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은 여러 가지로 바빠서 도저히 독서할 새가 없었다. 개인적인 일도 있고 해서 답답해진 마음을 달래고자 하여 헤세를 집어 들었다. 항상 느끼지만 헤세의 작품은 영혼이 갈하고 메마를 때 읽어야 한다. 이번 작품도 많은 위로와 울림을 주었는데 아무리 봐도 제목은 다시 지어야 할 것 같다. 제목에 게르트루트는 주인공이 좋아한 여인의 이름인데, 막상 읽어보면 그녀와의 사랑보다도 음악을 통한 주인공의 성장과 번뇌에 더 맞춰져있단 말이다. 아무튼, 옛날 분들이 다 그렇지만 독일 작가들도 제목을 참 못 짓는 것 같다.
바이올리니스트를 꿈꾸던 주인공 쿤은 여자친구와 눈썰매를 타다가 사고 난 뒤로 다리 한쪽을 못쓰게 된다. 수술 후 산속 어느 별장에서 있는 동안 음악적 영감이 마구 샘솟아 작곡에 전념하면서 아픔을 달래는 쿤. 그의 재능을 발견한 가수 무오트와 친해지면서 쿤은 프로 음악인의 세계로 향한다. 인기 많고 발도 넓은 무오트 덕분에 쿤의 곡들은 점점 알려지기 시작했고, 무대에서 쿤의 곡을 노래하는 무오트 또한 날로 유명해져갔다. 하지만 두 사람에게는 해소되지 않는 갈증이 있어서, 기쁨과 만족이 좀처럼 오래가지를 못했다.
쿤과 무오트에게는 ‘여백‘이 있었고, 그곳을 사랑으로 채워넣고자 했다. 그러나 불구자인 쿤은 이성에게 마음을 전하기가 두려웠고, 반대로 무오트는 마음을 여는 법이 없었다. 누구는 표현 한 번 하기도 어려운데, 누구는 여자들에게 상처나 주고 있으니 쿤의 마음이 얼마나 쓰라릴까. 그런 무오트가 괘씸하면서도 막 멀리할 수 없었던 것은 그의 불안정한 영혼이 여러모로 쿤 자신과 닮은 이유에서였다. 아무튼 이번에도 헤세 표 공생관계인가 했더니, 게르트루트와의 불투명한 삼각관계로 이어지며 예정된 파국을 맞게 된다.
주인공은 오페라를 위한 곡 작업에 매진한다. 때마침 나타난 여가수 게르트루트가 쿤의 곡들을 불러주면서 작업에 도움을 주게 된다. 무오트가 쿤의 음악성을 알아봐 주었듯이, 쿤은 게르트루트의 음악성을 발견한다. 그렇게 둘만의 시간을 보내면서 끝내 그녀를 사모하게 돼버린 쿤. 그녀는 친구 사이로 남기를 원했고, 쿤도 기분 좋게 체념하였다. 사랑하는 마음보다 더 커다란 나의 단점과 열등감. 차이고서 또 한 번 검증된 나의 현주소. 그래, 슬프긴 해도 여기까진 괜찮았다. 이후 그녀는 곡 작업에 합세한 무오트에게 반해버리고 만다. 슬픈 티도 낼 수 없고 축하해 줄 수도 없는 착잡함과, 내 음악에 협력해 준 고마움이 뒤엉켜 어쩌지도 못하는 그런 상황. 쳐낼 수도 없는 이 애매모호한 관계를 보면서 옛 생각에 그만 눈물을 흘렸다.
한때는 예술가들의 마음껏 펼칠 수 있는 타고난 재능이 참 부러웠었다. 하지만 그들이 무언가에 기대지 않고선 달랠 길 없는 공허함의 실체를 알고부터는 전혀 부럽지가 않다. 내가 본 천재들은 창조물보다도 창조해나가는 과정에 더 진심이었다. 마침내 결과물이 나오면 뿌듯하고 후련해하기보다 괜히 허무하고 허탈해지는 것이다. 흔히 슈퍼스타가 무대를 마치고 나오면 느낀다는 고독과 외로움처럼. 쿤과 무오트 또한 성공에 상관없이 채워지지 않는 영혼 때문에 고뇌하고 있다. 내내 그러다가 끝나버려 살짝 아쉬운 작품인데, 그래도 볼거리가 풍부해서 대만족이었다.
아무리 힘껏 살아봐도 불구자라는 꼬리표 때문에 몇 번이고 좌절했던 쿤의 심정을 이해한다. 나 역시 음악을 했고 다리를 다친 몸이라서, 남들 앞에 작아지기만 하는 이유를 누구보다도 잘 안다. 하지만 살려면 어떻게든 주변에 손을 뻗어야만 했고, 그렇게라도 해서 경직된 내 영혼에 변화를 주지 않으면 안 되었다. 그처럼 자살을 결심했던 주인공도 소원했던 부모와의 관계 회복을 통해서 삶의 의욕을 되찾았다. 이것은 사랑받을만한 존재가 아니라고 믿어왔던 사람이, 그 부정한 마음에서 벗어날 가능성을 느낀 위대한 순간이라 하겠다. 세상에 이로움을 가져오고 행복을 기여함은 더없이 훌륭한 일이지만, 만인에게 추앙받더라도 내 사람에게 인정받지 못하면 그것만큼 슬픈 일도 없으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