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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대를 기다리고 있었네
  • 새장에 갇힌 새가 왜 노래하는지 나는 아네
  • 마야 안젤루
  • 11,700원 (10%650)
  • 2009-07-15
  • : 732

어떤 이들은 보통 사람들이 잘 보지 못하는 것들을 곧잘 들여다보곤 합니다. 이런 경우에 흔히 본질을 꿰뚫는다고도 하는데요. 똑같은 사물이나 현상을 앞에 두고서 왜 누구는 이면을 바라보고 누구는 액면가 그대로만 보는 걸까요. 한창 떠들썩했던 mbti가 대변한 바로는, 나무를 보는 S와 숲을 보는 N의 차이라고 했습니다. 그 말인즉슨 현실적일수록 관찰력이나 상상력이 떨어진다는 말일까요? 남들이 보지 못하는 것들을 씹고 뜯고 맛보고 즐기는 능력이란 정녕 타고나는 것일까요?


이 같은 현상에 대해 미국 사회심리학자 에리히 프롬은 말합니다. 사회적 합리화(이데올로기)에 의해서 부정되고 화합을 이룬 사회생활 내의 갈등들을 벗어버리려면 ‘자각‘이 필요하다고요(존재의 기술中). 즉 의식을 갖게 하는 자각이 해방의 효과를 불러온다는 겁니다. 그러니까 얼마나 자각이 있느냐에 따라 본인의 시야도 달라진다는 얘깁니다. 자각은 타고나기도 하겠지만 훈련을 통해서도 얼마든지 길러낼 수 있는 능력입니다. 그 영역에 도달하면 그동안 보고도 놓친 게 얼마나 많았으며, 세상 돌아가는 게 얼마나 우스꽝스러운지를 깨달을 테죠.


미국 흑인문학의 대표작이자 시조새 격이라는 작품을 만났습니다. 마야 안젤루, 처음 들어본 작가인데 명성이 대단하시더라고요. 이 책도 그렇게 권위 있는 줄 몰랐습니다. 그저 여타 흑인 소설들과 다르게 막 어둡거나 읽기 힘들지가 않아서 좋았거든요. 미국 교과서에도 꼭 실린다는 이 작품은 저자의 자전소설입니다. 그런데 마치 남 얘기하듯 제3자의 입장에서 설명하니까 본인 얘기라고는 생각을 못 했어요. 전 개인적으로 흑인문학을 잘 읽지 못합니다. 그들의 아픔과는 별개로, 거기서 거기인 서사가 많고 너무 다크해서 읽기가 힘들거든요. 같은 이유로 전쟁소설, 반전소설도 그렇고요. 아무튼 그럼에도 <새장에 갇힌 새…>는 가뿐하게 읽혀서 흡족했답니다.


세 살 밖에 안된 마거리트 존슨은 연년생인 오빠와 함께 할머니 집으로 보내집니다. 이 흑인 남매는 꼬꼬마 시절부터 부모의 이혼 및 타지 생활과 궁핍 등등 감당키 어려운 아픔들을 겪어야 했죠. 허나 1920년대 흑인들의 삶이란 대개 그런 것이므로, 주인공들은 원망 않고 현실에 적응해갑니다. 마거리트는 동포들이 백인들에게 쩔쩔매는 광경을 볼 때마다 불공평한 세상에 의문이 듭니다. 백인이나 흑인이나 같은 종교를 갖고 같은 신을 믿는데 어째서 자신들은 이 같은 차별을 받아야 하는 걸까요. 더욱 놀라운 것은 절대적인 할머니를 비롯하여 그 누구도 이런 형평성에 불만을 드러내지 않는다는 겁니다. 눈치 빠른 소녀는 이 암묵적인 규율을 따랐지만, 입을 다무는 만큼 눈이 열리기 시작했어요. 너무 이른 나이에 자각하는 법을 터득해 버린 거죠.


