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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ade out
  • 심판의 날의 거장
  • 레오 페루츠
  • 11,520원 (10%640)
  • 2021-05-10
  • : 340

환상문학의 대가로 알려진 레오 페루츠. 작가 소개를 보면 오스트리아 소설가인데 독일어권 문학의 거장이란다. 문득 짬뽕 문화권을 가진 루이스 세풀베다가 떠올랐는데, 이런 작가들의 세계관은 확실히 멀쩡함과는 거리가 있어 보인다. 레오 페루츠가 추구하는 환상문학은, 추리 형식에다 마술적 리얼리즘을 섞은 독특한 구성 방식이다. 초중반까진 현실감 있게 흘러가다가 교묘히 현재와 환상의 경계를 흩트려서 길을 헤매게 만든다. 라틴문학을 싫어하는 나에게 이런 스타일은 정말 모 아니면 도라서, 설정이 과하다 싶으면 집중력 감소로 흥미가 뚝 떨어져 버린다. 전에 읽었던 <9시에서 9시 사이>는 적당한 설정값으로 재밌게 읽었던 반면, <심판의 날의 거장>은 솔직히 무리수였다고 본다. 1923년 작품이니 그땐 신선했을지 몰라도 지금은 글쎄다.


간단한 내용에 비해 이중삼중의 액자소설이라 혼란스러울 수 있겠다. 유명한 궁정 배우가 총기 자살을 하고, 주인공 요슈 남작이 용의자로 지목된다. 현장에서 발견된 그의 파이프 담배가 증거였다. 확실한 알리바이가 있음에도 배우의 아내와 과거 연인이었고, 배우가 자살할 만한 정보(거래은행의 파산)를 쥐고 있었다는 이유로 궁지에 몰리게 된다. 즉, 피해자의 아내를 흠모한 나머지 남편을 죽인 게 아니냐는 합리적 의심이었다. 그런데 어째서인지 주인공은 해명하거나 반박하려 들지 않는다. 오히려 아무런 관계도 없는 한 엔지니어가 이 사건을 풀겠다며 탐정을 자처한다. 제법 흥미로운 전개였는데 딱 여기까지만 재미있었고, 이다음부터는 내가 원하던 방향이 아니어서 그만 텐션이 죽어버렸다.


피해자는 죽기 전, 어느 해군 장교의 기묘한 자살 사건을 이야기했다. 그것만큼이나 배우의 죽음도 의문점 투성이였다. 그리고 얼마 뒤에, 피해자의 후배이자 약국 직원인 여성의 죽음도 등장한다. 이렇듯 해석불가한 죽음이 연달아 발생하자, 그 여성이 언급했던 ‘심판의 날의 거장‘의 단서를 찾아낸 엔지니어도 곧 죽고 만다. 엔지니어가 발견한 의문의 책에는, 어떤 묘약으로 악마의 환영을 본 예술가의 정신착란 이야기가 들어있었고, 뒤에 적힌 묘약의 제조법이 찢겨나가있었다. 아마도 거기 적힌 대로 따라 한 엔지니어가 죽었을 것이었다. 아아, 나는 이런 오컬트 식의 결말을 원한 게 아니었는데. 아직 못다 한 내용도 있고, 마지막에 반전 같지도 않은 반전이 남아있다만 이쯤 적으련다. 이런 건 내 스타일이 아니어유...


아쉬움과 별개로 재미가 없는 편은 아니었다. 겨우 두 작품 읽었을 뿐이지만, 이 분도 타고난 이야기꾼이란 걸 인정해야겠다. 나는 페루츠의 뚜렷한 개성보다도 서사의 독창성에 점수를 주고 싶다. 총 11권의 장편을 썼다는데 국내에는 겨우 3권만 나와있더라. 다른 작품들도 궁금한데 분위기를 보아하니 더 출간해 줄 것 같지도 않고. 갈수록 독서 인구가 줄고 있어서 돈 안되는 작품들은 점점 밀려날 테지. 과연 문학의 멸종은 현실이 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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