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스토옙스키 4대 장편이래서 매우 기대했건만 실망스럽다 못해 화병이 날듯 하오나 이번 연도부터는 작고 소중한 나님의 고혈압을 생각하여 깔 때 까더라도 교양 있게 까주자는 선서를 해봅니다. 이 같은 결심이 얼마나 갈지는 모릅니다만 앞으로는 기존의 마당쇠 문체를 벗어나 양반 문체를 지향할 때가 됐다는 신내림을 받았다고나 할까요. 그런 심경 변화의 기념으로 이번 리뷰는 최대한 정중하게 즈려밟고 가겠습니다.
솔직히 얘기해서 이번 작품은 평을 쓰고 싶지도 않았거든요. 이렇다 할 줄거리도 없는 데다 재미까지 없으며 우리가 사랑하는 도스토옙스키의 매력이 온데간데없어서 적잖이 당황스러웠습니다. 하여 저로서는 퍽 좋은 말이 나갈 수가 없겠는데, 혹여 이 책을 읽지 않은 예비 독자들에게 감히 제가 심심한 상처를 드리지는 않을까 그것이 염려되더랍니다. 겨우 소설책 하나 갖고 웬 호들갑이냐 하실 수도 있는데, 그래도 명색이 도스토옙스키 아닙니까. 이분의 브랜드 파워를 고려하면 충분히 그럴 수 있다고 모두들 입을 모아 제게 말해주면 좋겠습니다.
도스토옙스키는 자신의 여러 작품 중 <백치>를 가장 애정했다고 하네요. 이 작품이 기념비가 된 이유는 무엇인지, 저자의 애착했던 이유는 또 무엇인지를 발견하는 데에 중점을 두고 읽었습니다. 마침내 이유를 찾긴 찾았는데요, 그것들이 기대에 한참 못 미쳐서 억울하기까지 했습니다. 그도 그럴 게, 분량이 폭력적이니까요. 뭐 오늘날의 감성과 맞지 않을 뿐, 당시 19세기에는 독자들의 배꼽과 눈물을 책임졌다 믿기로 했습니다.
이 작품이 말하는 백치는 우리가 정의하는 그 의미보다는 ‘호구‘에 더 가깝다고 볼 수 있어요. 주인공 미시킨 공작은 사람 자체는 선하고 긍정적이지만, 막말로 착하기만 한 사람입니다. 장점이 없는 사람을 칭찬할 때 흔히들 ‘애는 착해‘라고 하잖아요? 그 정도로 주인공은 특성 없는 인간에 가까운 무매력의 표본이라 하겠습니다. 그런 이유로 이 친구에게 재미는커녕 어떤 볼거리를 기대하지는 마시길 바랍니다.
스토리가 부실하면 인물이라도 잘 잡아야겠죠. 반대로 캐릭터가 약하면 작품성으로 간극을 메꾸기도 하고요. 그런데 이 작품은 정말 이도 저도 아니라는 인상을 계속 주더군요. 예를 들어, 한 인물을 심도 있게 다뤘으면 나중에 가서 그 인물이 결정적 역할을 하리라는 예상을 안고서 읽어나가겠죠? 하지만 계속 읽어봐도 그 인물의 활약이나 복선 회수 같은 장면은 나오지 않아요. 게다가 등장인물 대부분이 아군과 적군, 주연과 조연의 역할을 수시로 바꿉니다. 내내 이런 식이라 내용이 어디로 튈지 감도 안 잡혀요. 예측 불허가 독자의 긴장감을 유발하는 장치라지만 이렇게 과유불급이면 좋은 소리는 듣기 힘들죠.
원래 도스토옙스키가 생계형 작가이긴 했어도 다른 작품들은 이 정도로 볼멘소리가 나오진 않았어요. 제가 다 읽어본 것은 아니지만 ‘좀 재미가 없네‘ 정도였었지, 이렇게까지 실망할 건 아니었단 말입죠. 개인적으로 크게 실망했던 톨스토이의 <안나 카레니나> 조차도 메인 사건을 중심으로 흘러갔거든요. <백치>는 메인 사건이랄 게 없고 등장인물은 한가득에다 이내용 저 내용했다를 너무 반복합니다. 특히 주변에서 아이같이 투명한 공작을 좋아했다 싫어하는 장면이 가장 많아요. 공작이 말실수를 해서가 아니라 남들의 말을 곧이곧대로 듣고 이해하는 데서 오는, 그러니까 맥락을 파악 못하고 분위기를 읽지 못하는 데서 오는 어벙함 때문인데요. 아마도 주인공이 지닌 ‘공작‘이라는 신분에 어울리지 않는 사회성이 그를 웃음거리로 만들었겠죠. 저도 지금은 그 이유를 알지만 읽는 도중에는 공작을 궁지로 몰아가는 모든 상황들이 영 이해가 안 되더군요. 덕분에 기가 많이 빨렸습니다.
