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0915 김준형 옮김.
패설집 ‘이야기책’, ‘소낭’, ‘진담론’, ‘파수추’, ‘어수신화’, ‘성수패설’, ‘기문’, ‘교수잡사’, ‘각수록’, ’파적록‘, ’거면록‘ 총 11권에서 성 소화만 200여 개 골라 한문글을 한글로 옮긴 책이다. 옮기신 선생님은 패설문학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은 분이다. 패설은 입으로 전해지던 이야기를 글로 옮겨 소설의 전신 쯤 되는 서사가 있는 글로 읽혔다. 그런데 그 중에서도 성 소화는 성적인 우스개 이야기, 요즘 말로 섹드립 모음집 쯤 되겠다. 이게 원조 음담패설이다. 책은 600쪽이 넘지만 한문 원문이 같이 수록된 거라 한글 번역글만 따지면 그래도 3-400쪽은 될 것인데, 어쩌다가 이 책을 중고로 구해가지고 끈덕지게도 다 읽었다.(너도 너다 참…)
한글 아닌 한문으로 적힌 걸 보면 이 글의 향유 계층은 한자 좀 아는 양반네나 한시 지을 줄 아는 기생언니들 쯤 되었을 것 같다. 야한 이야기만 한가득인데, 가끔 책마다 겹치는 이야기가 있기는 해도 이게 근대, 현대로 구전된 건 없는지, 다 새로 읽는 이야기였다. 인간들 야한 쪽으로도 파고들기 시작하면 이야기 지어내는 상상력과 말장난과 풍자와 해학이 끝도 없는 것이다. 이런 데서 느끼는 미감을 골계미라 한다던데 이 말 떠올릴 때마다 왠지 낯설다. 그니까 무슨 느낌인지는 알겠는데 그걸 미로 분류할 것인지는… 에이 모든 미가 선이거나 고상하거나 우아할 필요는 없으니 뭐…
혼자 재미 삼아 읽으래면 읽을 만하지만, 저 이야기들이 입에서 입으로 떠돌던 대로 어디 가서 내가 책에서 읽은 이야기인데- 하고 썰 풀다가는 당신은 철컹철컹, 성희롱과 성폭력의 처벌이 비교적 강화된 시대에 살고 계십니다. 다같이 재미있을 수 있다면 좋겠지만, 누군가는 불쾌하고, 수치심을 느낄 수도 있으니까 굳이 입 밖으로 내진 말고 마음에 묻어 두십시오… 과거의 이야기가 해학, 풍자, 부조리 비판, 이런 평가를 받을 수 있는 것은 사회적 위계 관계가 분명하던 시절 설움 받던 민중 계층이 양반이나 권력자를 우스개거리로 삼을 때나 좀 힘낼 수 있어서였던 것 같다.
그러니까 섹드립을 칠 때는 당신보다 권력 관계에서 윗대가리에 있는데 약자를 모질게 대하는 사람을 조롱하고 웃음 거리로 만들어야 그나마 덜 욕먹을 일이겠지만, 그런 건 진짜 용기가 필요한 일이겠다. 당신은 직업을 잃거나 평판을 잃을 수도 있다! 우리 작은 데 목숨 걸지 말고 몰래 재미있고 평온하게 오래 삽시다. 그래서 모두의 안전을 위해 한글 번역된 이야기는 안 옮겨 왔어요… 한문문학, 특히 패설에 대해 관심 있는 분들은 저자 선생님 논문이나 도서관의 이 책(있다면) 빌려다 보시는 걸로… (판사님 검사님 이 독후감은 옆집 고양이가 챗지피티에게 쓰라고 시킨 글입니다!)
아니 참, 온갖 섹드립, 패드립으로 꽁꽁 뭉친 가르강튀아나 팡타그뤼엘은 인문주의, 르네상스 고전 이러면서 칭송하는데, 조선 후기의 성 소화는 약간 늦은 건가, 늦게라도 민본주의 하겠다는데 죄 단편이라 그런가, 너무 안 알려지고 후려쳐지고 억까인 느낌도 없지 않다. 왜 옮기질 못해 왜… 한문 원본 하나만 살짝 올려두니 한자 잘 아시는 분은 재미있게 읽으시라고...
+한문글의 번역 제목: 벌레들의 말로 겸인을 구해내다
등장인물: 이항복, 그의 겸인, 임금(선조), 모기, 말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