뒤지게 고생을 해 봐야 정신을 차리지...

음사부, 하고 원주민들에게 불리는 농장 주인 화자는 동아프리카의 키쿠유족, 소말리족, 마사이족과 야생동물이 공존하는 (공존이라긴 좀 그런게 서로 경멸하고 가끔 쎄게 싸운다) 세계에서 원주민들에 대한 애정과 이해를 담은 눈과 글로 자신이 보고 듣고 겪은 이야기를 들려준다. 원주민에게 호의적이고 그들을 함께 사는 동지들 취급을 해주는 것 같은데, 그래도 그들을 소작인, 하인, 자신이 돌보고 가르침을 주고 치료해주고 물음에 답해줘야 하는 사람들로 바라보는 걸 보면, 농장의 주인, 고용주, 백인 지배자, 그리고 원래부터 자기들이 살던 땅인데도 많은 결정권을 가지지 못한 채 빼앗기고 체념하고 이리저리 옮겨다니는 원주민, 그 둘 사이의 권력 관계가 너무 명확해서 좀 씁쓸하기도 했다. 우리 같이 고생하면서 나름의 우정을 쌓았어요, 하는 건 화자의 관점이고, 농장 생활에 관해 글을 남길 수 없었던 다수의 원주민들의 진짜 속마음은, 그들 입장의 이야기는 뭐 알고자 해도 알기 힘들겠다. 아프리카계 작가들의 이야기를 읽으면 좀 다가가려나? 잔혹하고 억압하고 착취하는 백인 이야기 말고, 백인 고용주와 진정한 교감과 우정을 나눴어요, 하는 이야기도 어디 있긴 있나 궁금하다. 그런 거 쓰면 왠지 자기 시스터, 브라더들한테 총 맞을 것 같고… 일본인 주인한테 친밀감 느끼고 내지인 될래요, 하는 치숙의 화자 취급 당할 것 같기도 하다.

그런 한계에도 불구하고, 화자가 금가루 설탕가루 커피가루 다 뿌려 보여준 아프리카의 풍광을 묘사한 문장들은 아름다웠고, 그녀가 만난 아프리카인들의 모습도 생생했고, 사자 쏘고, 비행기 타고 날고, 들개 떼 마주치고, 가젤이랑 친구되고 뭐 그런 건 내가 겪을 수 없을 이야기들이라 재미있고 흥미로웠다. 소설 속에서는 고귀한 친구로 묘사되어 있지만 작가의 자전적 소설로 읽는다면 사실 남편인 남작이랑 결별하고 연인이 되었던 인물 데니스의 죽음과, 키쿠유족 부족장의 죽음, 그리고 농장이 몰락하고 다 팔고 뿔뿔이 흩어지고 키쿠유족도 보호구역으로 들어가는 결말은 화자에 조금 이입되어 슬프고 안타까웠다. 뭔가를 잃는 사람은 한번에 대부분을 잃는 경우가 그렇게나 많다. 그러니까 한번에 조금씩만 잃었던 지난 날을 감사해야 할지도…

이 소설은 안 봤고 영화만 언뜻 봤다는 엄마 이야기를 들어보면, 온통 로맨스 범벅에 카렌과 데니스의 연애담에만 초점을 둔 듯한 영화는 딱히 안 봐도 될 것 같다. 혹시라도 영화만 보고 이국적 배경에서의 사랑 이야기에 몰입했던 사람이라면 이 소설에서는 기대하는 걸 전혀 찾을 수 없을 수도… 그래도 모르고 넘어가기에는 많은 빛나는 순간이 있어서 한 번 읽어봐도 연애질 영화보다는 나쁘지 않을 것 같다.

+밑줄 긋기
-〈아프리카로부터는 항상 무언가 새로운 것이 생겨난다〉

-한곳에서 오래 ─ 심지어 여러 세대에 걸쳐 ─ 사는 유럽인은 주거 환경에 대한 유목 민족의 철저한 무관심에 절대로 융화되지 못한다. 소말리족의 가옥은 맨땅에 아무렇게나 흩어져 있었고 대못으로 뚝딱뚝딱 박아 놓아서 겨우 일주일이나 버틸까 싶은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안에 들어가 보면 놀랍게도 매우 정갈하고 산뜻했다. 아랍 향료 냄새가 은은히 풍기고 좋은 양탄자와 벽걸이, 놋쇠그릇과 은그릇, 상아 칼집에 든 녹슬지 않는 재질의 날을 지닌 칼들이 보였다. 소말리족 여인들은 예의 바르고 기품 있게 행동했고, 친절하고 쾌활했으며 웃음소리가 마치 은 종소리 같았다.

