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라딘서재

참을 수 없는
  • 말할 수 없는 애인
  • 김이듬
  • 10,800원 (10%600)
  • 2011-04-25
  • : 1,621
-20250125 김이듬.


‘히스테리아’를 사 놓고 읽지 않았다. 시집을 산 건, 친구가 문학촌 있던 시절, 도서관에 글을 쓰러 내려가면 대부분 작가들 도망간 자리에 앉은 시인이 자주 떡을 주었다고 해서였다. 떡을 주다니 착하군. 그런데 무서운 누나일지도 몰라.
사 둔 시집보다 앞앞에 나온 시집을 읽은 건, 나는 평생 대부분 경기도 사람이었지만 벌써 서울 사람이 된 지 이십 년이 다 되어 가는데도 몰래 경기도 전자도서관에 가입이 되어 있는데, 어느 날 갑자기 쫓겨난 게 아닐까, 하고 책이 빌려지는지 아닌지 슬그머니 대출을 실행했는데 그게 ‘말할 수 없는 애인’이었다.
오늘 이 시집 절반 남은 걸 통으로 다 읽고 자는 것은 반납까지 1일이 남아서였다. 그런데 12시가 지나고 보니 23시간이 남았다고 했다. 난 12시 땡 치면 내놔 이러고 가져가는 줄 알았지…
이 시인과 비슷하게 글쓰는 사람을 봤는데, 사실 글은 전혀 다른데 내가 느낌만 비슷하게 느낀 걸 텐데, 친엄마 같지도 않고 새엄마 같은데 사실 친엄마인 아줌마가 막 때리고 교육인 척 학대를 하다가 다 자라서까지 자녀를 괴롭히는 걸 보면서 화가 났었다. 우리 엄마는 그저 내가 말하는 걸 잘 들어주지도 않고 뚱 하다가 이제와서 그땐 우울증이어서 어쩌고 하면서 나한테 자기가 들은 정치 뉴스 거리를 종알대고 싶어하는 정도는 그냥 양반이었던 건가, 그럼 듣기 싫은 거기다 대고 맨날 개소리 삽소리 좀 그만하란 식으로 쏘아 붙이던 나는 진짜 개샹불효자인 건가 싶었다. SCT검사란 걸 했는데, 문두를 주고 뒷부분 빈칸을 완성하는 것이었다. 40. 대게(이 말을 두 번이나 보고는 빡쳐서 게에다가 엑스치고 개로 고쳐 놓았다. 의사는 이 검사를 700명 쯤 함께 했는데 고친 사람이 딱 두 사람 있었어요. 라고 했다. 그게 너예요.) 어머니들이란 - 아이를 잘 키우고 헌신해야 한다는 압박감에 시달려 자책을 많이 한다. 라고 완성했는데, 나는 그 대개에 속하지 않는다는 생각으로 그랬다. 그런데 사실 나같은 에미도, 더한 에미도 많겠구나, 아니지 애초에 어머니가 되지 않은 여자들도 생각보다 많지, 어머니가 없는 사람도 많지 싶었다. 그런 사람들에게 대개, 라는 말로 두루뭉술하게 물어도 대답하기가 쉬웠을까, 어려웠을까, 잘 모르겠다. 나는 냉동피자랑 냉동 핫도그랑 냉동 치킨만 잔뜩 덥혀 먹여도 전혀 죄책감 느끼지 않고, 아이들은 이야 신난다 우리 엄마 최고 하는 분위기로 먹으니까. 할머니가 한참 만든 미역국과 반찬을 놔두고 (없는) 카레는요? 하는 불효새끼 2세를 낳아버린 나니까 대개를 빙자해서 일반적인 무엇을 물으면 참 나한테는 어렵구나 싶었다. 사실 이 시집도 어려웠고, 시에 묻어나는 지랄 맞은 삶을 마주하는 것도 어려웠고, 나는 다 어렵다. 문과도 이과도 아니여. 에효. ㅋㅋ

+밑줄긋기
-아닌 척하지만 그들은 복수의 욕구로 시를 쓴다 그들의 순정한 어투와 연약한 심성과 동화적 상상력이 대중에 게 먹히길 빈다 그들과 나는 패밀리이다 우릴 내동댕이친 세상에 이름을 날려야 한다 사람들은 기분 나쁜 시선으로 쳐다볼 뿐 아무도 우리의 천성과 재능을 몰라본다 (‘사생아들’ 중)

-올해는 한 사람도 사랑하지 않으리
올해는 술을 줄이고 운동을 하리
계획을 세운 지 사흘째
신년 모임 뒤풀이에서 나는 쓰러졌다
열세 살 어린 여자애에게 매혹되기 전 폭탄주 마셨다
천장과 바닥이 무지 가까운 방에서 잤다
별로 울지 않았고 별로 움직이지 않았다

날마다 새로 세우고 날마다 새로 부수고
내 속에 무슨 마귀가 들어 일신우일신 주문을 외는지
나는 망토를 펼쳐 까마귀들을 날려 보낸다
밤에 발톱을 깎고 낮에 털을 밀며
나한테서 끝난 연결이 끊어진 문장
혹은 사랑이라는 말의 정의를 상실한다