시야가 넓다는 건 그만큼 인풋이 많음을 뜻합니다. 그런데 이게 꼭 좋은 것만도 아니에요. 머리에 잔뜩 쑤셔 넣는다 해서 아웃풋도 좋았다면 너도나도 서울대 갔겠죠. 무슨 말이 하고 싶은 거냐면, 감추인 것들을 드러내고 꿰뚫고 벌거벗길 줄 알아도 나 자신이 시스템을 바꿀 순 없다는 겁니다. 마거리트의 중학 졸업식날, 웬 백인이 와서 같지도 않은 칭찬과 비전을 연설하는 데 얼마나 아니꼽던지요. 그가 얘기하는 훌륭한 사람의 기준은 어디까지나 이름 날린 백인들이었습니다. 그것은 농부, 세탁부, 잡역부, 하인으로 살아갈 수밖에 없는 흑인들의 처지와 팔자를 더욱 상기시켜줄 뿐이었죠. 소녀는 흑인으로 태어나 내 삶을 스스로 결정할 수 없다는 사실에 몸서리를 칩니다(238p). 기쁜 날에 받은 충격도 그렇지만 더한 충격은 그 백인이 깽판 치고 갔다는 걸 주변 아무도 느끼지 못했다는 겁니다. 이번에도 주인공 혼자만이 뭔가를 보고 말았죠. 더불어 자신들의 무력함까지도요.


남매는 따로 지내는 친부모와 재회합니다. 두 분 다 자기 삶에 만끽하면서 인종과 계급에 불만 없이 살아가는 중이었죠. 엄격한 할머니 밑에서 자라난 주인공들은 이제까지와는 전혀 다른, 신선한 생활 방식에 물들어갑니다. 물 만난 물고기가 된 오빠와 달리 보수적인 마거리트는 망설일 때가 많았습니다. 근데 꼭 이런 친구들이 늦바람 나서 정신을 못 차린단 말이죠. 뒤늦게 고삐가 풀린 사람들은 뭐가 빨간 불이고 파란 불인지 구분하지를 못해요. 결국 주인공도 폭력, 가출, 난폭운전 등 다양한 급발진을 보여줍니다. 미지의 세계, 즉 제3의 세계와 가까이하다 보면 당연히 현실감각은 떨어져요. 어려서부터 너무 많은 일들을 겪었던 마거리트는 제 나이에 맞게 노는 법을 배우지 못했죠. 보통 생각이 없는 애들의 무모한 행동들은 하나의 경험이 됩니다. 반면에 주인공처럼 생각 많은 애들이 저지른 일들은 대개 후회로 남곤 합니다. 그것은 자신이 어딘가 평범치 않다는 걸 느꼈기 때문인데요, 남들과 같아지기 위해서 안 하던 행동을 하게 된다는 게 문제입죠. 그것도 의식이 잔뜩 들어간 상태로요. 이게 참 인생을 앞서간 친구들이 늘상 겪게 되는 문제예요. 서른 살 넘어 처음 연애하는 성인이 뚝딱거리지 않을 확률이 얼마나 되겠나요.


마거리트 존슨은 저자의 본명이라고 하네요. 이 작품으로 저자 안젤루의 세상을 발견하는 시야에 대해서 한 수 배웠습니다. 앞서 얘기한, 자각이 해방의 효과가 있다는 말은 반드시 체험을 전제로 합니다. 내가 가진 언어가 내 세계의 한계다 라는 말이 있듯이, 결과가 좋았든 나빴든 체험한 만큼만 해방이 되는 거겠죠. 사실 이런 자전소설에서는 이렇다 할 주제나 교훈을 갖기가 어려운데요. 저는 인종, 여성, 계급에 억눌린 환경에서도 마냥 굴하지 않을 수 있었던 저자의 ‘자각‘에 주목하며 읽었습니다. 듣자 하니 몇 권의 자서전이 있다던데 국내에는 아쉽게도 이 책 하나뿐이더라고요. 아무튼 인간은 볼 줄 아는 데에 그칠 게 아니라 그것에 뛰어들 줄 아는, 그리고 상처받을 용기를 가져야 합니다. 안젤루는 ‘나이 먹는 것‘과 ‘성장하는 것‘은 구분되어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시야가 좁은 사람들도 나이가 들면 저절로 알게 되는 날이 옵니다만, 우리네 인생은 그렇게 저절로 이루어질 때까지 기다려주지 않거든요. 그러니 뭐든 자꾸자꾸 부딪히고 깨져봅시다들. 화이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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