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마도 내가 읽은 최초의 퀴어 문학인 듯하다. 그걸 알았다면 굳이 안 읽었을 테지만 일단 몰랐으니까 읽어봄. 이제는 ‘커밍아웃‘이 흔하게 사용되고 있으나 그 용어의 탄생은 엄청난 파장을 일으켰던 기억이 난다. 금기시하던 동성애가 스멀스멀 사회 밖으로 나오더니 어느덧 하나의 문화 현상처럼 자리 잡게 되었다. 내가 느낀 바에 의하면 우리 문화에서의 동성애는 곧 ‘남자+남자‘를 뜻했다. 더는 동성애라고 해서 놀라지 않게 된 지금에도 그건 여전히 남성들의 문화처럼 다뤄지고 있다. 방송이나 유튜브에서도 게이는 개그 소재로 사용되는 반면 레즈비언에 관련된 콘텐츠는 절대 나오지 않는다. 그만큼 ‘여자+여자‘는 수면 아래에 있었다. 내가 남자라서 그런가. ‘남자+남자‘는 꺼림직한데, ‘여자+여자‘는 별생각이 없다. 여자끼리 팔짱도 끼고 포옹도 해주고 하는 걸 많이 봐와서 그럴 거다. 그런 여자들만의 문화 속에서는 자신이 진짜 동성애자인지도 모르고 분위기에 휩쓸리기도 할 듯하다. 그게 <항구의 사랑>을 읽으면서 느낀 점이다.
별점이 짠 것은 순전히 재미가 없어서이다. 정체성에 눈 뜬 소녀의 학창 시절을 기록한 일기장 느낌. 그걸 덤덤하게 읽어가는 내레이션 같았달까. 논란을 의식해서인지 조심성이 과한 탓에 이도 저도 아닌 작품을 낳았다. 차라리 ‘진짜‘ 일기였다면 훔쳐보는 재미라도 있었을 건데. 내가 ‘정보원‘들에게 들은 바로는 여중-여고는 남자에 굶주린 아이들과 전혀 그럴 생각이 없는 아이들이 반반이라고 했다. 후자 중에는 남자 연예인이나 애니메이션 주인공을 덕질하는 걸로 만족하기도 한다. 현실 남자든 디지털 남자든 뭐라도 좋아하는 건 자연스러운 현상이지만, 어느 쪽에도 관심이 없는 아이들은 소위 별종 취급을 받는다. 하물며 동성을 좋아한다는 건 별종을 넘어서 돌연변이나 다름없는 셈이다. 이것을 곱게 받아들일지 말지는 각 지역, 학교, 세대의 문화 특성에 달려있다. 다행히 주인공과 저자의 학창 시절에는 동성애를 막 걸고넘어지진 않은 듯하다. 그러니 이렇게 옛일을 추억하며 책으로까지 낸 거겠지.
주인공 준희는 2차 성징이 시작된 초6부터 대학생이 될 때까지 여러 ‘후보자‘를 만난다. 그들은 하나같이 시원시원하고 털털한 성격이며, 외모나 행동에서 남성미를 느낄 수 있는 부류였다. 그렇다면 어느 정도 남자다운 남자에게 끌릴 법도 할 듯한데 그게 아니다. 남자들은 여자들의 예민하고 섬세한 감정을 이해해 주지 못하지만 같은 성별끼리는 그게 되거든. 사랑과 우정을 동시에 이룬다니, 이 얼마나 가성비 좋은 전략인가. 일반적인 커플의 경우 애인 주변에 있는 모든 이성이 다 ‘적‘으로 간주되지만, 동성 커플에게는 그 같은 적들도 없었다. 간혹 동성 커플을 보며 괜히 따라 해보는 경우도 있지만 거진 한때의 철없는 불장난으로 끝나고 만다. 그걸 알기 때문에 여학생들의 동성애를 막 혐오스럽게 생각하진 않는다. 만약 다 커서도 그렇다고 하면... 취향 존중한다. 반대로 남자 커플은... 알아서 생각하시길.
이 작품은 딱히 스토리랄게 없는 작품이라서 길게 리뷰할 것도 없다. 처음 읽은 퀴어문학치고는 매우 순한맛인데 그래서 참 다행이라는 생각이 든다. 여자들끼리 사랑에 빠지는 구조나 원리는 대강 이해했는데, 그게 남성 커플한테도 동일하게 적용되는 건가? 어쩐지 아닐 것 같은데, 그러면 대체 남자끼리 스파크가 튀는 건 어떤 이유인가? 아, 아니다. 전혀 알고 싶지 않습니다. 비록 저는 오메가 메일이지만 그래도 여자가 좋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