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은 퇴근하고 집에만 오면 정말 꼼짝도 하기가 싫습니다. 독서는커녕 운동도 거의 안 하고 있어요. 하루 종일 업무에 정신을 쏟고 나면 남아있는 기력이 없거든요. 똑같이 힘들 텐데도 퇴근 후에 운동 가는 사람, 술 먹으러 가는 사람, 자기 계발하는 사람을 보면 정말 존경스럽습니다. 저는 옛날부터 학벌이나 집안 좋은 사람은 하나도 부럽지 않았는데요, 건강이 타고난 사람은 정말 정말 부럽습니다. 아무튼 이번에 읽은 책은 분량도 짧고 가독성도 훌륭한데, 너무 길게 붙잡아서 그런지 내용이 군데군데 생각이 안 나네요. 되는대로 적겠습니다.
소년 조너스의 마을은 모든 것이 평준화된 유토피아입니다. 노인부터 신생아까지, 세대별로 마을 전체 인구수를 엄격히 제한하고 있어요. 이곳의 아이들은 12살이 되면 마을 위원회에서 지정해 주는 직위를 갖게 됩니다. 이것은 주민 전체가 보는 데서 행해지는 기념식으로, 어떤 직위든지 간에 그 자체로 숭고한 의미를 나타냅니다. 그에 따라 주인공 조너스도 받게 될 직위를 기대하며 콩닥콩닥 발 동동 하고 있는데, 어째서인지 자기 차례를 그냥 넘어가버리는 게 아닌가요. 마침내 친구들이 전부 직위를 내려받고 조너스의 이름이 마지막으로 불리게 됩니다. 그리고 수석 원로는 말합니다. 이 소년은 선택을 받았다고요.
이제 조너스는 마을의 유일한 ‘기억 보유자‘로 선정되었습니다. 직위를 받은 아이들이 각 분야의 훈련에 들어가듯 주인공도 윗세대 기억 보유자를 찾아가 훈련을 받습니다. 현존하는 기억 보유자인 노인은 곧 기력이 다하여 하루빨리 후계자를 양성해야만 했죠. 기억 보유자의 일이란 지금으로부터 오랜 과거를 거슬러서 전승되어온 수천 가지 기억들을 홀로 간직하는 것이랍니다. 그리고 가끔 원로들이 지혜를 필요로 할 때 도움을 주는 정도고요. 노인은 조너스가 선택받은 이유에 대해서 말하길, 그가 ‘사물 너머‘를 보는 능력을 가졌기 때문이라네요. 아마 N들은 이게 무슨 말인지 금방 이해하리라 생각됩니다. 저 역시 어려서부터 보이는 것보다 보이지 않는 것들에 시선이 머물곤 했거든요. 그것이 어떻게 사람 잡는지도 잘 알기에, 마냥 신나있는 조너스가 안쓰럽기만 했습니다.
노인은 자신이 간직한 기억들을 날마다 소년에게 넘겨줍니다. 그러고 나면 그 기억은 이제 노인에게는 남아있지 않아 희미한 감각만 남는다네요. 아무튼 건네받은 기억들을 통해 소년은 신세계를 경험합니다. 비와 눈이 무엇이며, 타오르는 화끈한 감정, 경쾌하고 시원한 촉감, 알록달록한 온갖 색깔들, 허물없이 오고 가는 가족들 간의 사랑 등등. 살면서 한 번도 경험하지 못했던 판타지를 마치 직접 체험한 듯 황홀경에 빠지곤 했습죠. 반대로 얘기하면 지금 마을의 평준화된 시스템에서는 이런 것들이 전부 ‘제거‘되어 있다는 의미고요. 안타깝게도 기억 보유자는 훈련이나 기억들에 관한 내용은 절대 발설하지 못하게 되어있었습니다. 이제 소년은 12살부터 노인이 될 때까지 외로움과 투쟁해야만 했습니다. 남들이 보지 못하는 것을 본다는 능력을 가졌다는 이유만으로요. 남 일 같지 않아서 마음이 짠했네요.
