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심을 떨쳐내려 할수록 자꾸만 누군가가 귓가에 대고 속삭였다. ‘모두 이 가슴 서늘한 순간을 네가 어떻게 넘기는지 구경하려고기다리고 있어.’- P54
옛일은 이미 모두 과거의 시간 속에 묻혀버렸고, 지난날의 상처에서는 진즉에 새살이 돋아 모든 흔적을 덮어버렸다. 마음이란 가장 여리면서도 가장 굳센 것이었다.- P56
부끄러움이 없는 것은 곧 두려움이 없다는 것이다. 다만 실로 너무 지쳤고, 끝이 없는 불안과 걱정도 지긋지긋해 너무 피곤할 따름이었다. 그가 나를 믿든 안 믿든 상관없었다. 이러나저러나 내게는 나 자신의 존엄이 있었고, 그 누구도 내 존엄을 얕잡아보게 할 수는 없었다.- P142
세상에서 가장 강요할 수 없는 일이 바로 쌍방이 서로를 사랑하는 것이다. 남녀가 딱 맞는 때에, 딱 맞는 시기에 만나지 못한다면 모든 것이 다 헛될 뿐이다. 아무리 애달프게 사랑하고 서로가 아니면 죽고 못 살아도 결국에는 스쳐 지나가는 인연으로 끝날 따름이다.- P257
바람은 차고, 길은 힘겹고, 밤은 깊었다.- P283
아이의 손을 잡고 있자니 문득 가슴이 평온해지고 보들보들해졌다.
내 아이를 사랑하는 마음을 미루어 다른 사람의 아이까지 사랑한다는 말의 의미를 이제야 깨달았다.- P288
정말로 두려운 것은 고통이 아니라 쇠붙이처럼 무겁게 짓눌러오는 고단함이었다. 고단함은 내 의지를 무겁게 짓눌러 모든 것을 포기하고 싶게 만들었다. 이대로 포기하고, 이대로 깊은 꿈속으로 빠져들어 더는 고단함과 아픔에 시달리지 않고 마음 가는 대로 유유히 천지를 떠돌고 싶었다. 너무나 매혹적이고 간절히 원하는 일이었다.- P323
하나를 취하고 하나를 버린다. 그러다 잃는 것은 바로 삶이다.- P335
세월만 쉽게 변하는 것이 아니다. 그 밖에도 많은 것이 다 변했다. 그 와중에 한 번 잃은 것은 다시는 되찾을 수 없다.- P35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