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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황금 물고기 (무선)
  • J.M.G. 르 클레지오
  • 12,600원 (10%700)
  • 2009-12-15
  • : 4,219

2008년 노벨 문학상 수상작인 <황금 물고기>는 블로그 새내기 시절, 이웃분들이 꼭 읽어보라며 추천해 주었던 작품이다. 그때의 나는 고전을 읽을만한 수준도 못되었거니와 내 성격상 인기도서에는 영 손이 가지 않은 탓에 이제야 읽게 되었다. 그리고 내 예상대로 그렇게 호들갑 떨 정도의 작품도 아니었다. 노벨 문학상의 기준을 모르겠으니 그건 그렇다 쳐도 스토리, 주제, 메시지 중 어느 하나 뚜렷한 것이 없었다. 기존 평들을 보면 스토리보다는 문장력이 돋보이는 작품으로 치켜세우던데 그것도 딱히…….


<황금 물고기>는 납치당한 아프리카 소녀의 생존기이다. 솔직히 나는 프랑스 출신의 백인 남성이 흑인의 생애를 논하는 것 자체가 좀 거시기하다. 아프리카에 20년도 넘게 살았었다고 하니 흑인들에 대한 애정이 남다를 순 있겠다. 그렇지만 그들의 민족성이나 정체성에 대해서 뭐 얼마나 잘 알기에 대변을 하느냔 말이다(심지어 이이는 서울 배경에 한국인을 주인공으로 한 작품도 써냈다는). 작중에서 흑인들의 사회적 시선과 대우가 적나라하게 묘사되고 있지만 냉정히 바라보면 전부 겉핥기 식의 중계방송일 뿐이다. 그럴거면 차라리 에밀 졸라의 자연소설처럼 써서 풍부한 해석을 갖도록 하는 편이 어떨는지.


어느 흑인 노파에게 팔린 꼬마 라일라는 감금생활 속에 하녀로 살아간다. 노파의 아들 부부와 이웃에게 학대 및 성추행을 당한 라일라는 탈출 후 어느 여인숙으로 피난한다. 고삐 풀린 소녀는 마침내 자유의 몸이 되어 여기저기 쏘다니며 도둑질에 맛 들인다. 또한 여인숙의 문란함을 날마다 직관하여 성에 대한 감흥마저 없어진다. 이처럼 현실의 온갖 어두운 면을 봐버린 라일라는 오히려 삶에 의혹을 가지는 법이 없었다. 심지어 자신을 잡으러 다니는 노파의 아들 부부와, 갑자기 다가오는 낯선 남자들에게 도망치기도 다반사인데 말이다. 보통 이런 입장이면 현실 부정, 신세 한탄, 적개심, 망연자실 중에 하나였을 텐데, 라일라는 어떤 일그러짐도 없이 타고난 생존 본능으로 잘만 헤쳐나간다. 이 말 같지도 않은 설정 붕괴 때문에 어떤 아픈 장면에서도 몰입하지 않을 수가 있었다. 이걸 노린 거라면 노벨상 인정한다.


훔친 돈이 좀 모였는지, 어느 임신한 언니와 배 타고 프랑스로 넘어간 그녀. 그 악몽 같았던 아프리카를 떠나와 인생 2라운드를 시작해 볼 랬더니, 프랑스는 더 끔찍한 지옥이었다. 불법 이민자들의 단속도 심했고, 부랑자와 깡패와 마약범 등등 위험해 보이는 인간들로 넘쳐나는 백인들의 무대였다. 어찌어찌해서 인맥을 만들고 거처도 구하고 일자리도 얻어냈지만, 주변에서 혹은 관계자가 그녀를 배신하고 성폭행하는 일이 반복되었다. 동네를 옮겨 다니다가 미국으로 건너가서도 사정은 별반 다르지 않았다. 정녕 보고 있으면 나까지 남성 혐오에 걸릴 지경이다.


라일라는 삶의 목표 따위가 없었기 때문에 남들의 권유대로 제 몸을 맡겼다. 누가 오라 하면 오고, 가라 하면 가는, 철저하게 남들이 정해준 기준에 휘둘리며 살았다. 백인들의 세상에서 흑인은 자유롭지 못했고, 그래서 아프리카에 있을 때만도 못한 처지라고 할 수 있었다. 언젠가 죽으면 고향에 묻어달라는 친구의 할아버지 유언에, 자기만 모르는 고향과 정체성을 고민해 보게 된다. 그리고 ‘왜 언젠가는 도망치지 않을 수 없는가?(212p)‘라는 책 속의 문장을 보면서, 자신이 표류하는 한 마리의 물고기라고 생각한다. 다만 작중에서 ‘황금 물고기‘라는 표현은 없었는데, 그렇다면 황금의 뜻이 뭔지 해석해 보자. 어딜 가나 꼬이는 남녀들로 보건대 라일라의 비주얼은 제법 나이스한 편일 게다. 한 번도 좋은 결말은 없었지만 그녀가 분에 넘치는 관심과 사랑을 받은 것도 사실이다. 따라서 라일라는 남들을 자신에게로 끌어당기는 빛이 있었다고 하겠다. 문제는 물고기가 주목받고 눈에 띄어봤자 하나도 좋을 게 없다는 것. 빛나면 빛날수록 포식자들의 밥이 될 테니 말이다.


정리하려고 보니 꿈보다 해몽이 아닌가 싶다. 그냥저냥 읽었지만 클레지오를 다신 볼 것 같진 않다. 솔직히 노벨상은 나랑 잘 맞지가 않음. 부커 상도 좀 그렇고. 그나마 공쿠르 상이 읽을만했던. 아무튼 요번에도 꽝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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