듣자 하니 10년 전에 다른 기억 보유자 후보가 있었답니다. 헌데 훈련받은 지 얼마 안 되어 ‘임무 해제‘를 자처하고 물에 빠져 목숨을 버렸다지 뭐예요. 조너스가 알고 있는 ‘임무 해제‘란 평생의 사명을 마치고 그 직위를 내려놓는 명예로운 은퇴식 같은 것인데, 어떻게 어린 친구가 임무 해제를 했던 것일까요? 노인은 슬슬 소년에게 즐겁지만은 않은 기억들도 하나둘씩 넘겨주게 됩니다. 그중에는 전쟁으로 인해 피투성이가 된 죽어가는 사람들의 기억도 있었어요. 조너스는 이제 죽음, 공포, 두려움 같은 존재들을 배웠습니다. 이제 자신이 그런 기억들을 홀로 평생 동안 간직해야 한다고 생각하니 어질어질했죠. 그래서 노인에게 따져 묻습니다. 이런 기억들을 어째서 마을 모두가 나눠가지면 안 되느냐고요. 이에 돌아온 대답은, 전 후보자가 죽어서 그의 일부 기억들이 사람들에게 돌아가자 엄청난 대 공황이 찾아와 난리도 아니었대요. 마을 전체를 위험에 빠뜨릴 수 없어 한 사람이 그 고통을 감당해야 한다니, 이 얼마나 잔인하고 무책임한 일인가요.
독자는 주인공 홀로 무거운 짐을 짊어지게 한 것이 마을 사람 모두가 가담한 일이라고 생각할 겁니다. 하지만 이런 과정을 상징적인 의미에서 해석해 보면 꼭 그렇지만도 않습니다. 사회인이 된 아이가 마주하는 세상의 이치와 부당함, 책임감 등은 세상이 나를 특별히 미워해서가 결코 아니거든요. 온갖 피하고 싶은 순간들과 부딪히고 깨지면서 인간은 무너지지 않는, 혹은 쓰러져도 다시 일어나는 법을 배우게 됩니다. 그런 것처럼 조너스의 피할 수 없는, 잊고 싶어도 그럴 수 없는 기억들과 그로 인한 현실의 고통은 결국 개인의 몫일 뿐입니다. 우리는 모두 주인공처럼 자기 몫의 고통과 씨름하도록 돼있어요. 그것은 당신과 내가 선택받은 조너스처럼 특별해서도 아니고 빌어먹을 운명에 당첨된 이유도 아닙니다. 인생이 원래 그런 거예요.
기억 보유자인 소년이 주인공인데, 어째서 제목은 기억 전달자일까요. 이야기는 조너스에 맞춰서 진행되지만 저는 노인의 입장에서 작품의 안팎을 관찰했습니다. 누구나 나이 들면 속 얘기를 꺼내지 못하고 혼자서 고민하고 삭히는 때가 늘어만 가죠. 하지만 겉보기엔 다들 별문제 없이 살아가는 것처럼 보여요. 그런 와중에도 어떤 이에게는 타인의 슬픔과 소외가 눈에 들어오고 사랑과 연민을 느낍니다. 진정 남들이 보지 못하는 ‘사물 너머‘를 볼 줄 아는 능력자들이죠. 노인은 후계자를 양성하는 스승이기 전에, 관조할 줄 아는 지혜자로 자리매김을 해왔습니다. 저도 한때는 같잖은 통찰과 사상으로 세상을 조금이라도 더 이롭게 만드는 일에 기여하고 싶었어요. 물론 이제는 그럴 마음을 거둔 지가 오랩니다. 옛 현자들은 세상만사에 결코 관여하지 않았고, 그래서도, 그럴 수도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마치 기억 전달자가 자신의 기억들로 영향력을 행사하지 않았던 것처럼요. 우리의 ‘남다름‘이 자랑이나 개성, 오만, 경솔함이 되지 않도록 주어진 삶에나 충실해야겠습니다.
글이 길어져 슬슬 마무리하겠습니다. 이곳 유토피아의 시스템이 얼마나 추악한지를 알게 된 조너스는, 노인과 짜고서 마을에 빅 엿을 먹이기로 합니다. 뒤 내용은 직접 읽어보시고요. <기억 전달자>는 성장 소설의 형식을 하고 있으면서 꽤나 섬뜩한 디스토피아를 다루고 있습니다. 이렇게 강압이 질서라는 이름으로 불리고, 굴종이 규범으로 뒤바뀐 세상에서는 선악을 전혀 문제 삼지 않아요. 분별하지 못하는 사람들은 눈이 있어도 보지 못하고, 귀가 있어도 듣지 못합니다. 이 말은 툭하면 파업하고 시위하는 단체같이 싸 들고일어나란 뜻이 아니에요. 현실에 너무 안주하지만 말고 때때로 경계할 줄도 알아야 한다는 얘깁니다. 지금 우리 사회도 디스토피아가 돼가고 있으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