설날의 어원은 알 수 없지만
서럽고 원통하고 낯선 날들로 들어가는 즈음
뜻한 바는 뺨에서 흘러내리고
뜻 없이 목 쉰 소리로 노래를 부르는데

한 사람도 사랑하지 않는 일은
백 사람을 사랑하는 일보다 어려운 이성의 횡포
수첩을 찢고 나는 백 사람을 사랑하리
무모하게 몸을 움직이지 않으며
마실 수 있는 데까지 마셔보자고 다시 쓴다
(‘날마다 설날’ 전문)


-목련이 행주처럼 너더분해질 때 도마는 깨끗해진다
혼자 퍼먹는 밥은 이토록 맛난 것이
(‘모계’ 중)

-나는 배 속의 거지 질 속에서 성년을 맞은 사람 녹슨 짐 문제는 끝없이 좁고 캄캄한 통로에서 몸뚱이를 돌이킬 수 없다는 것에 있다 어느 날 끈이 풀리고 내가 쏟아지면, 그게 어때서
(‘질&짐’ 중)

-줄을 서서 버스를 타고 반기지 않는 그리운 사람을 찾아 세 시간을 달려
10분 만나고 돌아와 운다
(…)
휴전 지대에서의 생존은 몇 편의 어이없는 영화를 더 보는 것
자살을 지연하는 용기와 인내심을 가지고
자본의 포로들이 살포하는 포르노 필름에 무한 반복 빠져드는 것이다

얼마나 황홀한가
그날 밤, 관료들은 차량을 통제하고 시민들에게 새로 만든 광장을 열어주었다
심야에 한꺼번에 민간인들은 거리로 쏟아져 수용되었다
설사 우리 편이 패배하더라도 환호하고 사이사이 구령에 맞춰 대한민국을 외치자고 누군가 선동했다
(‘자살’ 중)

-나는 투표소에 가는 사람
주민등록증 가지러 도로 와서는 안 나가는 사람 내가 믿는 바를 스스로 믿지 못하는 사람 나는 검은 코트를 입고 휴대전화로 통화하는 사람 거침없이 말하고 후회하는 사람
(‘도플갱어’중. 여기까지만 겹쳐서 다행이네)

-당신은 키스로 봉한 편지처럼 오래된 노래
나를 봉하는 데 실패한 사람
보석처럼 빛나는 유골
없는 발로 꾹꾹 눌러쓴 책
단지 나는 당신을 여과하고 퇴고하고
나와 상관없이 흐르는 당신을 옮겨 적습니다

그러니 이 시는 내가 쓴 게 아닙니다
내 안에 침묵한 당신은 내 말의 시작
이 시의 끝이고 한계
(‘제가 쓴 시가 아닙니다’ 중. 한용운 오마주 같은데 ‘시’가 아니라는 줄 알았더니 ‘이 시’ 라고 했네...나 바보야. 오독오도독)

-그렇지 이제 내가 네 몸에 뭐라 쓰는지 숨을 몰아쉬고 받아 적어
(‘지방의 대필작가’ 중)

-어두운 골목에서 빠져나온 강도가
어쩌면 기다리던 애인일지도
살인은 멈추지 않고 강간은 끝나지 않고 전쟁은 더더욱 치밀해질 것이다
우리는 충분치 않은 과오를 나누고
끝내 나아지지 않은 채 사라질 것을 믿는다
(‘나는 세상을 믿는다’ 중

-나는 글쓰기를 멈추고 싶다.
(‘아케이드’ 중)

-인간도 아닌 것이거나 인간 이상이거나 다 인간이고
하지 않는 편이 나았을 많은 소리를 지껄였고
검은 코트는 다섯 벌이나 되고
(‘오늘도’ 중. 검은 코트 검은 원피스는 최소 5벌이 국룰이지)

-내가 그 친구에게 내 속눈썹 과 고름을 주지 않았다면
그 친구는 그런 눈동자로 세상을 보지 않았을지 모른다.
사람을 너무 깊숙이 보고 이해하려 들면 자기 의 울음소리로 심신이 곪는다.
(‘여자가 여자를 사랑할 때’ 중)

-나는 이 진흙 구덩이 안이 좋아요 똥을 싸도 괜찮아요 만날 따 돌림받았는데 어쩌다 동반 자살도 시도했었는데 셀 수도 없이 한 꺼번에 산 채로 토막 나고 뒤죽박죽 피투성이로 처음 마주친 우 린 서로 똥과 피를 흙을 퍼부으며 장난쳐요 최초로 심장이 불타 오릅니다 아버지 울지 마세요 눈에서 폐수 좀 흘리지 말라고요 미리 팔아먹지 못해 안타까우세요 내가 춤추며 불타오르지 않아 찜찜하고 수도관 타고 흘러들어갈까 봐 불안하세요
그래서 뭐요
세상은 거대한 봉분 고랑 너머 위생적인 사육장 삼월이 가고 꽃 피는 사월이 가고 나에게 오월을 묻지 마세요 폭우가 쏟아지 지 않아도 삼월이 붉은 구렁에 흘러넘치지 않아도 난 지금 사라 지는 내가 지독한 악취가 처음처럼 맘에 들어요
(‘삼월은 붉은 구렁을’ 중)

-다만 나는 밤을 치던 칼로 신문지를 찍는다 담배 가게 아저씨가 죽은 딸을 쉬쉬하듯 나는 고양이를 안고 동산에 오른다 다리를 푹 꺾고 머리를 홱 젖혀 팔을 벌린다 소리 지른다 다 죽여버릴 거야
(‘고향의 난민’ 중)

+마블의 헬라가 쓴 시들 인 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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