-카만테는 생각이 깊은 아이였다. 오랜 고통의 세월 속에서 사려 깊은 눈으로 세상을 보고 모든 것에 대해 나름의 결론을 끌어내는 성향을 키워 온 것인지도 모른다. 그는 평생 자신의 방식으로 고립된 삶을 살았다. 다른 사람들과 똑같은 일을 하더라도 다른 방식으로 했다.

-갑자기 머리 위에서 쏴 하는 소리가 들린다면 그건 키 큰 나무들을 스치는 바람 소리지 빗소리가 아니었다. 그 소리가 땅에서 들린다면 관목과 키 큰 풀들 속에서 나는 바람 소리지 빗소리가 아니었다. 땅 바로 위에서 살랑거리고 달각거리는 소리가 들린다면 옥수수 밭의 바람 소리였다. 그 소리는 빗소리와 너무도 흡사해서 번번이 속고, 애타게 기다리는 존재를 연극 속에서 본 것처럼 약간의 만족감까지 얻지만 그래도 역시 빗소리는 아니었다.
그러나 대지가 공명판처럼 깊고 풍부한 포효로 응답하면, 그리하여 우리를 둘러싼 세상이 모든 차원에서, 위아래 전체에서 노래를 부르면 그건 빗소리였다. 그건 마치 오랫동안 바다에서 멀리 떨어져 있다가 바다로 돌아간 것과 같았고 연인의 포옹과도 같았다.

-그들은 식당으로 들어와 내가 글을 쓰는 모습을 한참씩 구경하기도 했는데 그들이 등지고 있는 벽의 패널 색깔이 그들의 머리 색깔과 같아서 밤에는 그들의 흰 옷만 보였다.(요즘 쓰면 여기저기서 욕받이가 될 묘사…거의 백 년 전이니 뭐…)

-원주민은 〈배 속에 차가운 돌덩이가 들어앉았다〉는 말을 자주 했으며 그것을 이유 삼아 농장 일에서 손을 놓곤 했다.

-하지만 그 사연은 어둠에 싸여 있다. 수천 킬로미터를 날아온 그 꼬질꼬질한 싸구려 종이는 온몸으로 말하고 악까지 써대는 듯하지만 난 아무 말도 알아들을 수 없다.

-백인이라면 편지에 예쁜 말을 써서 보내고 싶으면 이렇게 쓸 것이다. 〈나는 당신을 영원히 잊을 수 없습니다.〉 그러나 아프리카인은 이렇게 쓴다. 〈우리는 당신이 우리를 잊을 수 있을 거라고 생각지 않습니다.〉

-내가 적어 준 진술서는 조고나에게 큰 도움이 되었다. 판무관이 그걸 읽어 본 뒤 니에리의 키쿠유족들의 이의 신청을 기각하여 그들은 결국 아무 소득 없이 우거지상을 하고 자기네 마을로 돌아갔던 것이다.
그리하여 그 진술서는 조고나의 소중한 보물이 되었고 나는 그것을 여러 차례 보게 되었다. 조고나는 구슬로 수놓인 작은 가죽 주머니를 만들어서 진술서를 넣고 주머니에 끈을 매달아 목에 걸고 다녔다. 이따금, 특히 일요일 아침에 그는 갑작스럽게 우리 집에 나타나 가죽 주머니에서 진술서를 꺼내 읽어 달라고 했다.

-나는 어린 황소 세 마리를 거세시켜 쟁기와 우마차를 끄는 온순한 소로 만든 뒤 공장 마당에 가두어 둔 적이 있었다. 그날 밤 하이에나들이 피 냄새를 맡고 찾아와 그 소들을 죽였다. 나는 그것이 바로 마사이족의 운명이라고 생각했다.

-저 아래 강가에서 하이에나들의 울부짖음이 들려왔고 노파들이 밤중에 하이에나로 변한다는 키쿠유족의 전설이 떠올랐다. 어쩌면 지금 와이나이나의 어머니는 밤공기 속에서 이빨을 드러내고 강가를 따라 총총히 걷고 있는지도 모른다. 이제 마법이 제법 친근하게 다가왔고 그럴듯하게 여겨졌다. 아프리카에는 밤에 많은 것들이 돌아다니니까.

-나는 코끼리를 쏘아 죽인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나름의 눈으로 세상을 보면서 땅 위를 걸어 다니던 거대하고 당당한 생물체가 내 행동으로 인해 더 이상 살아서 걸어 다닐 수 없게 된 것이다. 키쿠유족들이 그에게 물을 끼얹고 원숭이 가죽으로 만든 커다란 망토까지 벗겨 놓아서 그는 품위까지 잃은 상태였다. 벌거숭이가 된 그의 모습은 인간들이 가죽이나 뿔 같은 기념품을 취한 뒤 버린 동물의 시체처럼 보였다.

