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20대 초였을 때만 해도 세계 인구가 한 60억 명 정도였습니다. 2026년인 지금은 약 82억 명이라고 하네요. 이렇게 보면 인구수가 말도 못 하게 늘어났다고 볼 수 있죠. 그럼에도 오늘날 전 세계는 바닥치는 출산율과 취업률에 골머리를 앓고 있습니다. 약 20억 명이나 증가한 데다 경쟁자 수가 적을수록 취업에 유리함에도 불구하고 우리 사회는 인구 감소를 걱정한다는 게 참 아이러니하지 않나요? 인류의 역사를 살펴보면 인구수가 크게 증가할 때마다 심화된 폭력성으로 자연과 문화들은 줄줄이 파괴되었다고 하네요. 아무튼 가방끈 짧은 제 생각에는 지금보다 더 인구가 줄어들어도 될 듯하거든요. 유독 인구 밀도가 높은 수도권의 출근길을 보노라면 더더욱 그런 생각을 하게 됩니다. 진짜 숨이 턱턱 막히죠.
좁은 공간에서 지내는 동물들도 엄청 스트레스를 받는다는데 사람이라고 뭐 다를까요? 현대인들이 극도로 예민해진 데에는 사회적 거리 두기가 지켜지지 않은 탓도 있다고 봅니다. 물리적, 심리적인 것들을 다 포함해서 말이에요. 자, 그러다 보면 어떤 일들이 벌어질까요? 이 사회 구조에 대해 불만인 자들이 온갖 방식으로 질서를 깨려고 할 겁니다. 거기에는 신분에 따른 사회계층에 대한 경멸도 들어있을 테고요. 가면 갈수록 살기 힘들어지는 세상 가운데서 멀쩡한 사람이 몇이나 되겠습니까. 저는 범죄자가 아님에도 스스로를 선하다거나 건강하다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그 반대에 가까워요. 자아가 생겨났을 때부터 세계 멸망을 꿈꿔왔기 때문이죠. 아무튼 인구 밀도로 인해 도드라지는 사회 문제들을 볼 때마다 역시 한번은 리셋이 필요하다는 강한 확신이 듭니다.
반가운 김호연 작가님의 신간을 읽었네요. <서울의 선인>은 구약 성경 속의 한 장면을 모티브로 한 작품입니다. 창세기 18-19장을 보시면, 죄악 된 소돔과 고모라를 멸하려는 신 앞에서 믿음의 조상인 아브라함이 간청합니다. 그 패역한 땅에서 열 명의 의인이라도 있다면 심판을 거두어 달라고요. 그러나 아브라함의 조카인 롯과 그의 가족 외에는 전부 멸망했다는 내용인데요, 김호연 작가님은 이 ‘예정된 심판‘을 현대식으로 재해석하였습니다. 작중 배경이 서울이라는 말에, 멸망당해도 싸다는 생각부터 든 것은 어째서였을까요. 제가 선인이 아닌 것만은 분명합니다.
철물점 주인인 김재근 씨는 어느 재미교포 손님에게 묘한 이야기를 전해 듣습니다. 자기는 신의 명을 받들어 타락한 도시인 서울을 멸하러 온 천사로써, 의인 하나라도 발견한다면 심판을 보류한다는 뭐 그런 얘기였어요. 믿을만한 이유는 요만큼도 없었지만 어느덧 망가질 대로 망가진 자신의 처지를 생각하며, 천사 손님의 계획에 동참하기로 합니다. 천사가 그를 지목한 것은 주인공이 서울 의인상 1회 수상자였기 때문인데요. 수상자들 중에서 여전히 의인 다운 자가 있다면 심판을 멈출 테니, 1회 수상자가 직접 찾아봐달라는 청탁을 받게 된 겁니다. 보수까지 넉넉히 받은 김재근 씨는 이내 씁쓸한 과거가 떠오릅니다. 검은 돈을 챙긴 혐의로 불명예 퇴직을 했던 경찰이라는 사실을요. 의인상이라는 타이틀에 먹칠한 김재근 씨는 왜 천사에게 선택받았을까요? 천사들이 그의 사정을 모를 리는 없을 테고, 그렇다면 이제라도 회개할 기회를 주려는 것이었을까요? 수만 가지 의문점을 뒤로한 채 주인공은 의인상 수상자들을 만나러 갑니다.