챕터마다 등장하는 각종 사상과 주의에 관한 논쟁, 설파, 토론 등이 주인공과 이 작품에 무슨 관련이 있는지 도통 모르겠습니다. 21세기의 한국인에게는 너무 지루하고 따분하기만 했네요. <안나 카레니나>도 주인공들의 내용보다는 농업, 정치, 사상 이야기가 더 많아서 힘들었거든요. <백치>도 거의 비슷해요. 아무튼 <죄와 벌>에 비하면 너무 형편없는 전개와 살 붙임이랄까요. 등장인물이 그렇게 많은데도 핵심 인물은 없으니 이건 뭐 산으로 가는 것도 아니고 아예 방향 자체가 없는 작품입니다. 사람들이 주인공에게 무엇을 요구하는지를 알아채지 못한다는 게 관전 포인트라면, 그로 인한 내적 갈등이나 심경 변화라도 있어야죠. 허나 공작은 너무나도 수동적이라서 어떤 사건을 발생시키는 법이 없고, 남들이 다가와 이러쿵저러쿵할 때까지 기다리기만 합니다. 그러다 보면 또 다른 상황으로 홀랑 넘어가버리며, 다음 상황은 앞의 일들과 퍽 연결점도 없어요. 내내 이런 식이라 숨이 턱턱 막혔네요. 도스토옙스키가 어지간히도 돈이 궁했나 보다 싶어지고.
러시아 문학이 진짜 골 때리는 게, 고작해야 중고등학생 나이밖에 안됐는데도 자기가 수치를 겪었다 싶으면 결투를 신청한다느니, 자기 명예를 더럽혔다느니, 콱 죽어버리겠다느니 식의 발언을 서슴지 않아요. 귀족도 아닌 일개 소시민이 이런 말들을 마구 내뱉는데, 대체 자기한테 무슨 체면이 있다고 저렇게나 욱하는 건지 알 수가 없던데요. 한국인들이 분노조절장애다 뭐다 해서 말이 많지만 러시아인들에 비할 바가 못됩니다. 기분 상해죄의 근원은 아마도 러시아가 확실하지 싶네요. 오늘날의 러시아 사람들이 도스토옙스키를 읽으면 웃고 넘길지, 저처럼 뜨악해할지 궁금하네요.
물론 이 기나긴 분량이 알쏭달쏭 한 사상만 운운하는 건 아닙니다. 이성 얘기도 했다가 가십거리도 나왔다가 돈 얘기도 오갔다 합니다. 그게 딱히 흥미 있지도 않은 데다 최소한의 일관성도 없어, 건너뛰며 읽어도 흐름에는 아무 지장이 없어요. 차라리 저자가 늘 다루던 ‘가난‘이나 좀 얘기해 줬으면 싶었네요. 그나마 일관된 거라면, 공작이 타인의 말을 곧이곧대로만 알아듣고 반응하여 바보 취급 당하고 내내 조리돌림을 당한다는 정도인데요. 이게 뭐랄까, 그래도 공작이기 때문에 다들 예의는 갖추고 있어, 제가 봐도 그들의 말속에 어떤 이중성이 담겨있는지는 알 수가 없었습니다. 오늘날 현대사회에서는 어떤가요. 타인의 말을 괜히 넘겨짚거나 확대해석했다가 문제 된 경우가 더 많죠. 그래서 텍스트 그대로만 이해하고 그 안에서 최소한의 행간만 읽어야 한다는 지적도 있고요. 헌데 어느 쪽도 아닌 이 작품에서는 정말이지 대화다운 대화를 찾아볼 수가 없어서 속 터집디다. 얘기하다 말고 갑자기 샛길로 빠지기도 하고, 이유 모를 함박웃음과 극대노가 빈번하고, 방금 전까지 철천지원수였다가 볼 키스를 하는 등 혼돈 그 자체입죠. 이것이 바로 19세기 러시아의 야생 바이브인가 봅니다.
이 작품의 치명적인 결함은 4부 초입에 나옵니다. 앞서 말한 이도 저도 아닌 전개를 잠깐 멈추고, 작가가 직접 개입해서 평범한 사람들이 사실은 더 행복하다는 점을 미주알고주알 떠들기 시작합니다. 그러니까 작가 본인 생각에도 부연 설명이 들어가질 않으면 전개가 매끄럽지 못하고, 독자들이 오해하거나 엉뚱한 길로 빠질 거란 걸 감지했다는 뜻이겠죠. 뒤늦게라도 개선해 보려는 노력은 가상하나, 오히려 안 하느니만 못했다고 생각합니다. 철저하게 해석을 독자들의 몫으로 남겨놓는 게 차라리 나았어요.