-다 구운 후 숯가마에서 꺼내 땅바닥에 펼쳐놓은 숯은 아름다운 작품이다. 불순물이 다 빠져 무게가 가볍고 비단결처럼 부드러운 숯은, 불멸성을 얻게 된 나무의 작고 경험 많은 검은 미라다.

-그의 오디세이를 관통하는 강한 정서가 하나 있었으니 그건 바로 법에 대한, 법이 이룬 모든 것에 대한 혐오였다. 그는 타고난 반역자로 모든 무법자에게 동지 의식을 느꼈다. 그에게 영웅적 행위란 법에 대한 저항을 의미했다. 그는 법의 구속을 받지 않는 왕들과 왕족, 마술사, 난쟁이, 미치광이에 대해 이야기하기를 좋아했으며 법에 정면으로 맞서는 범죄, 혁명, 사기, 간계에 매료되었다. 반면 선량한 시민에겐 깊은 경멸을 느꼈고 법에 구속되는 것은 곧 노예근성의 표시라고 믿었다. 우리가 함께 나무를 베어 넘어뜨릴 때 알게 된 사실인데, 그는 심지어 중력의 법칙조차 받아들이지 않았다. 편견 없고 진취적인 정신의 소유자들은 그 법칙을 정반대로 생각할 수도 있다는 것이었다.

-어쨌든 누군가는 세상 사람들 중에서 가장 나쁜 처지에 있어야 한다는 것이죠.

-그들을 추방한 건 사회가 아니었고 이 세상의 어떤 장소도 아니었다. 그들을 추방한 건 시간이었으며 그들은 우리 시대에 속해 있지 않았다. 그들을 배출할 수 있는 나라는 영국뿐이었으나 격세유전의 예인 그들은 이제는 존재하지 않는 과거의 영국에 속해 있었다. 그들은 현 시대에는 집이 없어서 이곳저곳을 떠돌며 살아야 했고 그러다가 우리 농장에도 찾아왔다. 그것에 대해 그들 자신은 인식하지 못하고 있었다. 오히려 그들은 자신들이 떠나 온 영국에서의 삶에 대해 죄책감을 느꼈는데 친구들은 참고 견디는 의무를 자신들만 권태롭게 여겨 그것에서 도망친 것처럼 생각하는 듯했다.

-「자, 우리 쓸데없이 목숨 걸러 가요. 우리 목숨에 아무 가치도 없다는 게 바로 우리 목숨이 지닌 가치니까요.Frei lebt wer sterben kann(죽을 수 있는 자, 자유로이 산다).」

-그 순간 아프리카는 끝도 없이 커졌고 데니스와 나는 무한히 작아져서 그곳에 서 있었다. 우리의 손전등 불빛 바깥은 어둠뿐이었고 어둠 속에서 사자들이 두 방향으로 누워 있고 하늘에선 비가 내렸다. 사자의 굵직한 포효가 잦아들자 주위에선 아무런 움직임도 없었고 사자는 혐오감을 나타내기라도 하듯 옆으로 고개를 돌리고 미동도 없이 누워 있었다. 커피 밭에 커다란 동물의 시체 두 구가 놓여 있었고 밤의 정적이 주위를 감싸고 있었다.

-도시 사람들은 모든 움직임이 일차원에 한정되어 있고 줄에 묶여 조종당하기라도 하듯 정해진 선을 따라 걷는 슬픈 고난과 예속의 삶을 산다. 그러다 들판이나 숲을 거닐게 되면 선이 평면이라는 이차원으로 바뀌며 그것은 노예들에게 프랑스 혁명과도 같은 멋진 해방을 의미한다. 하지만 하늘을 날면 삼차원이라는 완전한 자유를 누리게 되는 것이며 향수병에 시달리던 우리의 가슴은 오랜 유배 생활과 갈망 끝에 우주의 품으로 뛰어든다. 중력과 시간의 법칙이,

삶의 초록 숲에서
길든 짐승들처럼 노니네, 아무도 모르지
그것들이 얼마나 온순해질 수 있는지!

