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기는 나중에 조사하면 된다. 흉기만 찾아내면 사건은 끝난다. 즉 흉기를 찾아내지 못하면 사건은 끝나지 않는다. 미즈노 다다시의 자백을 받아 낼 수 있다면 상관없지만 지금 미즈노는 의식도 없고 취조할 수 있는 상태가 아니다. 신문을 위해 며칠 기다렸는데 용의자가 부인한다면 체면이 말이 아니다. (낭떠러지 밑)- P17
형사들 사이에서 자그마한 안도의 한숨이 퍼져 나갔다. 무모한 백컨트리를 시도했다가 조난 사고를 낸 조난자에게 화가 나지 않는 것은 아니지만, 살아 있다는 소식을 들으면 무엇보다 다행이라는 마음이 솟아오르는 법이다.
분위기를 다잡듯 오다가 말했다.
"가쓰라, 계속해." (낭떠러지 밑)- P24
"앗, 잠깐......."
누카다의 안색이 변했다.
동시에 무라타도 개운치 않은 표정을 지었다. 무라타도 스스로 키워 온 조사 절차와 기술이 있는데, 상사인 가쓰라가 따라와서 무라타에게는 허용되지 않는 아슬아슬한 질문을 한다. 수사반에서 둘째가는 실력자라는 무라타의 자부심은 전혀 아랑곳하지 않는 방식이다. (낭떠러지 밑)- P28
업무 영역이 아니라고 눈을 감기에는 인간의 목숨은 너무 무겁다. (낭떠러지 밑)- P34
‘노파심에 말해 두지만 이건 잠정 의견이야. 감정서는 나중에 보내겠네. ……물론 결과가 크게 바뀔 리는 없지만. 메모할 준비는 되었나?"
"예."
말은 그렇게 했지만 가쓰라는 통화 녹음 기능을 켰다. 스마트폰 너머에서 종이 다발을 넘기는 소리가 들렸다. (낭떠러지 밑)- P34
"다시 말해 흉기는 현장에 있었지만 그것이 흉기라는 사실을 알아차리지 못했을 경우는 부정할 수 있다."
혼자뿐인 회의실에서 가쓰라는 그렇게 중얼거렸다.
차를 한 모금 마셨다. 맛있는 차다. 도네 경찰서에는 차를 맛있게 끓이는 경찰관이 있는 모양이다. (낭떠러지 밑)- P47
현경 수사1과 가쓰라 팀 형사들은 상사가 밤사이 자기들을 제치고 사건을 해결했다는 소식을 들었다. 그들은 가쓰라를 좋은 상사라고 생각하지는 않지만, 가쓰라의 수사 능력을 의심하는 사람은 단 한 명도 없다. (낭떠러지 밑)- P58
형사가 빠른 걸음으로 물러나자 가쓰라는 빳빳하게 다린 셔츠로 갈아입었다. 넥타이도 고쳐 매고 재킷을 걸치고 휴게실을 나섰다.
창밖을 보니 반달이 환히 빛나고 있었다. 달빛이 밝혀 주는 하늘은 구름이 적었다. 날씨는 감식 효율을 크게 좌우한다. 사건 발생 소식이 들어오면 먼저 하늘을 보는 것이 가쓰라의 습관이었다. (졸음)- P64
임의수사에는 한계가 있다. 강도치상 사건의 수사본부로서는 다구마를 체포해 조사하고 싶지만 전과가 있다는 이유만으로는 당연히 체포할 수 없다. 하지만 지금 사고가 발생했다. 사고는 무릇 발생해서는 안 될 불행한 일이지만 일어난 이상 수사본부에는 절호의 기회다. 형사가 말했다.
