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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ade out
  • 하루하루가 작별의 나날
  • 알랭 레몽
  • 11,700원 (10%650)
  • 2015-12-17
  • : 267

순전히 제목에 끌려서 읽은 작품이다. 프랑스 문학이라 별 기대는 안 했다만 역시나였다. 개인적으로 작별이란 말을 들으면 다신 만나지 못할 것만 같은 슬픔이 몰려든다. 그래서 이별과 작별의 차이가 무언지 검색해 봤다. 이별은 알다시피 갈라서 헤어짐을 말한다. 그런데 작별은 인사를 나누고 헤어지는 거란다. 둘 다 같은 용도로 쓰이지만 작별은 뭐랄까, 재회의 가능성을 지녔다는 느낌이 강하다. 혹여 현생에서 불가하다면 천국에 가서라도 다시 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겨자씨만 한 희망을 품게 한달까. 헤어진 마당에 무슨 희망을 바라느냐고 묻는다면 할 말은 없다. 쩝.


두 편의 중편을 묶어놓은 작품이다. 표제작인 <하루하루가 작별의 나날>만 리뷰하겠다. 두 편 모두 저자의 자전소설인데, <한 젊은이가 지나갔다>는 영 내 스타일이 아니었다. 차라리 표제작만 있는 단행본이었다면 더 좋았을 듯. 소년 레몽의 가족들은 전쟁을 피해 시골마을 트랑으로 피난 온다. 10명의 형제자매는 서로 잘 놀았고, 마을에서도 금방 적응하고 잘 지냈다. 어느덧 형들처럼 레몽도 기숙 학교에 들어가면서 점점 가족 전체가 모이는 게 어려워졌다. 언젠가부터 부모님은 싸우기 시작했고, 그래서 트랑의 집은 더 이상 사랑과 평화의 공간이 아니게 되었다. 아버지가 죽고, 성인이 된 형제들은 흩어지고, 레몽 또한 프랑스를 떠난다. 이후 어머니의 질병 소식으로 다시 트랑에 돌아온 주인공은, 옛 향수를 절대 느낄 수 없는 현실에 좌절한다.


냉정하게 말하면 흔하디흔한 일반 가정집의 역사이다. 한 집안의 자식들이 성장하여 각자의 삶을 찾아가고, 부모는 곧 세상을 떠나게 되는 것. 특별히 더 슬플 것도 없고 이상할 것도 없는 매우 자연스러운 순리이다. 물론 가족 중에 누군가가 다쳤거나 병에 걸렸거나 하는 내용들은 별일이 맞지만, 그것도 삶의 한 조각일 뿐이다. 그래서 처음부터 끝까지 덤덤하고 무미건조하게 이야기를 써 내려간다. 여전히 부모와 형제, 고향 땅과 집을 사랑하고 추억하지만 어릴 때만큼의 에너지는 아니어서 자신에게 실망하는 듯한 느낌이었다. 그게 너무 이해가 된다. 정들었던 사람과 공간, 사물들에 더는 정을 느낄 수 없을 때. 또는 정이 가지 않는 자신을 느꼈을 때. 그 모든 날들에 우리는 손을 내밀며 작별을 나누곤 했다. 순리대로 살아갈 것을 소망하며.


저자가 어떤 생각을 하며 이 책을 써냈는지는 모르겠다. 적어도 나는 슬퍼하지 않기로 했다. 붙잡으려 할수록 달아난다는 인생 법칙에 의거하여 순리대로 살자는 생각이다. 이것은 내 나름 2025년의 교훈이었다. 나의 글쓰기도, 이 공간도 언젠가 작별하게 된다면 그동안 고마웠다고 말할 수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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