듣자 하니 수상자들은 모임을 몇 번 가졌던가 봅니다. 아무튼 반신반의하며 만나본 동료들은 더 이상 의인이라고 할 수 없는 몰골이었습니다. 개중에는 완전히 잘못 봤다 싶은 사람도 있었고요. 김재근 씨는 타락한 옛 동료들을 거울삼아 자신의 추악함을 들여다보게 됩니다.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이 없다는 사람도 나이 먹으면 흔들리기 마련인데요, 하물며 인생의 오점을 남긴 사람은 두고두고 후회되지 않을까요? 이제 결과야 어찌 되든 김재근 씨는 지난날들을 사죄하고픈 심정이었습니다. 그 바램과 달리 의인은 없었고, 자칭 천사는 열흘 뒤에 서울이 무너질 테니 멀리 떠나라고만 하네요. 고작 수상자 몇 명만으로 서울 전체가 타락했다고 보는 건 너무 억지스럽지만, 범죄자에다 도망자였던 주인공은 할 말이 없었습니다.
김재근 씨의 순탄했던 인생이 전락하게 된 배경에는 제3의 인물이 있었습니다. 조폭들에게 쫓기던 한 여성을 구하여 의인상을 받고 특채 경찰이 되었던 주인공은, 자기가 평생의 목표물이 되었다는 사실을 인지하지 못했던 거죠. 싸움에서 패배하여 무리를 떠난 짐승은 얼마 못가 죽어버리고 맙니다. 대자연의 법칙이 그러하듯 밑바닥을 찍은 사람의 회생 또한 기대하기 어렵거든요. 그저 남은 생애 동안 이랬더라면, 저랬더라면 하면서 절망과 한탄으로 지낼 뿐입니다. 이처럼 전의를 완전히 상실하여 숨만 붙어있는 사람들을 우리는 뭐라 할 수도 없습니다. 순간의 실수나 방심으로 나 또한 패잔병이 될 테니까요. 아니, 어쩌면 나와 당신은 이미 패잔병인데도 그 사실을 모르고 있거나 애써 외면하며 살아가는 걸 수도 있겠죠. 그런 현대인들에게 김호연 작가는, 지난 실수를 만회할 기회가 주어진다면 적극적으로 참여할 마음이 있는지 떠보는 듯한 기분이 들었어요. 이제 그만 패배주의에서 벗어나자는 숨은 뜻이 아니었나 합니다.
현대 사회는 몇 번의 좌절만으로도 나를 완전히 녹다운시키고, 어떨 때는 완전히 나락 가게 만들어 재기불능의 상태가 되게 합니다. 그런 피해자들 중 하나인 김재근 씨는 딱히 이렇다 할 활약을 보여주지 못합니다. 독자들과 같이 아주 평범한 사람일 뿐이었어요. 그럼에도 천사는 일개 시민에게 세상을 구원할 사명과 역할을 주었단 말이죠? 저는 이 점이 아주 의미심장했습니다. 사람은 누구나 자기 삶의 주인공으로 살아가요. 모든 이야기 속의 주인공은 그 자체로 특별하다는 전제하에 우리 모두는 세상을 바꿀만한 힘을 가졌다고 볼 수 있어요. 소년만화의 주인공들처럼 얼마든지 각성하여 이전보다 훨씬 강해질 수 있다는 얘깁니다. 그 같은 성장을 기대하려면 누구보다도 내가 나 자신을 믿어주어야만 하겠고요. 아무튼 적다 보니 리뷰가 옆길로 샜는데 뒤 내용은 직접 읽어보시는 게 좋겠습니다. 언젠가 이런 글을 읽었어요. 첫 단추를 잘못 꿰었으면 언발란스 룩으로 살면 된다고요. 이 얼마나 훌륭한 사고방식입니까. 부디 남은 생은 힙하게들 살아봅시다. 두둥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