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0503 이반지하.
프로 퀴어 정병러의 (우)수작 타령을 하다가, 사 놓고 안 본 이반지하 책을 읽기로 했다. 두 번째다. 첫 번째 책보다는 나 이제 덜 웃길 거야, 엄숙근엄진지, 그런 느낌으로다가 조금 묵지근해진 느낌이라 처음에는 아...두 번째 나온 책을 먼저 볼 걸 그랬나…그걸 안 사고 세 번째로 훅 넘어오는 건 트릴로지에서 2부는 원래 김빠지니까 제껴, 하고 맥락을 몰라 어리둥절하는 건 아닐까, 배트맨 비긴즈 보고 다크나이트 안 보고 다크나이트 라이즈로 바로 가면 어...하는 그런 거인지는 ‘나는 왜 이렇게 웃긴가’를 안 봐서 아직도 모르겠다. 나는 그렇게 웃기다는 첫 책이 마냥 웃기지 않아서 아마도 저 웃기다고 주장하는 두 번째 책은 한참 미뤄둘 것 같다.
‘이웃집 퀴어 이반지하’를 읽고 생각보다 많이 이반지하선생에 관해 찾아본 것 같다. 일단 김하나 선생과 북토크 같은 걸 하면서 최대한 점잖은 사람의 상호작용 의례를 하려는 노력도 보고, 유튜브에서 편의점 알바 하는 일상을 공개하며 아빠가 이렇게 힘들게 벌어 먹고 살아, 비슷한 말을 브이로그에 담으며 덤덤한 체험 삶의 현장을 보여주는 것도 보았다. 동아리 방에 몇 년 묵은 교환일기인지 빵다이어리인지 이름 기억 안나는 기록장에 적힌 소8 이란 이름도 계속 어른거리고, 곁의 사람에게 ‘김소윤씨는 디스크가 터져서 수술을 받았대’ 해 봤자 스무살 무렵 스치듯 안녕한 동기의 건강사에 대해서는 그래? 하고 정치 뉴스만큼에도 관심을 안 갖는 뭐 그런 나만 혼자 쌓는 내적 친밀감… 팬심은 아닌 것 같고 그냥 나의 어떤 가능세계의 예술가의 삶 같은 걸로 어설픈 동일시를 하는구나 싶었다.
만6세 때 읽던 책부터, 만40세까지 쳐사모으는 책들을 꾸역꾸역 이고 지고 오느라 자꾸만 넓혀낸 공간과, 반지하에서 15층의 온 벽면이 책장인 공간으로 기어 올라오느라 정작 책 읽고 놀 시간에다 노동력과 정신력까지 섞어 갈아 화폐로 교환하고, 그걸 또 알라딘에 바치며 온갖 폐지로 교환하는 삶을 돌아보았다. 집게처럼 버리지도 못하고 지고 다니기도 힘든 자신의 작품들을 (하필이면 회화작가여서 캔버스를 놓을 곳도 없어서) 트렁크에서 꺼내지 못하는, 퀴어 문화제며 헤테로 결혼식 사회에 온갖 북토크까지 이런저런 행사 안 가리고 스스로의 삶을 지탱하느라 애쓰는 예술가를 보며 아...저것이 보헤미안...주렁주렁 달린 인간들을 먹이고 입히고 씻기고 알림장과 회신문에 사인을 하고 숙제나 시험 공부를 열심히 안 하면 그래그래 적당히 살다 나중에 조금 힘든 노동하며 지내는 삶도 나쁜 건 아니지, 그런 속물적인 쁘띠부르주아지 행세하는 내가 되어 버린 오늘을 괜히 부끄러워하면서…
돌출된 디스크가 더 망가지지 말라고 9900원에 산 8킬로그램짜리 쇳덩이 케틀벨로 데드리프트 흉내를 내면서 아휴, 난 수술할 만큼 심해지지 않은 게 어디냐, 혈전 막혀 퉁퉁 붓던 다리에 하지정맥류까지 돋을 기미가 보이니 이런저런 압박스타킹을 수집하면서 서서 일하는 사람의 필수템이지, 거기에다 걸칠 파격 할인하는 옷가지 나부랭이들을 장롱에 치덕치덕 쌓고 신발장에 자리가 없어 한숨쉬며 신발들을 포개어 놓는 나는, 책을 읽으며 내심 예술 안 하길 잘했다...커밍아웃 할 일 없어 다행이네...하는 치졸한 내가 자꾸 고개를 디밀어서 꼴밤을 백 대 쯤 먹여주고 싶었다.
