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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ade out
  • 어느 인생
  • 기 드 모파상
  • 12,420원 (10%690)
  • 2019-10-23
  • : 186

인생을 다루는 소설은 언제 읽어도 질리지 않고 재미가 있다. 예나 지금이나 사람 사는 게 다 거기서 거기인지라, 나와 전혀 다른 남들의 인생을 들여다봤자 새로울 것도 없고 얻어 갈 것도 없긴 하다. 그럼에도 그 어떤 이야기보다 가장 인간적인 성장 서사에서 배울 점이 가장 크다고 하겠다. 현존하는 성장 소설은 하나같이 딱하고 우울하고 어렵고 짠한 생애를 담아낸다. 다만 주인공들이 똑 부러지느냐 어리숙하느냐, 독립적이냐 관계 의존적이냐에 따라 책 내용은 교훈이 되기도 하고 경고가 되기도 한다. <어느 인생>은 철저하게 경고에 관한 내용인데, 정말 몇 번이나 화딱지가 났는지 셀 수 없을 만큼 갑갑했다. ‘초라한 진실‘이라는 부제도 그냥 그랬는데, 인생의 어느 지점이 초라하단 건지 잘 모르겠더라고.


한 중반까지는 거의 내용이랄 게 없고, 온통 배경 묘사와 상황 설명으로 가득하여 이번에도 똥 밟았구나 싶었다. 하여간 프랑스 작가들은 죄다 겉멋만 들어가지고 소설도 시처럼 써버릇하는 게 정말 꼴불견이다. 그 나라는 현대작가들도 다 똑같다. 적당히라는 게 없이 늘 과해서 몰입감도 흡인력도 영 맥을 못 춘다. 그렇다 보니 ‘에밀 졸라‘같은 작가는 너무 희귀해서 그 자체로 유니콘 취급을 받는 것이다. 굳이 따지면 모파상의 스타일도 양반은 못된다. 분명 날것의 감성인데 자꾸 엉뚱한 데서 우아함 한 숟갈, 고상함 한 숟갈 넣는 게 아주 꼴 뵈기 싫드라. 내가 또 그런 불순한 의도는 기가 막히게 잘 캐치하거든. 첫 작품이라니까 곱게 넘어가겠다만.


불필요한 묘사가 많아서 그렇지, 스토리 자체로는 낫 배드였다. 남작 부부의 딸, 잔느는 수녀원 생활을 끝마치고 집으로 돌아온다. 도시보다 시골생활이 더 좋았던 소녀는 그렇게 마음껏 해방감을 누렸다. 어느 날 사제가 소개해 준 자작과 떠밀리듯 결혼하게 된 잔느. 본인의 의사도 없이 유부녀가 된 것도 좀 그랬지만, 남편이 성격파탄자로 돌변하여 결혼생활에 대한 환상이 와장창 깨졌더랬다. 내게는 딱 여기까지가 ‘운‘이 없었다고 생각되고, 이후로는 잔느가 제 팔자를 꼬아놨다고 밖에 설명이 안되었다. 수녀원을 나온 걸로 보아 그녀의 교육수준이 낮지는 않을 텐데 어째 하는 생각들마다 이다지도 감상적인지 원. 그래서 남편한테 이리저리 휘둘리고, 아무 하는 일도 없이 ‘존재‘하기만 하는 삶을 살아갔다. 진짜 콩 심은 데 콩 난다고, 잔느의 부모도 순박하고 물러터진 성격이라, 폭군 같은 사위한테 깨갱하고 있었다. 잘못 돌아가는 걸 느끼는데도 왜 다들 가만히만 있는 걸까. 좋게 좋게 넘어가는 것도 정도가 있지, 수치스러워했다가 히죽거리길 반복하는 게 나로선 도무지 이해가 안 되던데.


이 작품의 테마는 ‘간통‘이다. 주인공 외에 모든 인물이 간통에 빠져있다. 그런 사실이 하나둘씩 드러날 때마다 잔느는 멘붕과 현타를 받고, 나중 가서는 인간의 추악함에 굴복하고 타협해버린다. 마음 둘 곳 없었던 그녀는 오직 아들에게만 관심과 정성을 쏟았는데, 아니나 다를까, 애지중지 금지옥엽인 아들은 둘도 없는 등골 브레이커로 자라난다. 주변인들이 잔느에게 정신 좀 차리라고 그리 일러도, 아들바보였던 잔느는 당장 파산하더라도 아들에게 헌신하겠단다. 자식에게 광적인 집착을 보이는 것도 이해가 된다. 수많은 실망, 배신감, 상처, 억압으로 눈물이 마를 날 없었던 그녀에게 낙이라고는 아들 하나뿐이었다. 하지만 아들의 성장과 미래는 생각지 못하고, 평생 어미 곁에서 재롱잔치나 하길 바라는 건 결코 제정신이 아니었다. 남편의 바람에도 화 한번 못 내고, 가톨릭 사제의 으름장에도 꼼짝 못 하고, 불효막심한 자식한테 쓴소리도 못하는 그녀. 내가 갑갑해한 포인트는, 원래부터 잔느가 고분고분한 성격이 아니라는 데에 있었다. 그렇다고 그녀가 가정의 평화를 위해, 가문의 평판을 위해, 내조의 여왕 소리가 듣고 싶어서 참고 견딘 것도 아니었다. 잔느의 진짜 문제점은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이 작품의 원제는 <어느 인생>이지만, 국내에는 <여자의 일생>으로 출간되어왔다. 아마 주인공이 여자라서 그랬을 텐데, 인생이 그토록 초라한 것이라면 성별이고 계급이고 다 무슨 소용이랴. 누구에게나 닥쳐오는 고난과 역경 앞에서 왜 나에게 이런 일이 생겼냐며 통탄하기만 해서는 안 될 일이다. 단 한 번도 아픔에 맞선 적이 없었던 잔느를 보면서 연민은커녕 인생을 날로 먹는다는 생각뿐이었다. 이처럼 모파상이 주는 경고의 메시지는 명확하다. 내 방식대로 말하자면, 바른 삶을 추구하라는 것이다. 성경 구절 중에는 이런 말이 있다. ‘너희가 선한 데 지혜롭고 악한 데 미련하기를 원하노라(롬 16:19).‘ 그러니까 선하기만 한 것은 본이 안된다는 뜻이다. 정의는 반드시 승리한다던 만화영화 속 대사가 현실에서 얼마나 들어맞았던가. 따라서 흘러가는 세월에 나를 맡기기만 한다면 영락없는 초라한 인생이 될 테니, 괜한 데에 정신 팔려서 주위를 못 살피는 일이 없도록 해야겠다. 것보다 모파상 당신, 지금 투아웃이요. 쓰리아웃 되면 진짜 얄짤없습니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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