"위험운전치상죄입니까?" (졸음)- P70
경찰관은 담당 사안이 늘어나는 것을 기뻐하지 않는다. 하지만 자기가 담당해야 할 사안을 다른 부서에 빼앗기는 것은 그 이상으로 싫어한다. (졸음)- P73
가쓰라는 현장을 확인해 문제를 파악하고 방침을 정해 명령을 내렸다. (졸음)- P74
가쓰라는 잠시 고민하다가 책상 위에 놓인 자료를 힐끔 보았다. 도착을 기다리는 자료 중 방법 카메라 데이터는 들어왔지만 감식 보고서는 아직 오지 않았다. 당장 할 일은 없다.
"나도 입회한다. 기다려."
‘......알겠습니다.‘
전화 너머에서 무라타가 떨떠름한 표정을 짓는 게 눈에 보이는 듯했다. 상사가 진술 청취에 입회하면 형사는 일하기 거북해진다. 그것을 알면서도 가쓰라는 부하가 사람을 만날 때 가급적 입회한다.
사람의 표정을 보고, 목소리를 듣고, 인간상을 대략적으로 파악한 다음, 가쓰라는 그 모든 것을 의심한다. (졸음)- P87
히라이 병원은 경찰서에서 겨우 100미터 남짓한 거리였다. 걸어가도 되는 거리였지만 가쓰라는 관할서 형사에게 명령해 차를 몰도록 했다. 무언가 긴급사태가 발생했을 때 가까운 곳에 차가 없는 사태는 피해야 한다. (졸음)- P87
반대편 차선을 지나간 차량이 있었다는 단순한 사실을 일일이 기억하기는 어렵다. 신경을 곤두세워야 하는 미행이라는 작업 중에는 더욱 그러하다. 그렇다 해도 오카모토의 승용차가 지나간 것을 기억하지 못한 형사들이 앞으로 이번 수사에서 중요한 임무를 맡을 일은 없을 것이다. (졸음)- P96
과장까지 승진한 니토베는 부하들이 자신에게 충실하기를 요구한다. 달리 말하면 니토베는 예스맨만 곁에 두기 좋아하고, 중심으로 하는 진언보다 노골적인 아침과 추종을 좋아했다. 경찰이라는 상명하복 조직에서 윗사람이 까마귀는 하얗다고 하면 아랫사람은 맞는 말씀이옵니다, 하고 따르는 것이 올바른 자세라고 믿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런 니토베의 부하 중에 그의 안색을 살피는 형사는 거의 없다. 니토베 스스로가 자기 기분이나 맞추는 형사와 유능한 형사를 비교해 보고 후자만 수사1과로 데려오기 때문이다. 어딘가 한 명쯤, 심복으로 삼을 만한 유능한 형사가 없는지 간절히 바라면서 니토베는 결국 자기 뜻을 제대로 알아주지 않는 실력주의 집단을 조직해 왔다. 때문에 나토베는 부하들을 대할 때 늘 심기가 불편하다. (졸음)- P110
"목격 중언이 나왔다고 들었네. 몇 건인가?"
"네 건입니다."