+밑줄 긋기
-어디로 갈 것인가,
가 아니라 속한 곳에서 도망치는 것이, 멀리멀리 달아나는 것이 가장 중요한 감각.
뛰지 않고 있어도 바람이 옆머리를 흩뜨리며 마음의 정면으로 휭휭 불어닥치는.
향하는 것이 아니라 떠나는 것이다.
이따금 다시 붙잡혀 올 것을 알면서. (10)
-그런데 그렇게 딱딱 맞춰서 이 단추를 저 구멍에만 끼울 거라면 이 세상에 간지와 멋이랄지, 인간성 같은 건 존재 이유가 없어진다. 하지만 나는 좋은 대학에 가기 위해 인간으로 존재하길 포기했다. 교복 속을 살뜰히 채운 충전재로서 죽음 같은 10대를 살아냈다. (53)
-나는 어느덧 쑥쑥 자라, 벗을 건지 입을 건지를 넘들 앞에서 당장 결정하지 않아도 되는, 비로소 사회에서 이 정도의 자유는 허락없이 누릴 수 있는 사람이 되었다. 이 사회에서 이만큼 늙어내지 못했다면 어림도 없는 일이었을 것이다. (55)
-호텔이 만드는 쾌적함이 노동의 산물인 것은 모를 수 없이 당연했으나 그걸 적나라하게 드러내보이는 것은 다른 문제였다. 어떤 노동이 있다는 것은 감각되지 않아야 쾌적했다. 하지만 그 노동이 되는 기분은 어땠더라. (118)
-이 사회에서는 비로소 어떤 쓸모가 완전히 박탈당한 후에야 소위 하고 싶은 일만 하는 사람이 되는 것인지도 모른다. (136)
-그것 말고도 다채로운 폭력이 정말 많은데, 강간은 왜 그토록 매력적인 장치인가. 강간은 왜 이리 예술 서사에서 뛰어난 기능을 갖고 있나. 무대 위 강간에 대해선 으레 관객 모두가 어마어마한 피해라고 그 폭력성을 단번에 수긍하기 때문일까. 현실 강간은 그게 범죄이고 피해라는 걸 인정받기까지 여전히 너무 많은 이들이 의구심을 갖고 중립 얘기를 하시는데, 예술로 넘어가면 갑자기 모두가 저것은 진짜! 고난이고 진짜! 고통이라는 데에 쉬이 동의하는 것 같다. 강간은 인생을 망쳐버린다고!
내 경험에 따르면 인생을 분명 망치기는 하는데, 글쎄 뭐랄까, 사실 한국에서 산다는 것은 그런 거다. 그렇게 처음부터 동등한 입장에서 만져지기가 쉽지 않다. 실제로 그렇게 동등하게 만져진 사람이 몇이나 되려나. 한국에서 평생을 살면 아주 어릴 때부터 남녀노소에게 강제로 만짐당하게 되는 것이고, 그건 나이가 들어서도 매한가지다. 조금만 정신을 놓고 있으면 그런 일이 후루룩 생긴다. (326)
-그러니까 나는 이제 저런 사람들이 된 것이다. 누군가를 보필하고 누군가의 편의를 위해 주로 기능하며 그 누군가가 베푸는 것에 아주 적절한 리액션을 할 줄 알아야 한다. 그래야 다음에도, 또 이 다음에도 베풂을 받을 수 있다. (340-341)
-그리고 또 돈이 좋은 이유는 남들을 시켜먹을 수 있기 때문이다. 이것도 어찌 보면 결국 쾌적해지기 위함인데, 귀찮고 지저분한 일들을 위탁해버릴 수 있게 해준다. 또 먹고 싶은 게 있을 때 정말로 메뉴만 고르면 된다는 게 좋은 것 같다. 어떤 걸 시켜야 제일 본전을 뽑을지 고민할 필요없이 너그러워지는 것이다. 사람이 간장 종지처럼 자잘자잘해지지 않게 도와준다. (343)
-하지만 여전히 궁금하다. 나는 얼만큼 가난하고 얼만큼 부유한지. 넘들도 그런 궁금증을 갖고 있는지. 혹시 나만 이렇게 매사에 어리둥절하고 있는 건지. 아무래도 이런 궁금증은 너무 상스러운지. 그렇게 분노도 혁명도 없이 일생을 탈 없이 살다 가도 괜찮은 건지. (35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