-나는 이구아나를 쏜 적이 있다. 가죽으로 아름다운 물건을 만들 수 있으리란 생각에서였다. 그러자 이상한 일이 일어났고 나는 그 일을 영원히 잊을 수 없다. 돌 위에서 총을 맞고 죽어 있는 이구아나에게 다가가는데 몇 걸음 옮기기도 전에 이구아나가 선명한 색을 잃어 가는 게 보였다. 이구아나가 지닌 모든 색이 마치 긴 한숨을 내쉬듯 빠져나갔고 내가 다가가 만졌을 때는 콘크리트 덩어리처럼 우중충한 잿빛이 되어 있었다. 그 찬란한 빛을 발했던 건 이구아나의 몸속에서 맹렬히 고동치던 살아 있는 피였다. 그 불길이 꺼지고 영혼이 빠져나가자 이구아나는 모래 자루처럼 죽은 물체에 지나지 않았다.

-「하지만 피는 한 방울도 내면 안 되는데 뾰족한 수가 있겠어?」 내가 말했다.
「멤사히브, 시뻘겋게 달군 칼을 쓰면 됩니다. 그러면 피가 안 나지요.」 파라가 대꾸했다.
「게다가 살을 딱 1파운드만 베어야지 그 이상도, 이하도 베면 안 되는걸.」 내가 말했다.
「그런 걸 갖고 누가 겁을 먹겠습니까? 손에 작은 저울을 들고 1파운드가 될 때까지 조금씩 떼어 내면 되지요. 그 유대인에겐 조언을 해줄 친구도 없었나요?」 파라가 응수했다.

-우리 인간으로 말할 것 같으면, 누군가에게 혹독하게 이용을 당해 봐야 비로소 정신을 차리고 우리가 기린들에게 저지른 잘못에 대해 용서를 빌 것이다.

하이에나는 창조의 상보적 특성을 한 몸에 구현한 자족적이고 조화로운 존재라는 점 때문에 갈망도 두 배로 느낄까요? 바꾸어 말하면 우리는 모두 삶의 포로인데 더 많은 재능을 타고날수록 더 행복하거나 아니면 반대로 더 불행할까요?

-이윽고 늙은 창녀가 앵무새에게 그 말을 시켰는데 듣고 보니 고대 그리스어였다. 앵무새는 매우 천천히 말했고 소년은 그 말을 알아들을 만큼은 그리스어를 할 줄 알았다. 그건 사포의 시 가운데 한 구절이었다.

달도 지고 플레이아데스(七曜星)도 지고,
한밤은 가버렸네,
시간은 흐르고 또 흘러
나 홀로 외로이 누워 있네.

소년이 시를 번역해 주자 늙은 창녀는 혀를 차며 작고 째진 눈의 눈알을 굴렸다. 그녀는 소년에게 다시 말해 달라고 하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원래 키쿠유족은 시체를 매장하지 않고 땅 위에 두어 하이에나와 독수리들이 처리하게 한다. 나는 태양과 별들 아래 누워 즉각적으로, 깔끔하고 공개적으로 깨끗이 뜯어 먹혀 자연과 하나가 되고 풍경의 흔한 요소가 되는 그런 장례 풍습이 마음에 들었다.

-파라는 데니스를 맞이하도록 농장에 두고 왔기에 나는 말 상대가 없었다. 키쿠유족 하인들은 현실에 대한 인식뿐 아니라 현실 자체가 우리와 달랐기에 말 상대로 쓸모가 없었다.

-결국 집에 가재도구가 하나도 남지 않게 되자 나는 살림이 차 있을 때보다 텅 빈 집이 더 살기 좋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나는 파라에게 그런 마음을 표현했다. 「원래 이렇게 살아야 하는 건데.」

-카멜레온은 겁에 질려 있었으나 무척 용감해서 딱 버티고 서서 입을 크게 벌리고 적을 겁주기 위해 몽둥이처럼 생긴 혀를 수탉을 향해 휙 내밀었다. 수탉은 놀란 듯 잠시 주춤하더니 이내 날래고 단호하게 부리를 망치처럼 내리찍어 카멜레온의 혀를 빼먹었다.
그 둘의 대면은 10초 정도밖에 걸리지 않았다. 나는 파씨마의 수탉을 쫓아 버리고 커다란 돌멩이로 카멜레온을 쳐서 죽였다. 카멜레온은 혀로 곤충을 잡아먹고 살기에 혀가 없이는 살아갈 수 없기 때문이다.

-애초에 내 계획은 사소한 것은 모두 포기하고 내게 아주 중요한 것만 지키자는 것이었지만 그 계획은 실패로 돌아갔다. 나는 내 인생에 대한 일종의 몸값으로 소유물을 하나씩 버리는 것에 동의했는데 아무것도 남지 않게 되자 나 자신이 운명이 버릴 것 중에서 가장 가벼운 것이 되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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