‘내가 귀엽다는 사실을 설명할 방법이 없다‘는 어떤 댓글을 보고 조언했던 어느 유튜버가 생각이 나네요. 귀여움을 설명해야 한다면 그건 귀여운 게 아니라고요. 말 그대로 귀여움은 애써서 척하거나 설명이 없이도 누구나 느껴지는 영역일 테니까요. 아기들이나 강아지, 고양이들이 이유가 있어서 귀여운 게 아니거든요. 마찬가지입니다. 저자가 창조한 백치의 ‘우수함‘은 철저히 설명되고 있어, 전혀 와닿지도 공감되지도 않는단 게 낭패라 하겠습니다. 오죽했으면 직접 개입했겠나요.
저는 흥미가 뚝 끊어지면 만회하더라도 일절 감흥이 없는 고질병 비슷한 게 있습니다. 김정아 대표님의 번역을 봐서라도 어찌어찌 완독은 했지만 내내 중도 하차가 마려웠던 작품이었네요. 횡설수설에 다름없는 이 작품도 완전 후반부로 접어들면 그럭저럭 내가 알고 있던 도스토옙스키의 폼이 나오긴 합디다. 그쯤 되니까 뭔 얘기를 하고 싶었던 건지도 알 수 있었지만, 바람피운 애인을 용서할 마음이 없듯이 눈밖에 나버린 작품에게 줄만한 애정은 남아있지를 않아서요. 이렇게까지 악평을 남긴다는 자체가 애정이 없다곤 할 수 없으려나요.
저자가 시베리아에 유배될 동안 신약성경을 읽으며 그리스도의 생애에 깊이 매료되었다는 일화는 유명하죠. 그 영향으로 그리스도의 원형을 담은 <죄와 벌>이 탄생했고, 그 작품의 흥행에 힘입어 한층 더 심도 있는 작품을 만든 것이 <백치>로 보입니다. 이것저것 재고 따지고 보완하여 낸 작품일 테니 저자가 가장 사랑한 작품일 수밖에 없겠단 생각도 듭니다. 이럴 때 보면 작가와 작품은 역시 분리하는 게 아니다 싶어요. 어쨌거나 이 작품도 그리스도의 생애를 주축으로 한 포맷입니다. 저급하고, 무식하고, 난폭하고, 오만하고, 교만한 무리들이 만만하게 여겼던 이에게 찾아와 의지하고 조언을 구한다는, 전형적인 메시아의 구원 서사입니다. 그리스도 역시 주변의 온갖 병자들이 다가와 은총을 구하고 수군대고 소문내길 반복했죠. 여하튼 이 젊은 공작에게는 그리스도와 같은 인류애가 있었고, 답답하네 못 미덥네 해도 주변인들은 이 백치 선생을 찾아와 힘과 위로를 받아 갑니다. 제가 지금 좋게 포장해놨지만 지루해 죽을 뻔했어요.
분량이 방대한 고전을 만날 때마다 이렇게까지 길어야 할 이유가 없으며 과유불급은 역시 독이다 라는 생각이 지워지질 않습니다. <백치>는 어지러운 세상을 저항정신이 아닌 정화 운동으로 변화시켜야 하며, 그래서 메시아의 존재가 필요하다는 저자의 핵심 사상을 드러내고 있습니다. 하지만 매 챕터마다 새로이 등장하는 일화들은 전혀 흥미를 유발하지 않을뿐더러 어느 메시지로 귀결되는 것도 아니었거든요. 그래서 세상을 정화할 선구자가 필요하다는 거창한 혁명의 구호를 보면서도 다소 뜬금없게만 느껴질 따름이죠. 공작의 열변을 지켜본 사교계 사람들의 반응과 제 반응은 비슷했습니다. 주인공을 쭉 지켜본 독자 입장에서도 ‘얘 뭐지?‘ 싶으면 말 다 한 거 아닌가요. 따라서 이 작품은 실패작이라고 봅니다.
저는 도스토옙스키가 작가주의라고는 생각하지 않아요. 톨스토이 못지않은 사상가이자 철학자지만 좀 더 캐주얼한 스토리텔러에 가깝다 보거든요. 또 그래서 전 세계가 그를 좋아하는 걸 겁니다. 허나 <백치>는 그만의 강점이나 매력을 전혀 담아내지 못했어요. 한편으로는 두 마리 토끼를 잡아보려다 결국 놓친, 일종의 시험작으로 보였고요. 어쩌면 <죄와 벌>로 확장된 영적 세계관을 좀 더 시험해 보고 싶었던 게 아니었나 합니다. 아무튼 글이 길어져 이만하기로 하죠. 나름대로 최대한 교양을 유지했습니다. 여기까지 따라와 주신 분들께 감사하모니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