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 고전문학 위주로 읽다 보니 아무래도 국내 문학을 안 찾게 된다. 국내 문학은 앞서 힘겨운 작품을 완독한 뒤에 숨 좀 돌릴 겸 읽곤 했는데 그마저도 잘 안 하게 된다. 올해는 고작 2권 읽었더라. 사실 내가 국내 문학하고 멀어지게 된 이유가 있는데, 몇 년 전부터 나오는 주류 작품들이 죄다 sf 장르여서 그렇다. 그 트렌드의 시작은 아마도 정세랑 작가였던 것 같다. 그 후로 국내 작가들이 우후죽순 근미래 sf 일상물을 찍어내는데, 일단 나님은 그 바닥을 썩 좋아하질 않는단 말이다. 한동안 관심을 끊었더니 요즘 국내 작가라는 누가 누군지도 잘 모르겠어서, 그나마 내가 잘 아는 선우 행님의 <도깨비 복덕방>을 읽어주었다. 줄곧 묵직한 작품만 내다가 갑자기 힐링 물이라니, 결국 이 행님도 자본주의에 굴복했구나 했는데 읽어보니 그게 아니었다. 이제야 비로소 내가 알던 과거의 비토씨로 복귀하셨더군. 개인적으로 반갑고 기뻤다.
말 그대로 도깨비가 운영하는 복덕방의 소유지(매물)에서 단기 거주하게 된 인물들의 에피소드들을 다루고 있다. 어쩌다 그 복덕방을 찾게 된 사람들은 세상에 버림받아 물러날 곳이 없는 지경에 이르렀고, 그들의 입장을 꿰뚫어 본 도깨비들은 복덕방으로 그 발걸음들을 이끌었다. 평범한 사람의 외모를 하고 있는 그들이 도깨비라는 걸 알리 없는 손님들은 뭔가에 홀린 듯이 도깨비와 계약을 맺고 소개해 준 집들에 들어가 고통에서 잠시나마 해방 받는 휴식기를 가지게 된다. 이렇게만 보면 뭔가 시시한 얘기들 같지만, 이 작품의 액기스는 복덕방을 방문하기 전까지의 손님들 이야기이다. 오늘날 우리 사회에서 좀처럼 해결되지 않는 문제와 고충을 담고 있어, 마치 나의 일처럼 와닿고 느껴지는 그런 게 있었다. 반대로 나 같은 기분이 들지 않는 독자가 있다면 아직 살만하기 때문일 것이다. 아무튼 각 편의 분량이 길지 않아 줄거리는 생략하는 게 맞겠다.
한 2010년대까지만 해도 한국과 일본에서 사회소설이 참 많이도 출간되었다. 그때는 이 같은 사회 이슈에 한 명이라도 더 관심을 갖게 하는 것이 목적이었다. 그런 노력의 덕분일까, 이제는 갖가지 문제마다 국민의 높은 관심과 참여도를 볼 수가 있다. 헌데 그러면 뭐 하냐. 해결되거나 나아지기는커녕 갈수록 모든 것이 악화돼가고 있다. 일자리는 점점 줄어들고, 경기는 더욱 침체되고, 인심은 전부 사라지고, 교육들도 다 무너지고 있다. N포세대는 NN포세대가 되었고, 근면 성실로 열심히 살아본들 보상 하나 없는 현실인데. 자기가 보고 싶은 것만 보고 사는 인간들마저 한숨짓고 좌절하는 오늘날, 어쩌면 개개인이 할 수 있는 일이 더는 없다고도 생각된다. 그런 나에게 도선우 작가는 ‘사는 것 자체가 목적이 되어야 한다‘고 강조하고 있었다. 나같이 삶에 의미를 찾고 부여하는 타입들은, 이제 그런 태도와 자세를 좀 내려놓긴 해야 한다. 어딘가에서 본 건데 인생이란 하나의 산책과도 같다고 하였다. 우리가 산책을 하러 나갈 때 거기에 어떤 대단한 의미를 두는 건 아니지 않냐면서. 그냥 걷는 것 자체가 목적인 산책처럼, 우리네 삶과 인생도 그럴 필요가 있다는 얘기였다. 그런 맥락으로 선우 행님은 이 작품을 써낸듯하다. 뭔 당연한 소리를 하고 있냐는 분들은 아직도 인생을 헛살고 있는 것이다. 그 무엇도 당연한 것은 없기 때문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