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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대를 기다리고 있었네
  • 모모
  • 미하엘 엔데
  • 19,800원 (10%1,100)
  • 2024-03-29
  • : 22,852

인생이란 참 알다가도 모르겠습니다. 젊어서는 새로움을 쫓다가 나이 들어서는 익숙함을 추구하게 됩니다. 하지만 익숙하다고 해서 그것이 나 자신과 꼭 가깝지만은 않거든요. 또 다른 익숙함을 발견하면 지금껏 동고동락했던 것들도 자연스레 뒷전이 되고 말아요. 사람이 ‘자아‘라는 복잡한 문제에 발을 담그게 되면 자신이 이러이러한 사람이라고 정의 내리는 무의식적인 습관이 만들어집니다. 수차례의 반복을 통해 제법 스스로를 파악했을 무렵부터 삶은 단순하게 흘러간 듯해요. 저의 경우는 그랬습니다. 그런데요, 자아성찰을 밥 먹듯이 했던 제 자신의 정의들도 시간이 지나면서 변해간다는 점을 종종 느끼고 있어요. 예를 들어 저는 인간관계에 대한 긴긴 연구 끝에 ‘사람은 바뀌지 않는다‘라고 매듭지은 사람이에요. 헌데 지금은 생각이 좀 바뀌었습니다. 그러니까 제 생각이 틀렸다라기보다도 사람은 상황에 따라 달라지는 존재라고 보고 있죠. 이것은 저만의 오래된 익숙함이자 확고부동한 정의였지만 특별한 계기도 없이 그렇게 바뀌었어요. 이래서 영원한 건 절대 없다고들 했던가 봅니다.


어른들의 환상동화라 불리는 <모모>를 이제서야 읽었어요. 재미도 있고 메시지도 좋았지만 갈수록 전개가 SF 장르로 바뀌는 게 제 스타일은 아니었습니다. 제가 SF에 그리 흥미를 느끼지 못하는 탓이기도 하고요. 작품의 줄거리는 간단합니다. 버려진 원형극장에서 홀로 살아가는 모모가 등장합니다. 동네 사람들은 이 꼬마 소녀에게 속마음을 다 털어놓거나 번뜩이는 아이디어를 얻어 가는 등 다양한 활력과 위로를 받곤 했어요. 그러다가 이 마을에 회색 신사들이 나타나서 모두의 평화를 앗아갑니다. 그들은 시간저축은행의 영업사원들로, 낭비되는 시간들을 아껴야 한다며 모두를 설득했고, 그 말에 넘어간 사람들은 이내 여유를 잃고 매우 바쁜 삶을 살아가게 됩니다. 그 후로 모모를 찾아오는 이는 아무도 없었고, 이 사태를 바로잡고자 하는 모모의 모험이 시작된다는 내용인데요. 다 읽고 보니 사태 해결이나 결말은 크게 중요하지 않은 작품입니다. 중요한 것은 현대인들의 바쁜 삶에 대한 풍자였으니까요.


인류는 최초의 농업 문화를 시작으로 해서 지금의 4차 산업혁명까지 많은 발전을 해왔습니다. 기술의 진보 덕분에 지금 우리는 너무도 편리한 삶을 살아가고 있지만, 그것이 우리 삶에 더 여유로움을 가져다주었느냐라고 묻는다면 쉽게 대답하기 어렵죠. 진보 사회에서 절대 만족이란 건 없으므로 현대인들은 이 편한 세상에서도 쉼을 얻지 못할 운명이라죠. AI 산업 쪽 분들에게 듣자 하니, AI가 일거리를 줄여준 게 아니라 또 다른 일거리를 만들어줘서 총체적으로 업무량이 대폭 늘어났다네요. 이렇듯 기술발전의 현대사회는, 회색 신사들에게 시간을 빼앗겨 여유와 행복을 잃어버린 모모의 마을 분위기와 매우 흡사합니다. 작중에서 회색 신사들은 개개인에게 당신이 허비한 시간들을 합치면 얼마나 되는지 아느냐며, 아주 그럴듯한 계산법과 말들로서 우리가 그동안 헛살았다는 듯한 인상을 심어줍니다. 들어보면 그게 꼭 틀린 말도 아니에요. 내가 시간을 좀 더 아껴 쓰고 잘 활용했더라면 원하는 학교나 직장과 스펙을 얻었을 수도 있을 텐데, 하는 후회를 누구나 하기 마련이니까요. 하지만 우리는 그렇게 보내온 시간들과 자신의 행복이 비례한다는 사실을 간과해버리죠. 그래서 지금 큰 불만 없이 살아가는 이들도, 내 삶의 방식들이 어딘가 잘못됐다는 착각과 번민에 빠져버린다는 게 문제입니다. 요즘은 SNS가 그런 문제의 원인이 되겠죠. 다들 부자에다 맨날 놀고먹는 모습들뿐인데 그렇지 못한 나는 지금 잘못 살고 있다는 듯한 기분이 들거든요. 따라서 우리는 시간 낭비보다도 회색 신사들을 상대하지 않는 일에 더 주의를 기울어야 하겠습니다.


저는 살면서 총 세 번의 백수 생활을 겪었는데요, 바쁘게만 살다가 여유가 생겨나니 ‘아름다움‘을 만끽할 수 있어서 참 좋았거든요. 직장인일 때에는 아침햇살도 달갑지 않고, 커피 맛을 음미할 새도 없고, 시원한 매미 울음소리도 그저 소음일 뿐이었습니다. 그런 것들이 백수가 되고 보니 한순간에 아름다워지지 뭐예요. 그래서 든 생각은요, 현대사회의 구조를 바꿀 수 없다면 내 스스로 여유를 만들어낼 수밖에 없다는 거였어요. 요즘 저는 독서를 줄이고 운동을 해서 근육량을 늘리고 일찍 취침하는 패턴으로 바꾸었습니다. 건강에 신경 쓴 만큼 확실히 여유도 생겨났어요. 근무시간에 졸리지도 않고, 체력이 늘어나니 집중력도 높아지고, 직원들한테 화도 잘 안 나요. 이런 과정 속에서 제가 줄곧 정의해왔던 익숙함 들은 점점 낯선 것들이 돼가더군요. 여러모로 나 하기 나름이라는 생각이 지배적입니다. <모모>에서는 시간을 도둑맞은 일에 대해 논하고 있지만, 제가 보기에는 비교하는 삶에 대한 문제처럼 느껴졌어요. 유행의 민족인 한국은 남들이 하는 만큼 나도 하지 않으면 도태된 삶이라는 인식이 널리 깔려있는데요, 남들이 갓생을 산다 해서 나까지 그래야 할 이유도 없을뿐더러 ‘보여지는 삶‘에 충실할수록 여유와 행복은 창문 열고 밖으로 새나갈 겁니다. 이것은 남들을 의식하지 말고 온전히 나에게만 시간을 쏟으라는 말이 아니에요. 아무튼 진짜 유용한 시간들은 나뿐만 아니라 서로에게도 유용하다는 게 저의 결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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