스마트폰 너머에서 니토베가 순간 침묵했다. 니토베 또한 실력으로 승진을 거듭한 경찰관이다. 심야 3시에 발생한 교통사고에 네 건의 목격 증언이 있었다는 말을 듣고 운이 좋았다고 기뻐하지는 않는다. (졸음)- P111
폭력이나 다름없는 졸음이 가쓰라를 덮쳤다. 미간을 힘껏 문지르며 겨우 졸음을 몰아냈을 때, 가쓰라는 자신이 질문의 답을 알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런가……." (졸음)- P122
그렇다. 시체는 나올 것이다…… 하지만 어째서? 누군지는 몰라도, 어째서 시체를 토막 냈을까? 그 이유를 알아내지 못하면, 설령 모든 부위를 찾아내고 피의자를 알아내도 이 사건의 진상은 보이지 않을 것이다. 가쓰라는 결국 모든 것은 이 ‘어째서‘로 귀결될 것이라고 예감했다. (목숨 빚)- P138
가쓰라는 문득 자기가 아직 신참 형사였던 시절을 떠올렸다. 형사과에서는 위화감은 철저하게 조사하도록 훈련받았다. 그 시절, 일반 기업에 평생 몸담았던 71세 남성이 정년 후에 경비원으로 일을 한다면 뭔가 특별한 사정이 있어 금전이 필요한 건지 조사하라는 명령을 받았으리라. 지금 가쓰라는 딱히 뒷조사를 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다. (가연물)- P236
"나(오다 지도관)도 윗선도 자네(가쓰라 반장) 팀의 검거율은 높이 사고 있네. 하지만 가쓰라 팀은 너무 자네의 원맨팀이 아닌가 하는 우려도 있어. 자네의 수사 수법은 독특해. 어디까지나 규범적으로 정보를 수집하면서 마지막 한 걸음을 혼자 훌쩍 뛰어넘는다. 그건 아마도 배우고 싶다고 배울 수 있는 수법이 아닐 테지. 자네도 언제까지고 현경 본부 반장으로 머물 수는 없어. 부하들이 실력을 쌓지 않으면 현경의 수사력은 저하된다." (가연물)- P242
텔레비전 같은 언론 보도에서 사건 수사에 직접 도움이 되는 정보가 나오는 일은 거의 없다. 언론 보도의 주된 정보원은 경찰 발표니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다. 하지만 그래도 형사들은 텔레비전을 켜고 신문을 읽는다. 자기가 맡은 사건이 세상의 이목을 끄는 것을 보며 기운을 얻는 면도 없잖아 있지만 수사와 거리가 먼 정보, 가령 사건에 대한 행정 지원이나 대응, 검찰의 의향, 피해자의 동향 등은 언론 보도로 처음 알게 되는 사실도 많다. 하지만 그 이상으로 중요한 것은 언론 보도를 통해 수사 진척 상황이 범인에게 전달된다는 점이다. 어디까지가 보도된 정보이고, 어디부터가 범인과 경찰밖에 모르는 정보인지, 그 경계를 세심하게 파악하려면 역시 형사들도 언론 보도를 확인하는 수밖에 없다. (가연물)- P244
가쓰라는 사건을 높은 곳에서 내려다보았다. 추궁하면 오노하라는 십중팔구 자백하리라. 하지만 가쓰라는 ‘십중팔구‘로 도박을 걸어야 한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수사는 어차피 사람의 소행, 완벽하기란 불가능하다. 어딘가 운명적인 틈이 벌어지는 것은 피할 수 없는 노릇이다. 하지만 머리카락 한 오라기의 차이라도 완벽에 다가설 수 있다면 그렇게 해야만 한다. (가연물)- P250
아마도. 가쓰라는 생각했다. 동기가 핵심이다.
평소 수사할 때 가쓰라는 동기를 중시하지 않는다. 동기는 결국 ‘욕망‘이라는 한마디로 귀결된다. 보통 사람들의 욕망은 뻔해서, 그 대부분이 금전 욕구와 성욕, 화풀이로 집약된다. 하지만 그 세 가지로 설명되지 않는 욕망도 분명 존재한다. 그것은 지혜를 쏟아부어도 예측할 수 없다. 예측할 수 없는 것을 믿고 수사하면 미로에 빠져든다. 그렇기 때문에 가쓰라는 평소 동기를 중시하지 않는다. (가연물)- P250
춘메이의 진술은 막힘이 없었다. 일반적으로 상대가 대답할 내용을 미리 준비해 두었거나, 상대의 두뇌 회전이 빠른 경우에 자연스러운 진술을 얻을 수 있다. 가쓰라는 이번에는 후자라고 생각했다. 파스타 조리법을 설명해야 하는 상황을 춘메이가 사전에 알았을 리 없다. (진짜인가)- P310
시다 하루타는 사건 다음 달, 이세사키 시립 도네가와 초등학교에 입학했다. 사건에 대해서는 까맣게 잊은 듯이 씩씩하게 지내는 것 같다는 소식을 훗날 이무라가 가쓰라에게 전해 주었다. (진짜인가)- P328